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가 국내 대표 해운 기업인 HMM 인수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해운업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포스코는 물류비를 절감하고 그룹 시너지를 끌어올리려고 HMM 인수를 통한 해운업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국내 대표 해운기업 인수를 준비하려고 삼일PwC 보스턴컨설팅 등으로 구성된 대규모 자문단을 꾸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움직임에 외항해운사 단체인 한국해운협회는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이 단체는 성명에서 포스코그룹의 HMM 인수는 해운 생태계를 파괴하고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기반으로 정부와 업계가 어렵게 회생시킨 기업을 희생하는 처사라고 규정하면서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포스코가 HMM을 인수해 철광석과 철강제품 수송에 나설 경우 포스코와 거래하던 기존 국내 선사들이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등 해운산업의 근간이 와해되고 수출입업계도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철강산업을 주력으로 하는 포스코에 HMM이 편입되면 세계 컨테이너선 시장이 소수의 초대형 선사가 지배하는 독과점 체제로 변화하는 상황에서 해운 분야 투자보다 주력 산업의 보조 기업으로 전락해 경쟁에서 뒤처질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HMM의 사업 원천인 선박량은 상위권 선사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해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면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프랑스 해운조사기관인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현재 HMM의 수송능력은 96만TEU로, 680만TEU에 달하는 스위스 MSC나 400만TEU를 웃도는 덴마크 머스크, 프랑스 CMA CGM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협회는 포스코가 물류비 절감을 목적으로 HMM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를 두고 컨테이너선 운영은 철강 물류비와는 관계없는 생소한 분야라고 지적했다.
1980년대 이후 거양해운(제철원료), 호유해운·성운물산(원유), 동양상선(시멘트) 등 10여 곳 이상의 대기업이 해운 자회사를 만들었다가 실패한 사례를 들며 대량화주가 해운업에 진출하더라도 운송 비용을 절감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포스코도 철광석과 철강제품을 직접 수송하려고 거양해운을 설립했지만 이 선사는 자가화물 운송업체(Industrial Carrier)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경쟁력을 상실해 한진해운에 매각됐다.
거양해운 설립으로 포스코와 거래하던 벌크선사가 퇴출됐을 뿐 아니라 정작 포스코도 큰 손해를 입었다고 협회는 설명했다. 해운 자회사의 수익성을 보장하는 수준으로 운임을 결정하는 구조다 보니 수송 단가 상승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세계 3대 광산 기업인 브라질 발레도 철광석 수출 호조에 힘입어 30여 척에 달하는 초대형 벌크선을 발주해 해운업에 진출했다가 최근 이들 선박을 매각하고 사실상 해운업에서 철수했다.
협회는 포스코의 해운업 진출은 대량 화주의 해운업 진출을 제한하고 3자 물류를 육성하는 정부 정책과도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현재 해운법은 제24조에서 원유 제철원, 액화가스 등의 대량 화물 화주가 자신의 화물을 수송하려고 해운업 등록을 신청할 경우 업계 학계 해운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정책자문위원회를 열어 의견을 듣도록 하고 있다. 또 물류정책기본법은 정부가 화주기업과 물류기업의 제3자 물류를 촉진하는 시책을 수립, 시행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해운업계는 정치권에도 도움을 요청했다. 협회 회장단은 10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국회 농림축산해양수산위원회 어기구 위원장(충남 당진)과 만나 포스코의 HMM 인수 계획이 철회돼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협회는 이날 ▲해수부와 공정위 간 업무 협력 ▲해운산업의 북극항로 개척 지원 ▲톤세제 영구화 ▲해운전문인력 육성 지원 ▲국적선 적취율 증대로 물류안보 실현, 물류대란 방지 ▲전략상선대 도입과 건조 등의 해운 분야 정책 과제도 함께 건의했다.
어기구 위원장은 “제기된 해운 분야 정책 과제를 정부와 국회 차원에서 함께 논의하겠다”며 “해운산업이 국가 물류안보와 직결되는 만큼 해운업계 현안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간담회엔 박정석 해운협회 회장과 정태순 장금상선 회장, 안중호 팬오션 사장, 이동수 대한해운 대표, 이승우 KSS해운 회장, 이환구 흥아해운 사장, 조병호 화이브오션 대표, 홍창효 SK해운 전무, 양창호 해운협회 상근부회장 들이 참석했다.
양창호 부회장은 “’지난 22년 4월 우리 협회와 포스코플로우는 국적선 수송 확대 노력, 해운법과 공정거래법 준수, 합리적인 입찰 계약 등을 포함한 사실상의 해운업 진출을 하지 않겠다는 상생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며 “불과 3년 만에 HMM을 통해 해운업 진출을 모색하는 건 해운업계와 맺은 약속을 이행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만일 포스코가 HMM을 인수하고, 제철원료 제품까지 자가 화물 운송을 한다면 물류비 증가와 컨테이너선 분야 전문성과 효율 저하로 포스코 수익에 큰 손해를 가져오고 기존 선사들은 시장에서 퇴출되는 등 국내 해운산업의 근간이 와해될 것” 이라며 국민경제에 큰 피해를 줄 이번 결정을 전면 철회해 줄 것을 촉구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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