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30 09:30

판례/ 외국선원은 누가 처벌하는가?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해양수산부 고문변호사)
<10.16자에 이어>
 
③ 국제적인 선박충돌에 관한 형사재판관할권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인 M 사건은 피해자의 국적국인 터키가 가해선박의 승무원들을 살인죄로 기소한 것에 대한 분쟁인바, 이와 같이 선박충돌로 인한 형사책임에 대한 형사재판관할권의 문제에서 고의범을 전면적으로 배제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④ 기존에도 선원법 등 이미 구호의무 위반에 대한 처벌규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우리나라에서 공해상의 선박충돌 후 구호의무 위반으로 인해 해양법협약 제97조 제1항의 적용을 배제하고 재판권을 행사한 사례는 보이지 않는다.
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12는 그 규정의 구조나 입법취지상 도로상의 교통사고에 관한 동법 제5조의3과 상당부분 유사한데, 위 죄는 일반적으로 도로교통에 관한 죄로 분류되고 있어, 선박충돌 후 구호의무위반에 관한 동법상의 처벌도 해상교통에 관한 형사책임으로 보는 것이 상당하다.
 
다. 당심의 판단
아래와 같은 이유로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고, 거기에 검사가 주장하는 바와 같은 사실오인 또는 법리오해의 위법이 없으므로, 검사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1) 해양법협약 제97조 제1항의 적용 여부
원심 및 당심이 적법하게 채택해 조사한 증거에 의해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에 의하면, 피고인들에 대한 각 업무상과실치사 후 도주의 점 및 각 업무상과실선박매몰의 점에 관한 공소사실은 해양법협약 제97조 제1항에서 규정한 “선박의 충돌 또는 선박에 관련된 그 밖의 항행사고”에 해당해 해양법협약 제97조 제1항이 적용되므로 우리나라의 재판권이 배제된다.
 
① 해양법협약 제97조 제1항은 “선박의 충돌 또는 선박에 관련된 그 밖의 항행사고”라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이어서 문리적으로 해석할 때 고의범을 제외한 과실범만 위 규정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1) 오히려, 국제적으로 공해 상에서 ‘해양의 자유’원칙이 확립된 이래로 공해상 선박에 관해는 기국주의가 적용되고 예외적으로 해적, 노예수송, 해상테러, 대량적인 해양오염의 우려가 있는 경우 등에 한해 연안국의 추적권이 제한적으로 인정되고 있는데, 도주선박죄가 이와 같은 기국주의를 변형할 만큼 반인륜적인 범죄라고 보기 어렵다. 나아가 도주선박죄를 위 협약 규정에서 제외할 경우, 도주선박죄에 관해 국제적으로 공통된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 피해자들의 국적에 따라 도주선박죄의 성립 여부, 처벌 정도 등이 달라지는 결과가 발생하는데, 이는 피해국의 보복성 재판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고 항해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해양법협약의 입법 취지를 몰각시킬 우려가 크다.
②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12에서 규정한 도주선박죄는 그 규정의 구조나 입법 취지상 도로상의 교통사고에 관한 동법 제5조의3에서 규정한 도주차량죄와 유사한데, 도주차량죄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을 기본규정으로 해 도주의 점을 가중처벌하는 규정으로서 기본적으로 육상교통의 형사책임이며, 비교법적으로도 미국2)과 일본3) 역시 도주차량죄를 교통법규에서 규율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도주선박죄는 해상교통의 하위범죄로서 해양법협약의 “선박의 충돌 또는 선박에 관련된 그 밖의 항행사고”에 포함된다고 봄이 상당하다.
③ M 사건 이래로 공해상 선박충돌 사고의 경우 해양법협약에 따라 기국 또는 가해국이 재판권을 행사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추세이며, 이와 상반되는 선례를 찾기 어렵다.4) 특히, Y 사건은 2001년 공해상에서 발생한 선박충돌 후 도주 사건으로,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즉 가해자인 Y에 승선했던 러시아 선원들이 도주하던 중 캐나다 인근 해상에서 캐나다 정부에 의해 체포되자, 당시 미국 연방수사국은 캐나다에 미국과 캐나다 간의 사법공조 조약(MLTA)에 따라 직접 수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고, 러시아는 해양법협약에 따라 러시아에 재판관할권이 있다면서 러시아 선원들의 신병인도를 요구했는데, 캐나다는 러시아와 범죄인인도 조약, 사법공조 조약 등을 체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선원들의 신병을 미국이 아닌 러시아에 인계했다.5) 이는 비록 선박충돌 후 선원들이 도주했다고 하더라도 공해상 선박충돌의 관할은 원칙적으로 기국 또는 가해자 국적국에 있다는 해양법협약을 고려한 결과로 보인다.
④ 세계적으로 편의치적선의 무분별한 운항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기는 하나, 이는 편의치적국과의 양자협정을 통해 형사재판관할권을 이양받는 조항을 신설하거나, 사법공조 조약 또는 범죄인인도 조약을 체결하는 등 외교적 수단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므로, 편의치적선으로 인해 재판의 공백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만으로 곧바로 해양법협약을 무리하게 축소 해석해 우리나라의 재판관할권을 인정하는 것은 세계적인 흐름에 반할 뿐만 아니라 외교분쟁을 야기할 소지가 있으며, 특히 아래에서 보는 것처럼 가해자 국적국이 재판관할권을 행사할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2) 기국 및 가해국의 재판권 포기 여부
기록에 의하면, 필리핀 해양산업청 및 주한 필리핀 대사관은 2015. 11.경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법무부에 서면을 통해, 해양법협약에 근거해 피고인들에 대한 재판관할권이 필리핀에 있으며 그 관할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가해자 국적국인 필리핀이 재판관할권을 포기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나아가 대한민국이 해양법협약 제97조 제1항에 의해 재판관할권이 있는 라이베리아 또는 필리핀으로부터 재판관할권을 이양받았다고 볼 자료도 없다.
 
3. 양형부당 주장에 관한 판단
피고인들이 컨테이너선인 F 선박의 승무원으로서 업무상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한 과실로 G에 적재돼 있던 연료유(경유) 약 600리터를 유출시킴으로써 인근 해상을 오염시킨 점, 피고인들이 충돌로 인한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현장에서 이탈한 점 등은 피고인들에게 불리한 정상이나, 한편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해 유출된 연료유의 양이 비교적 많지 않고, 이에 대한 방제작업이 이미 완료된 점, F의 보험회사가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한 피해를 변상할 것으로 보이는 점 등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정상과 그 밖에 형법 제51조가 정한 제반 양형 조건을 종합해 고려하면, 피고인들에 대한 원심의 선고 형량이 너무 가벼워서 양형 재량권을 벗어났다고 보이지 아니한다.
 
4. 결론
그렇다면 검사의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4항에 의해 이를 기각하기로 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재판장 판사 박영재   판사 주은영   판사 박재억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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