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의 일반원칙에 따르면, 채무자(운송인)는 채무불이행과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모든 손해를 배상해야 하며(민법 제393조 제1항), 채무자가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특별한 사정으로 인한 손해도 배상해야 한다(민법 제393조 제2항).
그러나 운송인이 위 손해를 모두 배상할 경우 다수인을 상대로 대량의 화물을 운송해야 하는 운송인에게 너무 큰 부담이 될 뿐 아니라 개별적인 송하인별로 배상의 내용이 다를 수 있다.
이에 상법은 법률관계를 획일적으로 처리하기 위하여 배상액을 일정액으로 제한하는 ‘정액배상주의’를 채택하여, 육상운송인과 마찬가지로 해상운송인도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하고 있다(상법 제815조, 제137조).
운송물이 전부 멸실 또는 연착된 경우의 손해배상액은 인도한 날의 도착지의 가격에 의하고(상법 제137조 제1항), 운송물이 일부 멸실 또는 훼손된 경우의 손해배상액은 인도한 날의 도착지의 가격에 의한다(동조 제2항).
그러나 운송물의 멸실, 훼손 또는 연착이 운송인이나 그 사용인의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인한 때에는 운송인이 모든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진다(동조 제3항).
우선, 해상운송인이 위 규정으로 자신의 손해배상책임을 경감하기 위한 첫 단추로서 ‘연착(delay in delivery)’사실이 인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상법에서 연착에 대하여 특별히 그 판단기준을 명시하고 있지 않고 있다.
일반적으로 운송품의 연착이란, 약정일시 또는 통상 목적항에 도달하여 인도되어져야 할 일시에 운송품이 인도되지 않은 것을 말한다.
선하증권의 이면약관상 운송계약을 증명하는 문서 등에 특정일을 명기하도록 규정하였음에도 이를 명기하지 않고 해상운송인이 운항일정표만 제시한 상황에서, 운항일정표상 기재된 예정 도착일을 도과하면 그 사실만으로 연착이 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하급심 법원인 서울지법은 그러한 경우 연착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운항일정표는 그 기재 내용과 같이 어디까지나 예정의 도착시(expected time of arrival)로 하여 발표되어 진 것이므로 이를 가지고 바로 특정일 도착에 관한 약정이 있었다고 인정될 수는 없으며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는 이상, 위 예정도착일을 어겼다는 것 자체만으로는 연착으로 인정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서울지법 2002. 8. 28., 선고, 2002가단121261, 판결 참조).
위 법원의 판단은 단순히 운항일정표의 기재만으로 연착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보는 것보다, 연착이라는 사실 자체는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자가 입증책임을 부담하고, 입증책임을 부담하는 자가 이 사건 운송과정의 제반 사정을 입증하면서 그런 사정 속에서 성실한 운송인의 경우에 소요될 운송기간이 어떠하다는 사실과 이를 도과한 사실을 충분히 입증하면 연착이 인정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에 운송물 인도에 관한 약정일시는 존재하지 않는 경우,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최근 용선계약의 내용과 통상적인 거래관념 등을 모두 고려하여, 운송에 필요한 통상적인 기간을 현저히 초과한 것만으로 연착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1. 5. 28. 선고 2020가합540450 판결 참조).
그리고 운송물의 연착으로 인한 손해 이외의 손해에 대하여는 상법상 정액배상주의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즉, 운송인이 연착 사실 이외에 ‘연착으로 인한 손해 사실’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하는 경우, 위 이익을 누리지 못하고 운송인은 민법의 채무불이행책임의 일반 원칙에 따라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 성우린 변호사는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전 팬오션에서 상선 항해사로 근무하며 벌크선 컨테이너선 유조선 등 다양한 선종에서 승선 경험을 쌓았다. 배에서 내린 뒤 대한민국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로펌에서 다양한 해운·조선·물류기업의 송무와 법률자문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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