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10 09:14

“예산없이 책임만 넘기나” 알맹이 빠진 지방이양일괄법

지자체 재정자립도 50% 안팎…경남도 200억원 공백 예상
해수부 119개 사무 이양으로 최다



지난 2009년 이후 지지부진했던 지방분권 정책이 재가동된다. 대통령 소속 지방분권위원회는 국가사무의 지방이양을 위해 관계 법률을 일괄 개정하는 ‘지방이양일괄법(일괄법)’ 제정안을 마련했다고 지난달 31일 밝혔다.

19개 중앙부처 중 해양수산부가 지방관리항 관련 사무 총 119개로 가장 많은 소관사무를 시·도 지방자치단체(지자체)로 옮길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권한 이양을 받는 각 지자체에서는 일괄법에 기대를 걸기보다는 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권한 이양, 지자체 입맛 맞는 항만 운영에 도움

이번 일괄법은 과거에 이미 결정됐으나 진척을 보이지 않던 권한 ‘이양’을 한번에 처리하는 데 의의가 있다. 해양수산부의 ‘중앙과 지방 간 항만관리 역할분담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008년 12월 지방분권촉진위원회를 출범하고 중앙정부의 권력을 지방으로 분산하는 사업을 추진해왔다.

항만 분야의 경우 지난 2009년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특별지방행정기관의 항만개발 및 운영 업무를 지자체로 이관한다’는 원칙을 수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국가적 중요도가 높은 ‘국가관리항’을 제외한 35개의 ‘지방관리항·연안항(무역항 17개, 연안항 18개)’의 관리운영 사무 다수가 지자체 소관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법 제정이 지지부진하면서 현재는 사무 ‘위임’ 단계에 머무른 상태다. ‘이양’은 업무의 집행만 맡기는 위임과 달리 해당 사무에 대한 최종 권한을 넘기는 것이다. 지자체가 항만 관리 권한을 완전히 보유할 경우 항만 사업의 결정·추진시 지역민 의견을 더 반영할 수 있고 지역특성에 맞는 정책 수립이 가능해진다는 이점이 생긴다. 이양이 예정된 사무는 항만공사의 시행 혹은 민간기업의 공사시행 허가, 선박 입출항 신고, 항로지정, 방치 선박 제거 명령 등을 포함한다.

지자체 “항만 사업 예산 마련 어려워”

각 지자체는 이번 정부 발표에 ‘핵심’이 빠졌다는 반응이다. 업무 집행에 필요한 ‘재정 확보’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의 권한을 이양받게 되면 예산 또한 지자체에서 마련해야 하지만, 대다수 지자체는 그럴 여건이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는 평균 52.5%로 절반 수준인데 비해 항만시설이나 운영, 개발 등에 드는 비용은 일반적으로 수백억원 이상 소요되기 때문이다.

경남도 관계자는 “이번 발표는 선언에 그친 것 같다”며 “현재 경남의 항만 건설, 유지 비용으로 연 400억원 가량이 책정됐는데, 이양 후 항만 시설 사용료 등으로 얻어질 추가 세외수익은 많아봤자 200억원으로, 예산 공백이 생긴다. 이양은 일단 예산 문제가 관건이다”고 말했다.

다른 지자체에서도 같은 의견이 나왔다. 부산시 관계자는 “이양받는 업무 자체는 이미 하고 있는 일이라 별 차이가 없다”고 밝힌 반면, 예산에 대해서는 시·도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이양된 항만 관련 사무들의 예산은 중앙정부에서 상당수 지원하는 걸로 파악된다.

제주특별자치도의 경우 지난 2006년 7월 ‘제주특별자치도법’이 시행되면서 이미 제주 서귀포 등 지방관리항의 운영 업무가 이양됐다. 그러나, 아직 예산은 국가 균형발전특별회계상의 예산으로 해수부와 기재부를 거쳐 도에 배분되는 형태다. 제주도의 재정자립도는 약 34%인 것으로 파악됐다.

인력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경남도 지자체 관계자는 “2010년 항만 사무 위임 당시에는 해수부 측 인력 23명이 도청으로 발령됐었다. 이양이 실제로 일어날 경우에도 일정 부분 인력 보충이 수반돼 항만 전문 지식이나 업무 노하우를 전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제주특별자치도청의 경우 지난 2006년 제주지방해양항만청의 업무가 제주도청으로 이양될 당시 항만청에서 파견된 인력 총 4명을 투입했으나 순환전보나 보직 등 도청 인사정책으로 전문인력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인력 확충 방안에 대한 제대로된 대책이 마련돼야 하는 데 힘이 실리는 이유다.

자치분권위원회 측은 “법이 제정되면 바로 인력·재정 문제 해결을 위해 ‘지방이양비용평가위원회’를 설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각 지자체별 소요인력과 재정비용을 조사해 산정하고, 재원 조달 방안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일괄법은 연내 입법예고를 거쳐 법 제정이 완료될 방침이며, 법령정비 및 이양준비 기간을 고려해 1년 가량의 유예기간을 둘 것으로 알려졌다.
 

< 박수현 기자 shpark@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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