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29 09:06

기고/ 국수국조(國輸國造)와 상생(相生)

변호사가 된 마도로스의 세상이야기(12)
성우린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수출입 화물은 중국 선박으로 수송하고, 이 선박은 중국 조선소에서 건조한다.”

필자는 지난주 대통령 소속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舊 노사정위)에서 업종별위원회로 출범 예정인 ‘해운산업위원회(가칭)’의 전문가로 초청되어, 다양한 해운산업의 전문가들과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필자는 우연히 위 간담회에서 해양수산부가 2018년 4월에 발표한 ‘해운산업 재건 5개년 계획’의 전문을 읽게 되었다. 그 중 필자의 눈에 띄는 것은 해운, 조선 산업의 상생(相生)을 위한 ‘전략화물 적취율 제고’ 부분이었다. 필자는 이 부분을 읽어보면서 중국의 ‘국수국조(國輸國造)’ 정책을 떠올렸다.

‘수출입 화물은 중국 선박으로 수송하고, 이 선박은 중국 조선소에서 건조한다’라는 중국 정부의 자국 해운, 조선 산업의 육성책이 ‘국수국조’ 정책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오랜 기간 자유 시장경제 체제 아래에서 경제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국가들에서, 경제주체들에게 법적으로 강제를 하면 과연 상생에 도움이 될 것인지 또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정책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국수국조 정책이 중국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영국의 리처드 3세가 1381년 제정한 항해법의 골자가 바로 국적선박 우선 정책이었다. 영국의 보유선단이 워낙 미미해 사문화했던 이 법은 독재로 공화정을 운영한 올리버 크롬웰이 1651년 선포한 항해 조례로 다시 태어나, 1849년 폐지되기 전까지 영국 해운업이 세계의 패권을 차지하는 밑바탕으로 작용했다.

현재까지도 배타적인 항해법을 고수하는 유일한 국가는 예상외로 ‘미국’이다. 1920년 제정된 존스법은 ‘연안무역과 미국적 선주의 선박은 미국에서 건조되어야 하며 선원 비율도 미국인 중심이어야 한다’라고 규정한다.

폐쇄성으로 해운업이 몰락해도 미국은 이 법을 고집한다. 우리 측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존스법 폐지를 주장하며 쌀시장 개방을 유보한 적도 있었지만 여전히 미국의 존스법은 견고하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중국의 국수국조 정책과 유사한 기조의 정책을 펼친 바가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국적선사인 한진해운이 파산한 이후 국내 해운업의 부진으로 해운, 조선 산업의 상생을 모토로 해양진흥공사를 출범하는 등 해운업의 재건에 힘을 모으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시점에서 중국의 국수국조 정책과 유사한 법령의 제정 또는 개정이 상생의 밑바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우선, 화물적취율(국내 화주가 국내 선사에 화물을 맡기는 비율) 문제는 시장경제 논리에 근거하여 선사와 화주 간에 성사되어야 할 문제이어서, 현실적으로 중국처럼 자국의 화주와 선사에게 적취율 상승을 강제시키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법령의 제정 또는 개정을 통해, 선주와 화주 양 당사자에게 구미가 당길만한 ‘유인책’을 제시하는 것은 넓은 의미의 국수국조 정책이 될 수 있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등 법령을 개정하여, 선사를 이용하는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종합심사 낙찰제를 도입하는 것은 이러한 유인책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가격만을 고려하여 낙찰자를 선정하는 최저가 낙찰제가 아닌, 용역 수행능력, 재무건전성 등을 함께 고려하여 낙찰자를 선정하는 종합심사 낙찰제 방식으로, 경쟁력 있는 국적 선사의 운송 기회를 합법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선·화주·조선사가 공동으로 선박투자에 참여하여 선박 신조에 따른 수익을 공유·연계하는 ‘상생펀드 설립’을 위한 법령을 새로이 제정하는 방안도 있다. 그밖에도, 화주의 선사 또는 선박 지분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화주가 투자한 선박펀드 및 선사주식의 배당이익 세액 공제, 화주의 주식양도에 따른 시세차익 세제 감면 등을 제공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필요도 있다.

▲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성우린 변호사는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전 팬오션에서 상선의 항해사로 근무하며 벌크선 컨테이너선 유조선 등 다양한 선종에서 승선경험을 쌓았다. 하선한 이후 대한민국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로펌에서 다양한 해운·조선·물류기업의 송무와 법률자문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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