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새해 200척 규모 전략상선대 입법 시동
새해에 전략상선대 제도가 도입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국민의힘 조승환 의원 측은 “국가 안보를 강화하고 한국인 선원 양성을 지원하기 위해 전략상선대를 조성하는 내용의 제정법을 2026년에 대표 발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략상선대는 평시엔 생필품이나 전략물자의 해상운송에 활용돼 국민경제에 이바지하고 전시나 비상시엔 안보 활동을 하는 선박으로, 우리나라가 현재 운영 중인 국가필수선대를 확대한 제도다. 이들 선박은 우리나라 조선소에서 건조되고 우리나라에 국적을 등록하고 우리나라 선원들이 탑승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미국에서도 250척 규모의 전략상선대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해운협회 김경훈 이사는 지난 12월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2026년 한 해 기존 국가필수선박 88척을 100척으로 확대한 뒤 2040년까지 100척의 선박을 새롭게 지어 최종 200척을 조성하는 전략상선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운협회는 지난해 5월부터 12월까지 해양수산개발원 중앙대 경상대 한국해양진흥공사 김앤장 해양수산부 무역보험공사 한국선급 등과 함께 전략상선대 도입 방안을 연구해 이 같은 결과를 도출했다. 전략상선대 도입으로 60조 경제효과 기대 김 이사는 이날 ‘K-전략상선대 도입 대책’이란 제목의 발표에서 전략상선대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로 무역과 해운이 국가 경제에 끼치는 중대한 영향력을 꼽았다. 우리나라는 수출입으로 먹고 사는 나라다. 무역 의존도가 79%에 이른다. 미국이나 일본 중국보다 2~3배 높다. 무역산업의 뒤를 해운이 단단히 떠받치고 있다. 수출입 물동량의 99.7%를 해운이 담당한다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원유나 LNG(액화천연가스) 철광석 석탄 등의 전략화물은 100% 해상으로 수입된다. 김 이사는 한양대 하준경 교수의 자료를 인용해 우리나라에서 비상사태가 발생해 뱃길이 끊길 경우 하루 5조5000억원의 경제 손실이 발생한다고 추산했다. 제조업에서 2.5조원, 유통에서 1.5조원, 에너지 분야에서 1조원, 금융권에서 5000억원의 피해가 날마다 발생한다는 계산이다. 에너지를 수송하는 선박이 그 예다. 17만㎥급 LNG 운반선이 수송하는 LNG로 210만 가구가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한다. LNG 운반선 1척이 운항을 멈추면 서울 시민의 절반이 한 달간 전기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셈이다. 재화중량톤수 30만t급 초대형 유조선(VLCC)은 우리나라가 하루 동안 쓰는 석유의 75%를 운송한다. 김 이사는 전략상선대 도입으로 에너지 수급 안정과 해운 경쟁력 확보 등 무형의 효과뿐 아니라 100척의 선박을 신조하면서 발생하는 30조원을 비롯해 60조원 규모의 생산 유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해외에선 일찌감치 전략상선대와 유사한 제도를 운영 중이다. 미국은 190척 규모의 해상수송사령부(MSC)와 160척 규모의 해사안보프로그램(MSP)을 운영하고 있다. MSC는 평시에 미 해군과 연계해 식량 연료 탄약 등 보급품을 수송하고 유사시엔 미군의 해외 배치와 전개를 위한 핵심 물류망으로 기능한다. MSP는 평시에 민간 기업에 소속돼 상업적으로 운항하다 국가 비상시에 국방부 통제를 받아 군수 물자 수송에 참여한다. MSC 선박이 모두 정부 소유라면 MSP 선박은 정부와 계약한 민간 상선이란 점이 다르다. MSP에 소속된 선박은 시장 경쟁력 저하를 상쇄하기 위해 정부에서 재정 지원을 받는다. 미국 정부는 나아가 중국을 견제하고 자국 조선산업을 부흥시킬 목적으로 250척 규모의 전략상선대(SCF)를 조성하는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른바 지난 2024년 12월 처음 발의돼 현재 미국 정치권에서 한창 논의되고 있는 ‘미국의 번영과 안보를 위한 조선 항만 인프라법’(SHIPS Act)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미국은 총 500척 규모의 전략안보선대를 확보하게 된다. 이 밖에 일본은 해상자위대가 보유한 상선으로 비상사태에 대응하는 해상수송특별제도, 영국은 국방부에서 민간 상선의 독점 사용권을 갖는 전략 해운서비스 제도를 두고 있다. 호주에선 자국 선박을 호주 선원이 운항하는 국가전략선대를 운영한다. 이들 국가는 상선을 안보 목적으로 활용하면서 보조금 지원과 세금 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김경훈 해운협회 이사가 전략상선대 도입 필요성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김경훈 이사는 해양전략연구소 연구를 기반으로 전략상선대의 구체적인 선종도 제시했다. 벌크선 59척, 컨테이너선 50척, 유조선 47척, 자동차운반선 9척, 가스운반선 33척이 그가 구상하는 전략상선대 구성이다. 양곡 원유 액화가스 석탄 철광석 생필품 군수품 자동차 비철금속 등 국민경제 또는 국가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9가지 물자를 전략화물로 선정한 김 이사는 이들 화물의 증가율 등에 맞춰 전략상선대에 포함될 선종을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벌크선은 양곡과 석탄 철광석 비철금속, 유조선은 원유와 석유, 컨테이너선은 군수품과 각종 생필품 수송을 책임지도록 하자는 의견이다. 국내 선박 건조시 25% 보조금 지원 필요 김 이사는 전략상선대 제도를 운영하려면 획기적인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선 핵심 에너지 화물의 70%를 국적 선박에 싣도록 의무화해 전략상선대의 안정적인 화물 유치를 보장하고 한국인 선원의 임금 차액을 100% 보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적선의 에너지 적취율이 하향세를 띠는 상황에서 전략상선대 제도를 반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시각이다. 2020년 53%(27척)에서 2024년 34%(13척)로 급락한 국적선의 LNG 적취율은 2029년에 12%(4척)로 줄고 2037년엔 0%가 될 걸로 예상된다. 전략상선대 건조 비용을 국가에서 지원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현재 한국 조선업계는 LNG선이나 초대형 컨테이너선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 시장에선 70% 안팎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지만 벌크선과 유조선, 중소형 선박 등은 중국 조선에 크게 밀리는 실정이다. 선박을 지을 시설(독)이 없는 데다 가격도 중국 조선소보다 20~30%가량 높기 때문이다. 김 이사는 전략상선대에 한해 기준금리+0.5%의 초저 금리를 적용한 금융 대출을 선가의 90%까지 15년 장기 상환 조건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국내 조선업계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전략상선대 신조 가격의 20~25% 정도를 선사에게 지원하는 보조금 정책도 도입이 필요한 것으로 제시됐다. 친환경 선박이나 국내에서 짓기 힘든 중소형 선박엔 공급망 안정화 기금을 활용한 추가 지원이 제공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선급 유진호 미래전략팀장은 SK해운 에이치라인해운 현대LNG해운 동아탱커 등 사모펀드가 소유한 국내 선사가 늘면서 국적선이 해외 매각 위험에 노출된 상황에서 한국형 SHIPS 법안을 제정해 공급망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국가 안보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정석 한국해운협회 회장은 전략상선대 도입은 단순한 해운 지원을 넘어 우리나라 조선산업을 재건하고 수호하는 핵심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미국과 일본이 추진 중인 해사 안보 입법의 본질은 결국 자국 조선소의 재건과 선복량 확대를 통한 해양 패권 유지”라며, “일본이 10조엔 규모의 지원을 통해 세계 건조 시장 점유율을 20%까지 끌어올리려 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강력한 기금을 마련해 현재 20% 내외인 건조 점유율을 25% 이상으로 유지하는 공격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 조선업이 기술력 1위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원가 경쟁력에서 중국 등에 밀려 점유율이 10%대까지 추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며, “일본의 철강 가격 보전 모델처럼 WTO(세계무역기구) 체제 하에서도 지속 가능한 지원책을 적극 벤치마킹해 우리 조선소가 안정적인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이 문제는 해운업계만의 주장이 아니라 조선업계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산업 생존의 문제”라며 인식의 전환을 촉구했다. “해운조선 동반 재건 목표” 이어진 토론에서 한국무역협회 이봉걸 실장은 “전략상선대는 단순한 물류 서비스를 넘어 국방력의 일환이자 안보 자산”이라며 입법 필요성에 공감했다. 한국해양진흥공사 이상석 팀장은 선박 노후화 문제를 지적하며 RG(선수금 환금 보증) 발급 개선 등 다각적인 지원책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이재복 외국변호사는 해운·조선·금융 등을 하나의 패키지로 통합한 제정법 마련이 정책 목표 달성에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안영균 박사는 해운산업을 단순히 시장 논리에 맡기기보다 반도체나 배터리처럼 국가 전략산업 시스템으로 지정해 범정부 차원에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양수산부 김승룡 팀장은 현행 88척 규모의 국가필수선박 제도가 가진 한계를 인정하면서 이를 전략상선대로 확대 개편하는 취지에 적극 공감했다. 특히 이 제도가 해수부 국정과제인 ‘핵심 에너지 적취율 향상’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200척이라는 목표치를 정책 지표로 삼아 단계적으로 확충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또 일본의 해사 클러스터 지원 사례를 벤치마킹하고 해양진흥공사와 새롭게 설립될 동남권투자공사 등의 자금을 활용한 다각적인 재원 마련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전략상선대 도입이 조선산업 상생으로 이어지는 만큼, 국회를 통해 산업통상부 등 관계 부처와 긴밀히 협력해 실효성 있는 안보 거버넌스를 구축하겠다고 답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