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선 승선 점검을 하다 보면, 점검과는 관련 없는 현장의 한마디가 더 중요한 단서를 던질 때가 있다.
얼마 전 업무차 목포항에서 도초도를 다녀오는 여객선에 승선했을 때였다. 이 항로는 신안1교(안좌도-팔금도)와 서남문대교(비금도-도초도) 등 여러 교량 아래를 통과한다. 여객선이 서남문대교에 접근하던 중 선장에게서 뜻밖의 말을 듣게 됐다. “교량 아래쪽을 통과할 때 교각 기둥을 선박용 레이더로는 확인하기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이미 해당 항로가 익숙한 선장이 무심결에 한 말이었지만, 그 담담함이 오히려 마음에 걸렸다. 익숙하다는 것은 어쩌면 위험에 둔감해졌다는 뜻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해상교통 안전은 사고가 발생한 뒤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위험을 미리 찾아내고 관리하는 데서 출발한다. 특히 많은 국민이 이용하는 여객선은 운항자의 경험과 주의에만 안전을 맡겨 둘 수 없다. 항로와 시설, 운항 환경 전반을 함께 살피는 예방 중심의 접근이 필요하다.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교각
그런 점에서 교량 하부 통항 수역의 교각 구조와 선박용 레이더 식별성 문제는 한 번쯤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일부 교각은 정방형 구조로 설계돼 있다. 이 경우 선박이 접근하는 방향에 따라 레이더에서 표적이 선명하게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선박용 레이더는 야간이나 안개 등 제한된 시계에서 장애물을 탐지해 충돌을 예방하는 기본 항해 장비다.
하지만 물체의 형상과 접근 각도, 해상 상태, 레이더 조정 상태에 따라 탐지 성능은 달라질 수 있다. 정방형 구조물은 정면에서는 일정 수준의 반사 신호를 얻을 수 있지만, 사선 방향에서는 반사파가 측면으로 흩어져 레이더로 되돌아오는 신호가 약해질 수 있다. 실제로 존재하는 구조물이라도 특정 조건에서는 기대만큼 명확하게 식별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선박은 항해 중 해면 반사파나 우설 반사파를 줄이기 위해 레이더 감도와 클러터(Clutter)를 조정한다. 이 과정에서 원래 반사 강도가 크지 않은 표적은 더욱 희미하게 표시될 수 있다. 평소에는 괜찮을 수 있지만, 안개와 같은 제한 시계 상황에서는 어떨까.
육안으로 장애물을 식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선장은 레이더에 더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상대 선박과 교행((交行)하는 상황까지 겹치면 마주 오는 선박의 동정과 항로 유지, 장애물 회피 등을 동시에 판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교각 위치를 늦게 인지할 경우, 교각과 접촉하거나 이를 피하려다 항로를 벗어나 좌초할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 2021년 6월 21일 목포-홍도 항로를 운항하던 여객선이 서남문대교 교각과 접촉해 선체 일부가 파손된 사고가 있었다.
반사기 설치 등 안전대책 필요
물론 하나의 사고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그러나 운항자의 주의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위험 요소라면 그대로 둘 것이 아니라 공공안전의 관점에서 관리해야 할 위해요소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교각 기둥의 레이더 식별성을 높일 수 있는 레이더 반사기 설치 가능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RACON, AIS AtoN, 레이더 감지형 펜스 등 전자 항행보조시설을 보강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아울러 관계 기관이 함께 주간과 야간, 안개 등 다양한 조건에서 실제 교각의 시인성과 레이더 탐지 상태를 점검해 위험도를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절차도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는 교량 설계 단계부터 항행 안전성을 함께 고려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구조적 안전성과 기능성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앞으로는 선박이 통항하는 구간의 경우 레이더 식별성과 같은 전자적 가시성까지 함께 검토해야 한다. 이미 설치된 기존 교량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정방형 구조 등 반사 특성이 불리한 구간은 단계적으로 점검하고, 필요하다면 보완 시설 설치를 검토해야 한다. 이는 특정 수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사한 구조와 운항 환경을 가진 다른 교량 하부 통항 수역에도 적용할 수 있는 과제다.
공단도 이러한 현장의 위험 요인을 더욱 체계적으로 발굴하기 위해 해마다 해양사고 위해요소 발굴 공모전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교량 하부 통항 수역의 교각 식별성 문제를 비롯해 50건이 넘는 다양한 위해요소가 제안됐다. 단기간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겠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조직 차원에서 공유하고 개선 과제를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해상교통 안전은 눈에 띄는 위험만 관리한다고 확보되는 것이 아니다. 교량 하부 통항 수역의 교각 레이더 식별성 문제도 같은 관점에서 다시 바라봐야 한다. 현장에서 너무 익숙해 미처 위험으로 인식하지 못했던 요소일수록 한 번 더 점검하고 필요한 개선을 이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공공의 안전은 사고 이후의 대응이 아니라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만드는 세심한 사전 관리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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