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21 16:05

더 세월(69)

저자 성용경 / 그림 하현
61. 이상한 숙제


‘침몰 원인은 영원한 미궁에 머물라!’

침몰을 주관하는 신이 그렇게 말한 걸까. 세월호의 침몰 원인을 끝내 밝히지 못한 채 선체조사위원회가 2018년 8월 6일 해산했다. 매 회의를 묵념으로 시작해 묵념으로 마칠 만큼 세월호 희생자의 억울한 죽음을 파헤치겠다는 각오를 내비쳤지만 그에 걸맞은 결론은 도출하지 못했다.

그냥 해산하기가 아쉬웠던지 마지막 기자간담회에서 서로 언성을 높이며 책임 공방을 벌였다.

1년 1개월간의 활동 보고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위원들은 엇갈린 의견을 그대로 드러내며 충돌했다. 선조위 위원들의 견해를 실명과 함께 남기는 건 역사적 사건을 사실대로 기록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김창준 위원장과 김영모·김철승 위원은 선박 자체 결함으로 사고가 났다는 ‘내인설’을 주장했다.

내인설에 의한 사고 상황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2014년 4월 16일 복원성이 나쁜 세월호가 화물을 과도하게 실은 채 출항했다. 맹골수도를 지날 무렵 유압을 이용해 방향타를 움직이게 하는 솔레노이드 밸브가 고착되면서 유압이 멈추지 않았고 방향타는 오른쪽으로 급격하게 돌아갔다.

배는 급선회했고 그로 인해 제대로 고박되지 않았던 화물이 좌현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배는 45도 이상 기울었다. 그때 열려있던 수밀문과 맨홀로 바닷물이 들어오면서 배는 결국 침수·침몰했다.

반면 권영빈·이동권·장범선 위원은 외력 충돌도 사고 원인일 수 있다는 ‘열린안’을 냈다. 열린안은 화물 고박이 약했지만 세월호 복원성이 생각만큼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선박 자체 문제만으로는 침몰이 설명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내인설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을 추가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정민은 양쪽이 치열하게 설전을 벌이는 걸 보면 세월호는 마치 싸움을 양산해 내는 요술방망이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선체 정밀조사가 끝난 후 세월호는 파손된 상태 그대로 보존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다만 거치 장소는 정해지지 않았다. 인천 안산 목포 진도 제주 등 5개 도시를 두고 중점적으로 검토했으나 위원들은 합의를 끌어내지 못했다.

정부는 이와 별도로 국립 복합관인 ‘세월호생명기억관(가칭)’을 조성해, 추모·치유·기억·기록 등을 이어가면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안전불감증을 쇄신시키는 교육시설로 만든다는 계획도 세웠다.

무더위는 종종 가족을 한자리로 모이게 하는 촉매제가 되기도 한다. 열대야를 피해 서정민 식구들이 거실로 모였다. 거실 에어컨이 단 한 톨의 더위까지 집 밖으로 몰아내려는 듯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돌아갔다.

“올 여름 같은 더위는 첨인 것 같아요.”

바깥에서 술 한잔하고 들어온 서정민이 거실에서 TV를 보고 계시는 노모에게 저녁 인사를 건넸다. 아이들도 에어컨 바람을 쐬려고 거실에 나와 있었다. 큰아들 준호는 컴퓨터를 하고 있다가, 작은아들 준서는 뭔가를 종이에 쓰고 있다가, 아버지를 보고 일어섰다. 큰 덩치들이 일어서니 집 천장이 유난히 낮아 보인다.

“준서는 뭘 그렇게 열심히 쓰고 있어?”

아들의 행동이 평소 같지 않아 서정민이 물었다.

“숙제하고 있었어요.”

“무슨 숙제?”

내용이 궁금해서 들여다보려는데 준서가 머뭇거렸다.

“세월호에 대한 글짓기예요.” 

“니네 학교는 아직도 세월호 이야기를 하고 있니?”

말하면서 탐탁지 않은 마음으로 노트를 들여다보니 <세월호에 타고 있었더라면 나도 죽었을 것이다>라는 제목이 쓰여 있다.

제목을 보자 그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이런 걸 어떻게 제목으로 하니? 다른 것으로 고치도록 해라.”

“아빠, 이건 선생님이 정해준 제목이라 바꿀 수 없어요.”

준서는 단호했다.

세월호와 죽음은 서정민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다.

이런 제목으로 글을 쓴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갑자기 머리까지 아파 왔다. 선생님이 정해주다니?

“이런 숙제를 누가 냈어? 국어 선생?”

아버지가 따지자 준서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윤리 선생님.”

쌩쌩 돌아가는 에어컨이 갑자기 멈춘 듯 열대야의 더운 바람이 그의 얼굴을 뒤덮었다. 윤리 선생이 제정신인가?

이튿날 학교로 달려갔다. 서정민은 윤리 선생을 낚아채듯 만났다. 여선생은 방문한 학부모가 세월호 탑승자였음을 알고 톤을 낮추며 진정시키려고 했으나, 이미 상대방은 매우 흥분한 상태였다.

상담실은 둘의 대화로 어수선했다. 짧은 치마와 등이 트인 블라우스를 입은 여선생은 중년을 극복하고 좀 더 젊어 보이려고 애쓰는 듯했다. 윤리과목을 가르치는 교사에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을 한 그녀에게 서정민은 무슨 질문을 할까 망설이다 에둘러 가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학생들에게 무슨 의도로 이런 숙제를 내셨습니까?”

교육감이 추궁하듯 묻는 질문이 무례할 법도 했지만 여선생은 주눅 들지 않고 탁자 위에 있는 차를 권하며 여유를 부렸다. 

“세월호만큼은 학생들에게 꼭 알려야겠다는 게 평소 저의 소신입니다. 안전불감증에 경각심을 심어주는 의미도 있고요.”

그녀는 세월호의 역사적 의미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소명도 있다고 덧붙였다. 서정민은 물속 깊숙이 가라앉아 있던 트라우마가 뿌연 거품을 내며 치솟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세월호에 타고 있었더라도 나는 탈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는 제목으로 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부정적인 용어로 학생들의 정서를 불안하게 할 필요는 없잖습니까?”

여선생은 그와 눈을 한번 맞추더니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를 우리 학생들이 온전히 기억하는 게 나라를 바로세우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당당했고, 서정민은 억지 설교를 듣는 것 같은 참담함을 느꼈다.

“학생들에게 세월호의 비극을 가르친다면서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낱낱이 드러내고 부각시키는 게 과연 어떤 교육적인 가치가 있을지 의구심이 드네요. 희생자로서 견디기도 힘들고요.”

희생자를 앞에 둔 터라 그녀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했다.

“숙제 문제는 재고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민감한 사안인 줄 미처 모르고….”

결국 그녀는 세월호를 주제로 한 숙제는 없던 일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준서는 세월호에 갇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장면을 상상하지 않아도 된 셈이다. 삶을 적극적으로 희망하고 갈구할 때 죽음은 물러간다. 세월호 사고가 가르쳐준 진리다.

서정민의 학교 방문은 발품만큼 의미가 있었으나 그의 정신은 몹시 피로해졌다. 격앙된 감정이 표출되는 날 그는 자주 혼미한 상태에 빠지곤 했다. 스스로 낚시바늘 같은 물음표를 찍어 본다. 왜 살아야 하는가?

광화문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이순정은 자리에 없었다. 위로가 필요했던 그는 오늘따라 유독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일었다. 이순정은 제주도 출장 중이었다. 제세실업의 물류창고가 있는 부두 근처 부지가 세월호 거치에 적합한지 알아보려고 간 것이다. 제주도는 다섯 곳의 세월호 거치 장소 후보 중 하나다. 선정될 확률이 높지 않았지만, 언니가 생전에 일했던 곳에 세월호가 거치되길 바랐다.

직원들이 퇴근한 광화문 사무실은 조용했다. 그는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간이침대가 있는 휴게실로 들어갔다. 작은아들의 숙제 문제로 학교를 방문한 뒤 힘을 잃고 흐물흐물해진 그의 마음을 풀을 쳐서라도 다시 빳빳하게 펴고 싶었다. 세월호 숙제며 학교에 간 일이며 모두 잊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간이침대에 누워 천장을 쳐다보며 삶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삶은 계란이다’는 자조 섞인 농담에 이르렀다. 곧 여자에 대해서 생각하던 그는 ‘남녀는 젓가락이다’는 말을 중얼댔다. 여자란 존재가 삶의 동반자로 소중하다는 제법 진지한 결론이었다. 

서정민은 갑자기 이순정의 손길, 이순정의 숨결이 애타게 그리워졌다. 결혼을 서약하고 늘 함께해온 그녀의 빈자리는 제법 컸다. 하지만 서정민은 언제 봤는지 기억나지 않는 성인영화의 여배우를 생각하며 들불처럼 번진 욕망을 진화(鎭火)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씁쓸하면서도 공허한 기분을 억누르며 세면대에서 손을 헹구었다. 

피곤할 때는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것을 지켜만 봐야 하는구나.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전 모레 상경해요. 내려온 김에 일 좀 정리해 놓고 갈게요.” 

끊을 것 같다가 이순정은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어디세요?” 

뭐 하고 있느냐고 그녀는 묻지 않았다. 만약 묻는다면 손 좀 씻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었겠지만 성실한 답변일 수는 없었다. 그 옛날 허리케인이 만든 대서양의 삼각파도에도 담대했던 기백이 세월호 한방에 여지없이 무너진 상황이 그를 우울하게 했다.

“나는 사무실에서 사슴 목이 되어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줄 몰랐다. 결혼 허락을 받은 후 솔직 담대해진 것은 확실하다. 이런 표현을 여자가 싫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 달콤한 언어가 주는 매력을 새삼 느꼈다.

“달링, 참을 수 있죠?”

상대편의 입에서도 감미로운 문장이 흘러나왔다. 날 지켜보고 있었나? 아니면 마음이 통했나? 

순간 죄지은 사람처럼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대화의 목적어가 뭔지 수능시험에 출제해도 좋은 질문 같았다. 전화를 마치고 서정민은 한 번 더 손을 씻었다. 이순정에게 ‘순정’을 바치겠다는 다짐이 담긴 작은 의식이었다.


<이 작품은 세월호 사고의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한 창작물이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기업 지명 등은 실제와 관련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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