2018-05-15 21:03

‘장기계약의 역설’ 한국 초대형유조선 경쟁력 뒷걸음질

해운거래정보센터 유조선 해운시황포럼 열려
향후 5년새 유조선 1000척 교체…한국조선 긍정적



장기계약 위주의 영업 전략으로 한국 선사들의 초대형유조선(VLCC) 경쟁력이 세계 시장에서 크게 위축됐다는 진단이 나왔다.

한국해운거래정보센터(MEIC) 임강빈 차장은 “장기계약 중심으로 선대를 운영하면서 현물운송(spot) 시장에 투입할 선박이 부족해졌고 그 결과 단기계약 확보도 줄어들었다”며 이 같이 말했다.

우리나라 VLCC 산업은 세계 6위의 석유산업을 배경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2016년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6위의 정제능력과 8위의 석유 소비력을 가진 석유산업 강국이다. 원유 도입액의 60%를 석유 제품 수출로 회수하고 있다. 원유 수입량은 연간 VLCC 73척 분에 달한다.

국내선사가 운영 중인 VLCC 선단은 총 35척이다. 기간용선으로 확보한 4척을 제외할 경우 글로벌 전체 VLCC 선단의 4%를 차지한다. 평균 선령은 9년이며 노후선으로 간주되는 15살 이상 선박은 17%인 6척이다. 영업형태별로 현물시장을 운항하는 선박은 20%에 불과한 반면 80%인 28척의 선박이 장기계약시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국내 4대 정유사도 총 24척의 VLCC를 전용선계약(CVC)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10일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유조선 해운시황 포럼’에서 임 차장은 국내 선사가 보유하고 있는 대다수 VLCC가  국내외 선화주와 맺은 장기운송계약에 투입돼 있으며 현물 시장 노출을 최대한 줄이면서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든든한 장기계약을 바탕으로 신조선 발주도 활발하다. 현재 총 14척의 VLCC가 조선소에서 신조되고 있다. 내년에 13척, 2020년에 1척이 인도될 예정이다. 이 중 86%인 12척이 장기계약을 이미 확보한 상태다.

부작용도 포착된다. 장기계약에 치우친 국내 선사들의 선대 운영은 부정기선 영업에서 중요한 현물운송 시장의 글로벌 영업력을 약화시키는 한편 선대 축소의 원인이 됐다. 해운거래정보센터가 4월16일부터 5월8일까지 중동시장에 투입된 VLCC 선단을 집계한 결과 한국 선박은 전체 70여척 중 2척에 불과했다.

임 차장은 국내외 화주들의 현물수송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선대가 급감하면서 국내 석유산업의 세계적인 위상과 달리 우리나라 VLCC 영업 경쟁력은 크게 위축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VLCC가 한국의 화물만 수송한다면 안정적이긴 하지만 글로벌 경쟁력을 가졌다고 할 순 없을 거”라며 “7월 출범하는 한국해양진흥공사에서 국내 해운업계가 다양한 시장에서 경쟁력을 늘릴 수 있도록 VLCC 산업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탱커 연평균 215척 신조 발주 전망

이날 ‘탱크선 조선시황’을 주제로 발표한 하나금융투자 박무현 수석연구원은 “향후 5년간 유조선 교체 수요가 1072척에 이를 것”이라며 탱크선을 중심으로 조선시장이 상승세를 탈 것으로 내다봤다.

15살이하 유조선 20%와 16살 이상 유조선 100%가 향후 5년 사이 교체되면서 연평균 215척의 유조선이 새롭게 지어질거란 전망이다. 클락슨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유조선대 4234척 중 선령 16년 이상 노후선은 20.4%인 866척이다.

박 연구원은 그리스 선주들이 과감하고 발빠르게 선대 교체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그리스 지배선대의 평균 나이는 2012년 14.71년에서 2013년 14.55년 2014년 13.35년 2015년 12.73년 등으로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 반면 선대 규모는 같은 기간 2억6400만t(재화중량톤) 2억8100만t 3억500만t 3억2300만t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줬다.

2020년 황산화물(SOx) 규제가 본격 시행되는 것도 조선 시황에 활기를 불어넣을 거란 관측이다. 박 연구원은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CO₂) 50%를 저감하는 정책은 스크러버(선박용 탈황장치) 수요를 낮추는 대신 LNG 추진선 시대를 이끌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울러 한국조선이 신조 VLCC 수주에 유리할 거란 시각을 드러냈다. 한국과 중국의 조선산업 격차가 더욱 확대된다는 전망이 근거다. 2016년과 2017년 사이 인도된 VLCC 건조기간을 비교한 결과 우리나라는 1년 내지 2년 정도가 걸린 반면 중국은 최소 3년이 소요됐다. 특히 중국 진하이중공업은 8년 걸려 32만t급 유조선을 건조했다. 일본 조선소도 VLCC 제작에 3년 정도가 걸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박 연구원은 중국의 실질 임금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중국 조선업은 높은 건조 원가 구조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중국 양쯔장조선과 우리나라 현대미포조선의 직원 1명당 매출액은 각각 7.7만달러 30만달러로 조사됐다. 또 선박 1척을 짓는 데 투입되는 인력의 경우 양쯔장조선이 891명, 중국 CSSC오프쇼어마린엔지니어링(COMEC)이 1108명인 반면 현대미포조선은 120명에 불과했다.

그는 “중국 조선업은 설계인력의 수가 매우 부족하고 특히 핵심인 기본 설계 인력이 없다”며 “설계 인력의 한계로 수주잔고를 갖고 있음에도 인도 지연이 계속되고 한국 조선업이 보여줬던 엄청난 실적 악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한국 조선은 선박 분야에 2만명 수준의 설계 인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해양 분야 엔지니어는 없다는 점을 들어 선박 분야에 집중해 체력을 높이면서 미래를 위해 해양분야 기술개발(R&D)에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날 행사엔 선사와 화주 조선사 관계자가 참석해 시장 상황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교환했다.

현대상선 정해익 팀장은 “선사에서 투자를 하고 싶어도 금융이 잘 안 되는 데다 제도의 규제도 많다”며 “(기업이) 자유롭게 진입과 탈출을 할 수 있도록 금융과 제도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지에스칼텍스 민병관 부장은 “일본 VLCC 선사가 안정적인 이유는 일본이 스폿(단기계약)으로 (기름을) 수송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이라며 “정유사는 스폿 선복을 적정히 유지하려고 하지만 선사는 장기계약 확대를 선호한다”고 선사와 화주의 입장차를 전했다.

현대글로비스 권기돈 팀장은 “선사들이 사선을 투자할 때 하는 고민이 장기계약이 끝난 뒤 잔존가치를 확보하는 것”이라며 “정부에서 잔존가치 보상을 해준다면 획기적으로 비용을 줄일 수 있어 투자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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