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28 09:13

기고/ 항해과실과 상사과실

변호사가 된 마도로스의 세상이야기(39)
법무법인 대륙아주 성우린 변호사(해양수산부·해양경찰청 고문변호사)


해상운송인이 화물을 운송하는 과정 중 운송물에 관한 손해가 발생하는 일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그 때 해상운송인의 과실로 운송물에 손해가 발생한 사실이 인정되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해상운송인은 운송계약 등에 따라 손해를 입은 자에게 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그런데 현재 대부분의 국제해상운송에 적용되고 있는 국제협약인 헤이그규칙 및 헤이그비스비규칙에서는 해상운송인의 과실을 ‘항해과실’과 ‘상사과실’로 구분하고, 상사과실에 의해 발생된 운송물 손해에 대하여는 해상운송인이 책임을 지지만, 항해과실에 의해 발생된 운송물 손해에 대하여는 해상운송인이 면책되고 있다.

우리나라 상법 제795조제1항에서도 “운송인은 자기 또는 선원이나 그 밖의 선박사용인이 운송물의 수령·선적·적부(積付)·운송·보관·양륙과 인도에 관하여 주의를 해태하지 아니하였음을 증명하지 아니하면 운송물의 멸실·훼손 또는 연착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라고 하여 해상운송인이 책임을 지는 상사과실을 규정하고, 동조 제2항에서 “운송인은 선장·해원·도선사, 그 밖의 선박사용인의 항해 또는 선박의 관리에 관한 행위 또는 화재로 인하여 생긴 운송물에 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면한다. 다만, 운송인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화재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하여 해상운송인이 면책되는 항해과실을 규정하고 있다.  

운송인 자신이 고용한 선장 등의 과실에 의하여 운송물에 손해가 발생한 항해과실의 경우, 운송인의 손해배상책임을 면책하는 것은 통상의 법리로는 고려할 수 없는 매우 독특한 것이라 하겠다. 이는 19세기 후반부터 영국에 널리 행하여진 면책약관을 강행적으로 금지하기 위한 타협책으로 법정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그 이론적 근거로는 선박의 조종 등은 고도의 기술성을 가지고 있어서 운송인이 이에 개입하기 어려운 점, 선박사용인의 경미한 과실이 막대한 손해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 선장 기타 선원에 대하여 엄중한 행정적 감독이 행하여지므로 운송인에게 항해과실에 대한 면책을 인정하여도 부주의한 사고를 부추길 염려가 없는 점 등을 들고 있다.

이처럼 현재 해상운송에서 운송물손해가 발생하였을 때 운송인이 행한 운송의 과실이 면책사유와 귀책사유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엄연하고, 가장 큰 문제점은 항해과실 중 선박관리상의 과실과 상사과실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선박관리상의 과실은 선박의 안전한 항해를 위해 행하여지는 조치를 말하는데, 이는 실제 손해 발생의 원인을 판정함에 있어서 과실로 나타난 운송인의 행위 중 구체적으로 어떠한 조치가 운송물(화물)의 관리를 위한 행위인지 아니면 이와 구분되는 선박의 관리를 위한 행위인지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립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외국의 판례나 학설은 대체로 당해 행위의 목적과 성질을 기준으로 하여 행위의 주된 목적이나 성질이 선박의 이익을 위한 것이면 선박관리상의 과실에 해당하고, 운송물의 이익을 위한 것이면 상사과실에 해당한다고 보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나아가 해상운송인의 항해과실 면책이 인정되는 것은 해상운송인이 선박의 감항성에 대한 상당한 주의를 다하였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일례로 해도나 항해등을 사용하지 않았거나 잘못 사용하였기 때문에 선박이 좌초되었다면 이는 해상운송인의 면책이 가능한 항해과실에 해당하나, 하자 있는 해도나 기타 항해 도구를 사용하다가 선박이 좌초된 경우 해상운송인이 발항 당시부터 그 선박의 감항성에 대한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어 해상운송인이 면책될 수 없다. 

따라서 해운회사 등 해상운송인과 운송물의 소유자인 화주의 클레임 담당자는 해상운송 중 운송물에 관한 손해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손해가 발생한 주된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손해가 발생한 주된 원인의 기초사실에 따라, 해상운송인은 면책이 될 수 있는 항해과실을 주장할 수 있고, 반대로 화주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상사과실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해상운송인의 감항능력주의의무 위반에 따라서도 해상운송인의 면책 여부가 결정되는 만큼, 해상운송인 및 화주의 클레임 담당자는 해당 선박의 발항 당시 감항성에 대하여도 충분히 조사하고, 이에 대한 증거들을 미리 확보해 놓는 것이 향후 발생하는 분쟁에서 대응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 성우린 변호사는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전 팬오션에서 상선 항해사로 근무하며 벌크선 컨테이너선 유조선 등 다양한 선종에서 승선 경험을 쌓았다. 배에서 내린 뒤 대한민국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로펌에서 다양한 해운·조선·물류기업의 송무와 법률자문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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