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위기에 대응하고 국가 경제안보를 강화하려면 핵심 물자 확보와 함께 이를 안정적으로 운송할 물류망을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주요 해협과 운하의 통항 차질이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는 만큼 위험을 조기에 감지하고, 대체 운송 경로와 수송능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정희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원장은 한국해양수산개발원과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9월21일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BPEX)에서 공동 주최한 ‘글로벌 공급망 위기 대응 포럼’에서 “해운과 항만, 물류와 에너지, 산업과 안보를 서로 연결해 바라보는 통합적이고 선제적인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원장은 해운물류 정보에 산업·품목·에너지·통상 정보를 연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박 우회로 늘어나는 운송기간과 비용뿐 아니라 에너지 수급과 산업 생산, 수출입 기업에 미치는 영향까지 함께 파악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KMI가 개발 중인 해운물류 공급망 조기경보 지수와 모니터링 플랫폼에 산업·품목·에너지·통상 정보를 연계해 정부의 의사결정까지 지원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보 제공 시스템을 ‘공급망 정책 지원 인공지능(AI) 에이전트’로 발전시켜 과거 대응 사례와 대체 운송 경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조치까지 함께 제시하자는 구상이다. 이를 실현하려면 각 연구기관의 전문성과 데이터를 연계하는 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해운·항공물류와 공급망’ 세션에서는 위험 신호와 실제 화물 이동을 연결하는 조기경보·모니터링 방안이 제시됐다. 이언경 KMI 해운물류·해사연구본부장은 해운물류 공급망 조기경보 지수와 위험 모니터링 플랫폼 등의 개발 방향을 발표했다. 위기 발생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위험 신호를 빠르게 포착해 대응 시간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KMI의 모니터링 플랫폼은 뉴스와 재난정보에서 위험을 탐지하고 주요 해협·운하 등 병목구간의 위험도를 표시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선박자동식별시스템(AIS)과 항만운영정보시스템(PORT-MIS)을 연계해 영향을 받는 선박과 화물을 추적하는 구상도 담았다. 선박의 운항 지연을 조기에 파악하면 항만의 선석 계획을 조정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나준호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수출입 신고·적하목록에 선박과 항공기의 이동정보를 연결하는 국가 물류 네트워크 모니터링 플랫폼 구축 전략을 제시했다. 해운은 AIS, 항공은 항공기 위치정보(ADS-B)를 활용해 운송 경로를 분석하고, 특정 구간의 운송 차질이 어떤 품목과 화물에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는 체계다.
그는 여러 위험이 동시에 발생하면 우회 경로와 대체 운송수단의 이용도 제약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가 생긴 구간과 연결된 다른 경로, 운송에 필요한 자원의 상태까지 함께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류정책기본법에 공급망 안정화와 물류 네트워크 관리 내용을 반영하고, 위기 대응 매뉴얼과 모의훈련을 마련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플랫폼 구축·운영의 과제로는 데이터 접근과 민관 공유를 꼽았다. 나 연구위원은 관세청 데이터 접근의 어려움을 지적하고, 기업이 제공한 정보를 분석해 실제 대응에 유용한 서비스로 돌려주는 협업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응방안 확보가 우선돼야
토론에서는 위험을 감지한 뒤 실제 대응에 나설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송상화 인천대학교 교수는 “위험 정보가 공유되고 기업들이 동시에 같은 대체 경로로 몰리면 차질이 더 커질 수 있다”며 “우리나라가 공급망 리스크에 대응할 충분한 능력이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공급 중단을 버틸 수 있는 기간과 복구에 필요한 시간을 함께 점검하고, 경제성을 고려해 예비 대응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공급망 위기 대응에 관해 산·학·연·정 전문가들의 토론이 진행됐다. |
정부는 수출과 수입의 위기 양상에 맞춰 운송 기반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한울 해양수산부 항만물류기획과장은 코로나19 당시 수출기업이 선박을 구하지 못해 해외 항만에서 장기간 화물을 쌓아둬야 했던 경험을 들어 글로벌 주요 거점에서 해외 터미널과 물류센터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입 측면에서는 전략화물을 국내 해운·물류기업이 운송하는 비중을 높이고, 위기 때 국가필수선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예산을 확대하고 관계 부처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단순히 기업과 해수부만의 협력으로는 어렵고 여러 부처의 협력이 있어야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위기 대응을 뒷받침할 데이터 활용과 기업 지원 방안도 논의됐다. 한경훈 대한항공 상무는 기관별로 수집 목적과 형식이 다른 데이터를 표준화해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보가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내용을 통합적으로 개발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보안과 영업비밀을 고려해 활용 범위를 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위기 때 우회 운항 등으로 늘어나는 기업의 비용 부담을 덜어줄 유연한 정책·재정 지원과 정부 주도의 통합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날 포럼에는 정부와 국책연구기관, 산업계·학계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이한주 NRC 이사장이 좌장을 맡은 기관장 라운드테이블에는 KMI와 산업연구원, 에너지경제연구원, 한국교통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 등 5개 국책연구기관장이 참석했다. 분야별 세션에서는 ‘해운·항공물류와 공급망’, ‘자원안보와 공급망’을 주제로 위기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 박한솔 기자 hsolpark@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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