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24 09:01

KSG에세이/무늬만 海技士 평생을 짝퉁으로 살며 얻은 벼슬 “해운계 甘草” (29)

서대남 편집위원
G-5 海運韓國을 돌이켜 보는 추억과 回想의 旅路 - (29)

항계내 용역업이란 영업을 통해 일감을 따오지 않으면 아예 불가능한 일인데다 아무리 작업을 하고 싶어도 그 마저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니 일감을 물어 날라야 하는 필자의 어깨는 가벼울 리가 없었다. 우선 조건없이 반기는 곳, 호형호제 관계를 유지해 오던 선사와 대리점들을 한바퀴 훑기로 했다.

K항업 안내를 겸한 홍보책자를 정성껏 그리고 거창하게(?) 만들어 필자의 주특기인 우체국 배달부, 유난히 짧은 황새다리지만 맨 땅에 헤딩하겠다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마음속 고속엔진을 장착하고 힘차게 시동을 걸었다.


韓國海大 30期 朴正植부장과 幻想의 드림팀으로 본격 營業

그러나 혼자는 벅찼다. 같이 활동할 러닝 메이트가 필요했다. 가급적이면 해기사 출신이 좋을 것 같았고 먼저 떠 오른 사람이 사용자 단체의 카운터 상대인 선원노조에 근무했고 회의나 관련 업무 협의차 자주 만났던 박정식부장(朴正植/한국해대 30기)이었다. 수소문 끝에 연락이 닿았고 필자가 해무부장 시절부터 서로를 잘 아는 사이라 짧은 설명에도 기다렸다는 듯 쾌히 승락을 했다. ‘K항업 서울사무소’란 간판 아래 조직원은 부사장인 필자와 그리고 영업부장 박정식 단 두 사람뿐. 식구가 단출해 좋았다.

드디어 2인1조랄까 2인1각으로 환상의 드림팀이 되어 발 빠르게 닥치는 대로 전국을 누비며 맹활약을 개시했다.

어떤 까닭에서 건 영업 상대를 잘 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중간에 다리를 놓거나 복잡한 절차의 소개과정 없이 독대해서 부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안다는 것과 일감을 따내는 것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게 마련이었다.

여기야 말로 한 마디면 되겠지 하고 믿고 찾은 곳이 어려울 경우가 있고 기대않고 무심결에 들린 곳에서 월척(?)을 낚는 케이스가 있어 참으로 요상한게 영업이요 이 바닥인가도 싶었다. 박부장과 둘이 방문 스케줄을 만들어 주간별 일정을 잡고 공략대상 선사를 정해 매일 오전 10시쯤 광화문이나 을지로 등 선사 밀집 지역에서 만나 몇 군데를 돌다가 해가 저물면 서울역 부근이나 아무데서고 돼지머리에 소주 한잔을 하는 즐거움은 참으로 기분 ‘짱’이었다.

첫 술에 배부르랴 당장에 무슨 수가 생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라싱업무라도 한 건 성사시키면 그것도 접대랍시고 담당자들을 대포집에라도 불러내어 한 입심 하는 필자로선 업계동향이나 시황 수집 등 정보수신 안테나 기능은 비교적 양호한 편이라 보고 들은 해운계 뉴스나 화젯거리를 서비스 안주로 보태서 취흥을 돋구며 피로를 풀곤 했다.

사실 거래처를 새로 뚫는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탈없이 잘 해오며 좋은 유대를 이어가고 있는데 잘 알거나 친분이 각별하다고 해서 불쑥 찾아가서 기존 거래선을 끊고 덜컥 손을 잡기는 그리 쉽지가 않았던 것이다.

특별한 하자나 실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상당히 보수적인 성향의 선사들이라 기존 거래처 바꾸길 꺼려했고 어쩌면 그게 상 도의상 당연했다.

그러나 이 바닥 역시 골 키퍼 있다고 골 못 넣으란 법 있냐는 식으로 티끌만한 인연이나 알량한 안면을 내 세우거나 중간에 이런 저런 다리를 놓아가며 막장의 일거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속에서 공방을 벌이는 꼴이 예사롭지 않았다.

심지어 앞 팀이 다녀가는 모습을 마주치거나 휴게실에 기다렸다가 작별 인사를 하고 나가는 뒷 통수를 본 후 연속으로 바통을 이어가며 상담을 잇는 경우도 있었으니 말이다.


경쟁치열한 港界內業서 밑바닥 기며 세일즈맨의 哀歡 체험

선용품이나 주부식 의류 등 물품공급의 용달업이나 통선업, 선박청소, 선박급유, 선박급수, 검수검정, 지방대리점, 고박, 컨테이너수리 등등 박물장사처럼 잡다한 항계내 업종은 소규모 자본으로 영세한 여러 업체들이 난립해서 경쟁하는 속성을 지닌 용역업이었다.

그래서 가끔은 낯 뜨거운 아귀다툼을 해야 했고 대개 협정요율이 있긴 했지만 원가 무시하고 다 남아봐야 새발의 피였으며 그나마 제값 받기조차 힘든 데다가 일을 끝내고도 혹시 마음에 들었는지 여부를 걱정해야 하는 세심함도 보여야 다음 거래가 불안하지 않았던 염려들은 지금 생각해도 애절하고 처절하기까지 했었던 것 같다.

같은 해운 울타리 안에서 한 식구로 밥벌이를 하는 처지이건만 그래도 그간 제법 정책주변에서 해운이 어떻고 저떻고 하며 선주 심부름꾼으로 머슴살이를 하면서도 크게 기죽을 일은 없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건 성층권 밖의 호강에 떠 받쳤던 시절의 옛 이야기가 됐고 일거리를 한 건 따느냐 마느냐에 신경을 곤두 세우느라고 전체 해운을 보던 눈은 순식간에 까막 눈에 십리도 못 내다보는 근시안이 되고 마는게 실망스러웠으나 팔자는 길 들이기에 달렸다니 어쩔 수 없는 노릇.

이 해 98년 2월25일에는 제15대 김대중대통령이 취임했고 경제정책의 핵심은 IMF 극복이란 절대명제에 집중되게 마련이었다. 앞서 1월에 선주협회는 한진해운 조수호사장을 협회장으로 재선임 했고 3월에는 해양수산부도 조정제장관에 이어 김선길 제3대장관이 취임했다.


’98년 15代 金大中대통령, 해양수산부 3代 金善吉장관 취임

심화된 IMF 금융위기 여파로 인한 수입억제 결과를 반영, 해상 물동량은 크게 둔화되고 시황이 침체되고 보니 해운업계의 진로나 경영은 말이 아니었다. 또한 미국의 해운개혁법안이 발효되고 대형 화주들의 입지가 강화되면서 북미항로에 취항중인 아시아계 선사들은 뒷덜미를 잡혀 영업활동마저 위축을 면치 못했다.

게다가 그간 해운산업 진흥과 발전의 밑 거름이 돼 왔던 해운산업육성법이 폐지되고 미력하나마 명맥을 유지해 오던 해운지원 시책들도 모조리 자취를 감추기에 이르렀다. 예정대로 1월 벽두부터 웨이버(Waiver) 제도와 연관되어 시행돼 온 지정 화물제도가 숱한 애환과 화제를 뒤로 하고 역사의 뒷장으로 종언을 고하며 사라졌다. 그나마 업계의 엷은 보호막이 걷히자 모름지기 홀로서기에 성공하는 기업만이 살아 남는 적자생존의 무한 경쟁시대를 맞게 된 것이었다.

또 그해 3월9일에는 국제선박등록제도가 도입되어 시행에 들어갔고 7월에는 IMO의 ISM코드가 발효됐다.

국내 금융권에서는 고가인 LNG선 건조자금의 지급을 거부하는 사태마저 빚어져 해운과 금융은 상당기간 힘겨루기에 돌입하기도 했다. 선일상선이 문을 닫고 쎄븐마운틴해운(대표:임병석)이 협회 신규회원으로 가입을 했다.

해외 매각이 늘어 34개 회원사의 외항 선복량은 377척 1,087만톤으로 전년보다 6%가 줄었고 무역량도 4억9천만톤 정도로 전년동기에 비해 6%가 감소했으며 운임수입은 약 116억달러 수준에 머물렀다.

그리고 무엇보다 해운계가 설상가상으로 맞게 된 갑작스런 애로장벽은 재정당국과 금융권이 은행감독규정을 개정하여 기업의 부채비율(DTE/Debt to Equity)을 200% 이하로 강제화한 조치였다. 해운계로선 분명 날벼락이었다.

고도의 자본집약적인 산업의 표본이 외항 해운업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산업분야와 동일하게 이를 예외로 인정하지 않고 200% 이내로 내리라는 것은 해운을 포기하거나 업종의 근본을 송두리째 무시하는 처사라고 맞섰고 일부 업체는 주거래 은행과 갈등을 빚은 끝에 FOC(편의치적)선으로 이적하는 사태까지 몰고 가기에 이르렀다.

정부와 협회는 국내 선주들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한국 P&I 설립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준비중인 국제선박등록법의 시행령도 마련하게 된다. 7월에는 광양항 컨테이너부두가 문을 열고 항로표지 기지창은 폐지가 됐고 한국항로표지협회를 설립하게 됐다. 또 전국해상노동조합연맹은 부산항 국제선원복지센터와 인천항 연안부두 선원복지회관의 기공식을 갖는 등 노조 활동은 빛났다.
6월4일에는 한국공인물류관리사회가 출범했다.


IMF여파 계속 支援策 폐지, DTE인하 强行으로 FOC 속출

또 8월28일에는 바다 살리기 국민운동본부 를 출범시켰고 11월20일에는 대북 관광사업이 열매를 맺어 그리운(?) 금강산에 첫배 금강호에 이어 2차선 봉래호를 취항시켰다.

3월에는 몰타와 파푸아뉴기니와 또 7월에는 그리스와의 이중과세방지협정을 체결했고 우즈베키스탄정부간에 소득과 자본에 대한 조세의 이중과세 회피와 탈세 방지를 위한 협정도 체결하게 된다.

기타 특기할 사항으로는 98년 6월16일에 한중해운협의회가 개최됐고 11월17일에는 말레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APEC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또 7월10일에는 북한의 김정일이 선군정치란 깃발을 내걸고 국방위원장에 취임했고 10월에는 일본이 자국 대중문화의 전면개방을 발표하는 등 큰 변화의 기록을 들 수 있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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