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6 09:30

판례/ “선박결함 미신고죄를 합헌이라 할 수 있을까?”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해양수산부 고문변호사)
<9.2자에 이어>

1. 시작하며 
이번 호에서는 선박안전법의 선박결함 미신고죄를 합헌으로 본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관해 소개하고자 한다.

2. 사실관계
이 사건 선박사고 및 헌법재판에 이른 경위는 아래와 같다:

가. 청구인 ○○ 주식회사(이하 ‘선사’라 한다)는 철광석, 석탄 등 원자재의 해상화물운송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이며, 청구인 김○○은 위 선사의 대표이사이다. 청구인 김□□은 위 선사의 해사본부장으로서 선박의 수리나 선원의 탑승, 선박수리업체 선정 등 해사본부 업무 전반을 총괄했던 사람이다. 청구인 변○○과 청구인 박○○은 청구인 선사의 해사본부 산하 공무팀에서 각각 광석 화물선 ○○호와 □□호의 공무감독으로 근무하면서 선박의 수리나 유지·보수, 선박검사의 준비 등에 관한 업무를 수행했던 사람이다.

나. 청구인 선사 소속 14만 톤급 광석 화물선 ○○호는 2017년 3월26일 한국인 선원 8명, 필리핀인 선원 16명과 철광석 26만 톤을 싣고 브라질을 출발해 중국으로 향하던 중, 2017년 3월31일 23:20경 브라질 산투스로부터 약 2,500km 떨어진 남대서양 해역에서 연락이 두절됐다. 다음 날인 2017년 4월1일 23:22경 구명보트에 타고 있던 필리핀인 선원 2명이 구조됐으며, 나머지 22명의 선원들은 모두 실종됐다.

다. 이에 청구인 선사 소속 선박들의 운항기록에 관한 수사가 개시됐고, 청구인 김○○, 김□□, 변○○은 ‘2016년 5월경 ○○호의 3번, 4번 평형수 탱크 사이 횡격벽이 휘어져 횡격벽에 부착된 수직보강재가 휘는 등 감항성의 결함이 발생한 사실’을, 청구인 김□□, 박○○은 ‘2017년 2월경 □□호의 상갑판 등 선체에서 좌굴이 발생하고, 여러 화물창과 평형수 탱크에 균열이 발생해 누수가 생기는 등 감항성의 결함이 발생한 사실’을 각각 알고도 이를 해양수산부장관에게 신고하지 아니함으로써, 선박의 감항성의 결함을 발견한 자에게 해양수산부장관에 대한 신고의무를 부과하는 구 선박안전법 제74조 제1항 및 위 신고의무 위반에 대한 벌칙조항인 같은 법 제84조 제1항 제11호를 위반했다는 혐의로 각각 기소됐다.

라. 청구인들은 1심 계속 중 구 선박안전법 제74조 제1항, 제84조 제1항 제11호에 대해 위헌법심판제청을 신청했으나, 부산지방법원은 2020년 2월18일 위 신청을 기각했고(부산지방법원 2019초기1355), 위 기각결정과 함께 청구인 김○○을 징역6개월에 집행유예 1년, 청구인 김□□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청구인 변○○을 벌금 300만 원, 청구인 박○○을 벌금 300만 원, 청구인 선사를 벌금 1,500만 원에 각 처한다는 판결을 선고했다(부산지방법원 2020년 2월18일 선고 2019고합50 판결). 이에 청구인들은 2020년 3월24일 위 조항들에 대해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마. 한편 위에 언급된 선박안전법 74조 1항 및 84조 1항 11호는 아래와 같다:
제74조(결함신고에 따른 확인 등) ①누구든지 선박의 감항성 및 안전설비의 결함을 발견한 때에는 해양수산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그 내용을 해양수산부장관에게 신고해야 한다. 제84조(벌칙) ① 선박소유자, 선장 또는 선박직원이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는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1. 제74조 제1항에 따른 선박의 결함 신고를 하지 아니한 때

3. 헌법재판소의 결정의 요지
헌법재판소는 아래와 같은 이유들을 들어 위 조항에 합헌을 결정했다:

O 이처럼 감항성은 해운업계에서는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개념으로서 운송인과 화주 및 보험사 모두의 이해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특히 철광석 등 원자재의 해상화물운송을 목적으로 설립된 청구인 선사는 운송인의 지위에 있을 경우가 많으므로, 청구인들의 입장에서는 사고 발생 시 감항능력 주의의무를 다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한 경우 치명적인 경제적 손해를 입게 되는바, 감항성의 의미와 그에 관한 구체적 사례를 숙지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선박안전법에서 말하는 감항성 또한 위와 같이 해운업계에서 통용되는 감항성 또는 감항능력의 개념을 차용하되 그 중에서도 선박의 안전성 측면을 특히 강조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O 이처럼 ‘감항성의 결함’은 일반적·규범적인 개념으로서 그 의미가 다소 광범위하기는 하나, 이는 안전한 항해와 관련된 무수히 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 감항성이라는 개념의 본질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불가피한 측면이 크다. 선박이 감항성을 갖추려면 선체의 외벽과 격벽, 용골 등 구조의 안전성, 기관, 전기설비, 방화설비, 구명정과 구명조끼 등 구명장비, 항법장치, 연락설비 등을 모두 갖추어야 하고, 이를 적절히 운용할 수 있는 선원을 탑승시켜야 한다. 이는 개별적인 선박의 규모와 운항목적은 물론이고 운항하려는 바다의 특성을 고려한 것이어야 하는데, 바다의 상황은 계절과 기상, 시간에 따른 조류의 변화 등에 따라 같은 해수면 위라고 하더라도 천차만별이므로, 위와 같은 요소들을 고려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가정해 법령에 구체적으로 기술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울뿐더러 바람직하다고 할 수도 없다.

O 결국 어떤 선박이 감항성을 갖추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확정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은 없고, 특정 항해에서의 구체적·개별적인 사정에 따라 상대적으로 판단해야 하는바, 심판대상조항의 수범자인 선박소유자, 선장, 선박직원은 자신이 소유하거나 운항하는 선박에 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자들로서 해당 선박이 특정 항해에서 감항성을 갖추었는지 여부에 관해 충분히 파악하고 예측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처럼 처벌법규의 수범자들이 일정한 범위로 한정돼 있는 경우에는 수범자들이 금지되는 행위의 구체적인 내용을 충분히 파악하거나 예측할 수 있음을 전제로 명확성에 대한 요구가 다소 완화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헌재 2023년 10월26일 2023헌가1 참조), 신고의무조항이 ‘감항성의 결함’의 구체적 의미에 관해 직접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더라도 해당 규정이 수범자의 입장에서 예측가능성 내지 명확성을 결여했다고 보기 어렵다.

O 청구인들은 ‘감항성의 결함’의 의미가 불명확한 탓에 매우 경미한 결함의 신고를 누락한 경우에도 처벌받을 위험에 놓이게 되는 것이 부당하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정기적 혹은 임시적으로 이루어지는 선박안전법상 검사들에 합격할 수 있는 상태를 감항성을 갖춘 것이라고 본다면, 청구인들이 우려하는 바와 같이 선박의 감항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는 매우 경미한 결함까지 신고의무의 대상에 포함된다고 해석되지는 아니하며, 구체적 사안에서 법관의 보충적인 해석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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