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05 09:30

판례/ “허무한 합의”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해양수산부 고문변호사)
<9.21.자에 이어>

③ 피고 C은, 피고 B이 이 사건 각 화물의 운송에 사용된 선박의 소유자가 아니므로 선박소유자의 채권 소멸을 규정한 상법 제840조 제1항이 적용되지 않아 피고들에 대한 이 사건 소가 모두 각하돼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위 조항의 ‘선박소유자’에는 해상기업의 주체로서 자사소유선박의 선주는 물론이고 선체용선자, 정기용선자를 포함하는 관리 선주(Disponent Owner)까지도 포함되는바, 피고 B이 실제 선박의 소유자가 아니더라도 관리 선주의 위치에서 D와 약정된 제원 및 특성을 갖춘 선박을 확보하기로 하는 항해용선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피고 C의 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아가 피고 C은, 이 사건 각 운송계약에 따른 운송에는 선하증권이 발행되지 않아 KIFFA B/L 특별약관이 적용되는데, 위 약관에 따르면 제소기간이 1년으로 단축돼야 하므로 피고들에 대한 이 사건 소가 모두 각하돼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살피건대, 상법 제840조 제2항은 제1항의 기간을 단축하는 선박소유자와 용선자의 약정은 이를 운송계약에 명시적으로 기재하지 아니하면 그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 사건 운송계약에 그와 같은 약정이 기재돼 있음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으므로, 피고 C의 이 부분 주장 또한 받아들일 수 없다.

나) 제척기간의 기산일

(1) 상법 제840조 제1항은 “선박소유자의 용선자에 대한 채권 및 채무는 그 청구원인의 여하에 불구하고 선박소유자가 운송물을 인도한 날 또는 인도할 날부터 2년 이내에 재판상 청구가 없으면 소멸한다. 이 경우 제814조 제1항 단서를 준용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제814조 제1항 단서는 “다만, 이 기간은 당사자의 합의에 의해 연장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운송물을 인도한 날 또는 인도할 날’이 제척기간의 원칙적인 기산점이 되고, 그 기간을 당사자의 합의에 연장할 수 있다.

(2) 이 사건 제1화물은 2022년 6월12일에 일본 F 조선소에 도착했고, 이 사건 제2화물은 2022년 8월18일 F 조선소에 도착하기로 예정돼 있었던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거나 앞서 살펴본 것과 같다. 따라서 이 사건 각 운송계약에 관한 피고 B의 D에 대한 채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청구원인의 여하에 불구하고 이 사건 제1화물의 경우 2024년 6월12일, 이 사건 제2화물의 경우 2024년 8월18일 제척기간 완성으로 소멸한다.

다) 제척기간의 연장

(1) 인정사실
앞서 든 증거들, 을가 제1 내지 8호증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가) D는 2023년 5월17일 피고 B에게 “L 호선의 시효 연장을 위해 보험사에서 선사 측에 추후 있을 수도 있는 구상권 청구를 위해 시효 연장을 올해 말까지 연장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이메일을 발송했다. 이에 대해 피고 B은 2023년 6월2일 D에게 “동 건 관련해 시효 연장 컨펌 드리오니, 업무에 참조 부탁드립니다.”라고 답변했다.

(나) D는 2024년 1월18일 피고 B에게 “L, H 호선의 사고와 관련해 2024년 6월30일까지 시효 연장을 부탁드리오니 이메일로 회신 부탁드립니다.”라는 이메일을 발송했다. 이에 대해 피고 B은 2024년 1월22일 D에게 “아래 메일로 주신 사고 건 관련해 6월30일까지 시효 연장하겠습니다.”라고 답변했다.

(다) 원고 소송대리인은 2024년 6월12일 피고 B에게 이 사건 제척기간 연장 합의서 초안을 첨부해 “D 일본향 화물(래싱 브릿지) 손상 건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2024년 6월30일로 연장된 Time-bar를 2024년 12월30일까지 연장하고자 하오니, 이에 대한 동의서(이메일도 가능합니다.)를 2024년 6월14일까지 보내주시길 요청드립니다.”라는 이메일을 발송했다.

(라) 피고 B이 위 원고 소송대리인의 이메일에 답변하지 않자, 원고의 소송대리인은 2024년 7월4일 재차 “저희는 표제 건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첨부와 같이 제척기간 연장합의서를 보내드리오니, 확인하신 후 이견이 없으시면 귀사의 명판과 직인을 날인하신 후 칼라스캔본을 저희에게 보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이메일을 다시 송부했다. 이후 피고 B은 2024년 7월5일 원고 소송대리인에게 이 사건 제척기간 연장 합의서를 날인해 송부했다.

(마) 피고 B의 대표자 M는 2024년 7월5일 보험중개인인 N에게 이 사건 제척기간 연장 합의서 초안을 송부하며 대응 방안을 문의했고, N는 ‘선주의 제척기간(시효) 연장 동의에 대해 이것이 선주가 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된다’는 문구를 추가하는 것을 제안했다.

(바) 피고 B은 2024년 7월5일 피고 C에게 “D 일본향 화물(래싱 브릿지) 손상 건 관련해 피고 B은 첨부와 같이 용선자로부터 제척기간 연장 합의에 대한 동의서를 요구 받아 이에 합의하고자 함을 알려드립니다.”라는 이메일을 발송했다.

(2) 이 사건 각 화물에 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제척기간 연장

(가)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피고 B은 D의 여러 차례에 걸친 제척기간 연장요청에 관해, 2024년 6월22일 최종적으로 2024년 6월30일까지 제척기간을 연장하는 것에 동의해주었는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사건 제1화물은 2024년 6월30일, 이 사건 제2 화물은 2024년 8월18일 제척기간이 도과해 소멸한다.
나아가 원고와 피고 B은 2024년 7월5일 이 사건 제척기간 연장 합의를 통해 이 사건 각 화물에 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재차 2024년 6월30일로 소급해 2024년 12월31일까지 연장한다고 합의했는바, 이 사건 제2화물에 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아직 제척기간이 도과하지 않았으므로 위 청구권의 제척기간은 이 사건 제척기간 연장 합의로 인해 2024년 12월31일까지 유효하게 연장됐다고 봄이 타당하다.

(나) 이에 대해 피고 B은 원고의 기망에 의해 이 사건 제척기간 연장합의에 이르렀으므로 이를 취소한다고 주장하나, 피고 B이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 B이 원고로부터 기망을 당해 이 사건 제척기간 연장 합의에 이르게 됐다고 보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이 부분 피고 B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앞서 든 증거들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해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D는 2023년 5월경 피고 B에게 최초로 이 사건 각 화물의 파손과 관련해 시효 연장을 요청하면서 그 목적을 ‘보험사의 선사에 대한 구상금 청구’라고 분명히 밝힌 점, ② 피고 B의 대표자 M는 원고 측뿐만 아니라 보험중개인과도 여러 차례 소통해 대응 방안을 문의했고, 이 사건 제척기간 연장 합의 체결 전 피고 C에게 D로부터 제척기간 연장 합의에 대한 동의서를 요구받아 이에 합의하고자 한다고 통보하기도 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 B은 이 사건 제2화물에 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제척기간을 진정한 의사로 연장해 주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다) 한편 이 사건 제1화물에 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2024년 6월30일 이미 제척기간이 도과했으므로, 2024년 7월5일자로 이루어진 이 사건 제척기간 연장 합의를 제척기간 도과로 인한 법적 이익의 포기로 해석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3) 이 사건 제1화물에 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제척기간 도과의 법적 이익 포기 여부

(가) 관련 법리

상법 제814조 제1항에서 정한 제척기간이 지난 뒤에 그 기간 경과의 이익을 받는 당사자가 기간이 지난 사실을 알면서도 기간 경과로 인한 법적 이익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표시한 경우에는, 소멸시효 완성 후 이익의 포기에 관한 민법 제184조 제1항을 유추적용해 제척기간 경과로 인한 권리소멸의 이익을 포기했다고 인정할 수 있고(대법원 2022년 6월9일 선고 2017다247848 판결 참조), 이는 상법 제814조 제1항 단서를 준용하는 상법 제840조 제1항의 문언 및 체계에 비추어 보건대, 상법 제840조 제1항에서 정한 제척기간도 마찬가지이다.

(나) 판단

위 관련 법리에 비추어 보건대, 피고 B이 제척기간 경과로 인한 권리소멸의 이익을 포기했음을 인정하려면, 제척기간이 지난 뒤에 그 기간 경과의 이익을 받는 당사자가 기간이 지난 사실을 알면서도 기간 경과로 인한 법적 이익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표시한 경우여야 한다. 그러나 앞서 든 증거들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해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을 종합하면, 원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 B이 이 사건 제1화물에 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제척기간이 지난 사실을 알면서도 제척기간 도과로 인한 법적이익을 받지 않겠다는 효과의사를 표시했다고 보기 부족하며,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① 이 사건 제척기간 연장 합의에는 “용선자의 각 손해에 관한 선주의 책임과 관련해, 2024년 6월30일로 소급해 2024년 12월31일까지 제척기간(시효)을 연장함에 서로 동의하고, 제척기간이 2024년 12월31일까지 중단/종료 없이 계속 진행함을 상호확인함에 따라 용선자는 2024년 6월29일 대한상사중재원에 신청한 중재를 취소한다.”라고 기재돼 있을 뿐, 이 사건 제1화물에 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제척기간이 완성되었다거나, 피고 B이 위 제척기간 도과로 인한 법적이익을 포기하겠다는 내용이 전혀 기재돼 있지 않다.

② 원고의 소송대리인은 피고 B이 이 사건 제척기간 연장 합의를 요청하며 보낸 2024년 6월12일자 이메일에 답변하지 않자, 제척기간이 도과한 이후인 2024년 7월4일 재차 피고 B에게 이 사건 제척기간 연장 합의서 날인을 촉구했는데, 위 이메일에서도 2024년 6월30일자로 이 사건 제1화물에 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제척기간이 도과한 사실을 알리지는 않았다.

③ 제척기간 도과로 인한 법적이익의 포기는 소멸시효 완성에 관한 민법 제184조 제1항의 유추적용으로 인정되는 것인데, 채무자가 시효완성 후 채무를 승인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시효완성의 사실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되지 않고, 시효이익 포기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법적으로 보장된 시효이익의 포기라는 법적 효과를 의욕하는 효과의사의 표시가 있어야 한다(대법원 2025년 7월24일 선고 2023다240299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따라서 피고 B이 단순히 기간연장에 동의했다는 점만으로는 제척기간 도과로 인한 법적 이익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해석할 수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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