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18 17:13

‘공동배선제가 원인?’ 대산항·동해항 예선료 인상 논란

예선업계 담합해 예선료 폭등 vs 할인율 축소로 수익성 확보


예선료 인상을 놓고 선사와 예선업체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중소형 석유화학제품 운반선이 많이 드나드는 대산항에서 양측의 갈등이 첨예화되는 모습이다. 동해항에서도 예선업체들이 도선점 변경을 이유로 비용 산정의 기준이 되는 예선사용시간을 늘려 사용자 측의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선사들은 2018년 시행된 개정 선박의 입항 및 출항 등에 관한 법률(선박입출항법)에서 공동배선제를 제도적으로 허용한 뒤 예선업체들이 담합해 예선료를 급격히 인상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산항 예선료 할인 35%로 삭감

현재 예선료 문제로 가장 뜨거운 곳은 대산항이다. 대선항 예선사들은 지난해 3월 예선 운영 방식을 자유계약제에서 공동배선제로 전환하면서 예선료 할인률도 함께 삭감했다. 예선시장엔 중앙예선운영협의회에서 결정해 발표하는 요율표가 존재하지만 대산항에선 자유계약제 당시 이보다 대폭 할인된 요금을 선사들에게 부과해왔다.

선박 입출항 빈도가 높은 선사는 많은 할인 혜택을 본 반면 선박이 자주 기항하지 않는 선사는 상대적으로 높은 요금을 내야 했다. 하지만 예선사들은 지난해부터 할인율을 선사 구분하지 않고 35%로 통일하면서 사실상 운임 인상을 꾀했다. 

이 같은 예선업계 움직임에 대산항을 기항하는 유조선사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대산항은 여수 울산과 함께 국내 3대 액체화물항만으로 꼽힌다. 석유화학단지에 현대오일뱅크 한화토탈 롯데케미칼 LG화학 등이 입주해 있다. 그만큼 많은 유조선사들이 항만을 이용 중이다.

이들 선사는 예선업체의 할인율 폐지로 기업별로 최대 3배 이상 예선비용이 급등했다고 밝혔다. 선사 조사에 따르면 대산항 현대오일뱅크부두는 최고 2.3배, 씨텍과 한화토탈부두는 각각 3.2배씩 예선료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과거 할인율을 적게 적용받았던 선사들은 되레 적게는 24%에서 많게는 65%까지 인하되는 효과를 봤다. 

선주협회 산하 유조선사협의회는 지난 4일 대전에서 예선업협동조합 대산지부와 예선료 문제를 놓고 협상을 벌였지만 양측의 의견차만 확인해야 했다.

회의에서 예선업계는 “과도한 리베이트로 업계가 부실해지면서 안전사고가 발생하고 있다”며 “항만 기간산업인 예선을 보호하려고 특단의 대책으로 공동배선제를 도입했고 중앙예선운영협의회에서 정한 예선요율표를 기준으로 단일 할인율을 적용하게 됐다”고 요금 인상 배경을 설명했다. 요율 인상에 대한 지원금으로 10억원을 내놓겠다는 조건도 내걸었다. 

유조선사협의회는 “지방대리점에 지급하던 리베이트는 대부분 없어졌다”고 예선업계의 주장을 반박했다. 리베이트가 사라졌기 때문에 요율이 20~30%가량 인상된 거나 마찬가지라는 의견이다.

중앙예선운영협의회에서 결정한 예선요율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체 매출액에서 봤을 때 예선료 비중이 미미한 대형선사들이 참여해 요율을 정해왔기 때문에 중소선사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중앙예선운영협의회는 선박입출항법에 따라 사용자 측인 선사 대표자 2명, 화주 대표자 1명과 예선 대표자 3명, 해운항만전문가 2명, 도선사 1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된다. 유조선사협의회는 46곳의 회원사 대다수가 중소선사로, 대산항에서 예선료가 운임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에 이른다.

아울러 한진해운 사태처럼 해운업계는 불황으로 대형업체들이 도산할 만큼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반면 예선업계는 지금까지 폐업한 업체가 한 곳도 없을 만큼 우수한 수익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요금이 싸 예선업계가 부실해졌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선사측은 2018년 요금에서 10% 인상하는 것까지는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예선업계가 요율 인상의 대가로 제시한 10억원도 보이콧했다. 

동해항 예선사용시간 확대…요율 인상 효과

동해항에서도 예선료 인상을 둘러싼 잡음이 포착된다. 현지 예선업체들은 이달부터 동해항 3단계 부두공사로 도선사가 모선을 타는 장소인 도선점이 5해리에서 8해리로 멀어지자 요금 산정의 근거가 되는 예선사용시간을 1시간에서 1시간30분으로 변경했다.

통상적으로 예선은 도선사가 선장 대신 배를 운항하는 구간에 함께 투입돼 선박의 안전한 입출항을 돕는다. 도선 거리가 길어진 만큼 예선 사용도 함께 늘어나야 한다는 게 동해항 예선업체들의 생각이다. 동해항은 지난해부터 공동배선을 도입했으며 세경해운 해양환경공단 강동해운 세 곳이 돌아가면서 예선을 넣고 있다. 

하지만 해운사들은 절차를 어기고 예선사들이 사용시간을 일방적으로 늘렸다고 반발하는 상황이다. 예선사용시간을 변경하려면 지방예선운영협의회에서 결정한 뒤 중앙예선운영협의회의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함에도 이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선사 관계자는 “예선업체들이 임의로 예선사용시간을 50% 늘리면서 코로나사태로 어려운 상황에서 연간 예선비용이 10억원에서 15억원으로 늘어나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결국 선사권익단체인 선주협회와 해운조합이 이 문제를 해양수산부에 진정하자 예선업체들은 예선료 할인을 명목으로 인상안을 철회한 상태다. 

최근의 예선료 인상 논란은 공동배선제 도입과 무관치 않다. 대산항과 동해항 모두 공동배선제가 도입된 뒤 예선업체가 담합해서 예선료 인상을 도모하고 있다고 선사들은 본다. 동해항도 공동배선제 전환 이후 10%의 할인율을 없앤 데다 이번에 예선사용시간까지 확대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유조선사협의회는 공동배선제가 도입된 뒤 예선업계가 담합해 자유경쟁을 침해하고 있다며 이 제도를 폐지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유조선사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SJ탱커 박성진 대표는 “선박입출항법을 개정해 정계지에 여유가 있을 때만 예선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을 개선하고 중앙예선운영협의회에 직접적으로 이해관계가 있는 선사를 참여시켜 공정한 예선요율 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예선업계 관계자는 “공동배선제가 도입됐다고 해서 예선업체들이 횡포를 부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할인율을 35%로 줄였다고 선사들이 내는 요금이 2~3배 올랐다면 지금까지 선사들이 예선업체들을 상대로 갑질을 해온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산항이나 울산항 등은 요율표 그대로 예선료를 받고 있다”며 “선박이 많이 줄면서 예선업계의 수입도 많이 줄었기 때문에 대산항에서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할인율 축소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선사와 예선업계의 입장차가 평행선을 달리는 상황이어서 양측이 협상을 통해 갈등을 봉합하고 해법을 마련할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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