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08 09:38

한국 해운업의 미래, 풀어야 하는 숙제들

기고/한국해양수산개발원 이성우 본부장


최근 국가의 지리적 위치가 국운에 미치는 영향을 기술한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한 국가가 위치한 지정학적, 지경학적 조건들이 그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고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흥하고 쇠하는지를 서술한 책들이다. 이 책들의 여러 공통점들 중 하나는 우리나라가 있는 한반도가 공히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만나는 곳으로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우리 민족의 국력이 강하면 중심지가 되지만 국력이 약해지면 전쟁과 긴장의 공간이 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맥락에서 우리 역사 속에 있는 임진왜란, 일제강점, 6.25전쟁 모두 대륙과 해양세력의 충돌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우리는 항상 대륙세력과 가까울수록 쇠하고 해양세력과 가까울수록 흥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는 중국 문화권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아니면 대륙과 단절된 상실감이 이유인지 모르지만 대륙에 대한 갈망은 강하고 해양에 대한 갈망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듯하다. 심지어 한반도가 분단된 이후 해양을 통해 국부의 절대량을 창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러한 분위기는 강한 것 같다. 한 예로 신정부가 들어서면 제일 먼저 그 존치 여부가 논의되는 부처가 바로 해양수산부이다. 정부 그리고 국민들의 생각이 대륙지향적이기 때문에 바다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부족하고 결국 해양관련 산업 및 기업의 생존에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이어지는 것 일지 모른다. 한때 우리나라 10대 외화획득 기여산업 중 4위였던 해운산업이 2019년 현재 10위권으로 몰락하고 외화 획득액 10조원이 사라진 것도 글로벌 상위 해운기업이었던 한진해운이 3년 전에 파산한 것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는 듯하다.

한편 우리나라 외화획득 기여도 10위권 산업은 해운업을 제외하고는 모두 제조업이다. 서비스는 상품을 생산하는 제조업과 달리 소비자에게 재화와 용역을 제공하는 활동이 중심이 되는 산업으로 탈공업화 사회의 중심 산업이다. 우리나라의 산업구조가 점진적으로 농업에서 제조업,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전환되는 이유도 우리나라 경제가 고도화돼 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결론적으로 해운업을 위시한 물류업은 우리나라 산업구조의 고도화 과정과 같은 흐름 속에서 성장해 가는 산업이다. 4차 산업기술과의 연계성, 생활 밀접형 유통산업과의 융합성 등이 물류산업의 특성과 중요성을 보여주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물류업을 보는 시선은 사뭇 다르다. 물류와 같은 전통 서비스 산업은 장치나 건물에 대한 투자는 따르나 사람들의 지식, 정보 그리고 경험이 합쳐서 무에서 유를 창출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진가를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 예로 우리나라 물류기업들은 사업을 확장할 때 금융권에서 자금 빌리는 것이 매우 어려운데 그 이유는 금융권은 일반적으로 물류기업의 사업성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을 주로 담보로 하는 대출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4차 산업기술의 도입이 가장 적극적인 물류산업에서 핵심 비용요인인 전기료는 제조업 대비 턱없이 비싼 요율을 적용받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회피하는 택배 상하역 작업에 외국인 노동자 고용허가를 이미 10여년 전부터 요구하고 있으나 제조업과 달리 허용되지 않고 있는 상황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요즘 회자되고 있는 갑질논란 이야기가 나오면 물류업계 종사자들은 갑을병(甲乙丙)도 아닌 정(丁)이라고 자신들을 자조하곤 한다. 우리나라 산업구조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이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아직 제조업 지원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 상황인 듯하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대륙 지향과 제조업 지향의 교집합적인 사고방식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물류, 특히 해운산업의 문제를 야기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2016년 한진해운 법정관리 직전 당시 법원에서 고용한 법정관리 담당 전문가가 본인한테 한진해운 처리에 대해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내일 한진해운의 법정관리가 예정돼 있는데 한진해운 자산 평가에 대한 질문에 그때 본인은 ‘글로벌 물류업은 영업망과 서비스망을 기반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신용의 중요성이 무엇보다 높아서 법정관리라는 말은 바로 파산으로 연결된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제조업의 경우 법정관리 이후 구조 조정 및 유형자산 처분 등의 자구책 강구를 통해서 회생할 수 있다. 물론 자산을 많이 가진 물류기업의 경우도 이 과정을 통해서 회생이 가능하다. 그러나 글로벌 선사의 경우, 오랜 시간과 노력을 통해 쌓아온 마케팅 능력, 글로벌 영업망, 서비스망 등의 무형자산은 기업 경쟁력의 핵심요소이고, 이에 대한 신뢰도 상실은 결국 기업가치를 급락시키고 파산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갈 수밖에 없다(<그림-1> 참조).
 


한진해운의 파산은 당시 정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방만한 경영으로 인한 오너 리스크였는지 업계에서 말하는 정부의 대응전략 실패였는지에 대해 아직도 상호 공방이 끝나지 않은 씁쓸한 상황이다. 그러나 2020년 우리나라의 해운업계는 새로운 갈림길에서 다시 큰 몸살을 앓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미래를 헤쳐 나가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0년은 국제해사기구(IMO)의 선박환경규제가 시행되고 글로벌 선사들의 얼라이언스 재편이 예고된 해이다. 위기의 우리나라 해운업계에 이중삼중의 고비가 휘몰아치는 시점될 것이다. 이제 정부와 업계는 같은 목표와 생각을 가지고 이 위기를 극복하고 나아가 우리나라 해운업계의 경쟁력 제고에 필요한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한진해운의 실패에서 반면교사의 자세로 우리나라 해운업계의 성장 방향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해운기업의 선택과 집중전략이 필요하다. 지나친 선복량 확장은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 생존과 성장을 위해서는 영업 지역과 화물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수익성이 보장되는 항로 발굴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일반 컨테이너 운송보다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특수 컨테이너, 예를 들면 냉동·냉장컨테이너와 같은 화물 비즈니스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둘째, 글로벌 마케팅 강화, 영업망과 서비스망 확대를 위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선복량에 걸 맞는 마케팅과 영업망 그리고 전문인력 확보가 필요한데 정부가 제시한 목표라면 과거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인력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고용이 필요하다. 정부가 목표로 하는 선복량인 약 110만 TEU가 더 확충되면 현재 현대상선 규모의 3배가 되고 이 경우 영업 목표 역시 동일한 규모로 확대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업 준비뿐만 아니라 영업 인력과 조직 확보가 동시에 이루어야 한다. <표-1>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과거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수송량, 매출액, 인력과 영업망을 상호 비교해 보면 대략 연간 800만 TEU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3,000명 이상의 인력과 100개 이상의 영업망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셋째, 기업의 미래지향적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야 한다. 해운업은 단기 호황과 장기 불황을 반복하는 업종이다. 따라서 글로벌 선사들은 물류업, 해운업뿐만 아니라 물류업 외부로도 사업영역을 확대해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한 예로 세계 최대 선사인 머스크(Maesk)는 해상운송 뿐만 아니라 항만터미널 운영, 복합물류사업, 해상플랜트 사업 등으로 수익 모델을 다변화해 개별 경기 변동에 대응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선사들이 스스로 해운업 내에서 혹은 관련 물류업 내에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방법이 있다. 사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이런 맥락에서 터미널 운영사업과 전문 물류기업을 계열사로 확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파산과 법정관리라는 굴레에서 스스로 적극적인 사업 확장은 어려운 듯 하고 다른 대안으로 국적 대형물류기업이 우리 선사를 M&A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시장기반 경영전략 수립이다. 화물발생 수요, 선가, 용선료 그리고 유가 변동을 미리 예측해서 대응할 수 있는 경영전략을 수립해 저가에 선박을 발주하고 고가에 중고선을 매각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과거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나라 해운업계는 1998년 정부의 일괄적인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부채비율 200%를 맞추기 위해 대대적인 자구노력을 했다. 2000년 이후 찾아온 호황기에 글로벌 선사들과 경쟁을 위해 선복량 확대 정책을 펼쳤으나 그 시점이 2004년 이후였고 발주한 선박이나 임대한 선박이 영업을 개시한 시점인 2008년 이후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오는 악순환의 고리에 놓이게 된 것이다. 따라서 기업의 경영진들은 단기간이 아닌 중장기적인 시장 수요의 움직임에 맞춰서 경영전략을 구축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해운 맞춤형 금융정책이 필요하다. 해양진흥공사의 지원도 유효하나 기본적인 높은 금리는 중국과 일본 선사들보다 우리 선사들이 항상 열위에 놓이게 되는 요인일 수 밖에 없다. 중국과 일본의 1%대의 조달금리와 우리나라의 5% 이상의 조달금리는 기업간 경쟁에서 출발점부터 달라지게 된다. 특히 외부차입을 통해 글로벌 사업을 주로 하는 원양선사의 경우 이 부담은 더욱 크다. 금융권이 시장금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지적보다 왜 중국과 일본이 낮은 조달금리 적용이 가능하도록 하게 하는 그들이 해운업을 바라보는 시각을 우리나라 해운금융의 정책 시작점으로 삼아야 한다. 여섯째, 정부와 업계 금융기관 등과의 협력적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해운업과 연결돼 있는 조선, 철강, 에너지 산업의 공생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현재 분리돼 있는 거버넌스를 효과적으로 연결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해수부, 산자부, 기재부, 금융위 등 해운업의 전후방 산업군을 관리하는 부처가 흩어져 있다. 또한 해당 가치사슬을 통합적으로 조정 및 지원해 주는 상설조직도 없는 상황이다. 물론 위기가 발생할 경우 총리실이나 T/F형태의 조직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해당 산업과 이와 연계된 가치사슬이 경쟁력 제고와 지속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상설적인 협력 거버넌스 체제가 존재해야 한다. 일곱째, 국제해사기구(IMO)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글로벌 친환경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차원의 해운업 지원이 필요하다. IMO는 선박들을 대기오염의 주범으로 인지하고 2020년 1월 1일부터 현재 사용하는 선박연료의 유황함유량을 3.5%에서 0.5%로 낮추어 규제할 계획이다. 이 문제를 대응하기 위해 선사들은 저유황유를 사용하거나 스크러버(scrubber) 시설을 선박에 장착해서 자체적으로 연료를 정제하거나 친환경연료인 LNG로 추진되는 선박을 신규로 제작하는 방법 밖에 없다. 해당 대안들 모두 추가적인 비용을 유발시키고 추가적인 환경규제로 새로운 친환경 선박을 만들거나 고가의 저유황유를 사용한다는 것은 선사들을 매우 어려운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사전에 준비를 못한 해운기업들의 잘못이 있으나 우리나라 선사들의 도산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정책이 필요하다. 여덟째, 해운업계의 스마트화 대응 지원이다. 글로벌 선사들은 비용 절감, 효율성 제고 차원에서 블록체인, 빅데이터, 무인기술 도입에 적극적이다. 이러한 흐름에 뒤처지게 되면 결국 고비용 구조에서 우리 선사들이 생존할 가능성은 낮아진다. 특히 머스크는 2018년 IBM과 글로벌 무역 블록체인 플랫폼을 위한 ‘트레이드렌즈(TradeLens)’를 설립했고 프랑스 CMA-CGM, 중국 COSCO 등도 ‘글로벌 쉬핑비즈니스 네트워크’를 만들어 대응 중이다. 단순한 하드웨어 기술을 통한 자동화가 아니라 거래방식 자체를 변경시킬 수 있는 소프트웨어 기술인 블록체인을 통해 사업방식을 바꾸는 스마트화 단계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삼성SDS 등 IT기업과 현대상선 등 선사들이 참여하는 해운·물류 블록체인 컨소시엄을 결성해서 운영 중이지만 구속력이나 확장성이 낮은 일시적인 시범사업 체계에 불과함으로 이에 대한 본격적인 대응 체계가 구축이 필요하다. 아홉째, 해운업 관련 융합클러스터가 필요하다. 해운업은 금융, 법률, 제조, 유통, 물류, IT의 융합산업이다. 현재처럼 유관분야가 분리된 형태로는 성장이 어렵다. 선박의 매입과 매각은 타이밍이 중요하지만 이 업무를 대행하는 전문가들은 해운기업 임직원이 아니라 변호사, 회계사, 해운브로커 등이고 이들은 대부분 서울 혹은 홍콩, 싱가포르 등 글로벌 도시에 상주하고 있다. 즉 정부가 해양수도로 지원해 주고 있는 부산에 서울 혹은 홍콩과 같은 금융, 비즈니스 중심지를 조성하고 해당 전문가들이 원하는 수준의 생활공간을 만들어 주거나 아니면 다시 서울로 해양금융 중심을 옮겨야 제대로 된 클러스터 효과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마지막으로 세계 해운은 글로벌 선사들간 얼라이언스 체제로 구축돼 있기 때문에 국적 단일 선사로 글로벌 해운시장에서 단독 생존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글로벌 선사들과 얼라이언스 체결이 가능한 적정 선복량 확충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 다만, 단순히 양적인 선복량에 치중할게 아니라 질적인 사업능력 제고가 우선이고 이에 필요한 적정 수준의 선복량 규모를 파악하고 확보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가 자랑했던 해운강국의 시대가 과거의 빛바랜 사진이 아니라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기업의 각고 자구노력과 함께 정부의 혜안을 가진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안타깝게도  해운업은 우리나라 수출입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국가 서비스 기간산업으로써 그 중요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B2B 비즈니스에 의해 주로 이루어지는 점 때문에 국민들의 체감도가 낮다. 또한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해양분야에 대한 국민들의 인지도도 낮은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산업의 중요성과 관계없이 결정적인 순간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이 높다. 결국 해운업이라는 특정산업의 성장을 위해 정부의 특별한 지원을 무작정 요구할 것이 아니라 국부 창출과 국가 경제의 수준을 높여줄 수 있는 산업이라는 분명한 비전 제시, 당위성 확보 그리고 성장전략 제시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모두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각주)
스크러버(scrubber)

액체를 이용해서 가스 속에 부유하는 고체 또는 액체입자를 잡아서 걸러내는 장치로 선박에 사용되는 고유황유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을 이 원리를 통해서 걸러내는 장치임. 그러나 해당 장치를 통해서 걸러지는 오염물질을 처리하는 하는 과정에서 2차 수질오염 등의 문제가 존재함(화학대사전 내용 저자 수정 편집, 검색일: 20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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