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3 16:03

더 세월(46)

저자 성용경 / 그림 하현
42. 봉사의 원칙
 

 


가슴을 아프게 하는 표현은 다양하다.
 
꺼내주지 못해서 미안해

너를 보내지 못해

감춰진 것이 드러나게 해줘

가만히 있어라

잊지 않을 거야

이렇게 보내서 억울하고 분하다

 
참사 6개월 만에 나온 단편영화 <잊지 않겠습니다>는 안전사회로 가기 위해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했다. 영화에서 학생들이 의자로 창문을 깨려고 애쓰는 장면이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때 누군가 바깥에서 유리를 깨줬더라면 그들은 살았을 것이다


2미터 이상 물에 잠긴 좌현 문을 통해 탈출해 나온 한승석 씨 이야기도 눈길을 끌었다. 그는 구명조끼를 안 입은 게 다행이라고 했다. 조끼의 부력이 헤엄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었다. 하늘로 향한 우현 쪽 문은 물에 잠기지 않았지만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구조대가 그쪽 문으로 밧줄만 던져줬어도 쉽게 나올 수 있었다. 훗날 인양된 세월호 선체에서 유해를 수습한 허다윤 양은 구조 헬기가 오자 뒤에 있던 친구한테 순서를 양보한 사실이 알려져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사건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해난사고 중 1970년 12월 326명이 사망한 남영호 사건 다음으로 큰 대형 참사다. “가만히 있으라”는 비상식적인 안내방송과 정부의 부실한 대처는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사고 후 첫 겨울을 앞두고 서정민과 이순정은 진도체육관을 찾았다. 진도체육관은 유가족과 봉사자, 방문객으로 어수선했다. 서정민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진도 거리의 은행나무가 가을을 마감하는 낙엽을 흩날려서가 아니라 체육관의 온갖 언어들이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미수습자 가족은 “선체 절단을 해서라도 먼저 아이들을 찾아 달라”고 울부짖었다. 반면 유가족협의회는 진상규명을 위해 선체 절단은 안 된다고 했다. 정부는 겨울 날씨와 제반 여건의 어려움을 들어 잠수 수색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미수습자 가족은 유가족협의회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다. 시민단체도 변호사도 유가족협의회도 자신들을 고립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그들을 더 좌절케 했다.


이순정이 자원봉사단 간사와 대화를 나눴다. 간사의 첫마디는 “전 아는 체하는 사람 싫어요”였다. ‘그럼 어떤 사람을 좋아해요’라고 묻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곧 말을 이어갔다.


“성경에도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했잖아요. 동참이 중요해요.”


 간사는 봉사활동에 필요한 몇 가지 ‘팁’을 전했다. 진도체육관에서 ‘삼선슬리퍼’를 신은 사람은 대부분 유가족이었다. 언제든 뛰쳐나갈 수 있도록 신고 벗기 편한 슬리퍼로만 생활했다.


자원봉사는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 일하다 다치거나 사고를 당할 수 있어 보험 가입이나 업무 분장 등을 절차를 거치도록 했다.


“봉사도 절차가 필요하군요.”


이순정이 간사의 설명에 수긍한 후 서정민을 돌아봤다. 그는 먼 곳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그의 시선을 좇아가자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걱정은 바람이 씻어가고


잡념은 구름이 걷어가고


외로움은 파도가 몰아가고

 
어수선함 속에서도 신선한 언어가 그의 시선을 끌었나 보다.


진도체육관의 시설은 좋지 않았다.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그 위에 요 깔고 이불 덮고 다들 그래요.”


간사는 설거지도 봉사활동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진도에는 기자 자원봉사자 방문객 지원팀 공무원까지 뒤섞여 모두 같이 밥을 먹으니까 완전 전쟁터예요.”


그녀는 계속 설명했다.


“봉사활동은 최대 3박4일로 제한합니다.”


봉사활동이 길어질 경우 유가족들과 동화할 염려가 있다는 정신과의사와 심리상담자의 조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원봉사자 중에 자살한 사람이 발생하면서 우려는 현실이 됐다.


7개월 동안 진도에 5만 명 이상의 자원봉사자가 다녀갔다. 이들은 식사나 빨래 설거지에서부터 희생자들의 서명을 돕고 피케팅 일인시위를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서정민과 이순정은 진도체육관을 나왔다. 이순정이 운전하는 차는 바닷바람이 싸하게 부는 팽목항에 도착했다. 팽목항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시장바닥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팽목 자원봉사자는 1박2일이 원칙이다. 진도체육관보다 짧다.


“정신적으로 엄청 힘들다는 뜻이지요.”


진도군 복지과 담당자가 말했다.


팽목항에서는 물 음료수 속옷 세면도구 위생품 같은 생필품을 나눠주면서 받는 사람이 가족인지 일반인인지 확인하지 않았다. 가족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봉사활동을 벌였다. 아이들 유체가 한동안 올라오지 않아서 다들 노심초사한 상태였다.


“체육관팀이 택배를 담당한다면 팽목항팀은 검안서 작성 보조업무를 하죠.”


수습된 유체가 팽목항으로 운구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원봉사자들이 맡은 역할도 갈렸다.


팽목항에서 30여 분 있는 동안 지켜본 봉사활동은 참으로 낯설었다.


“이젠 누구를 위해 밥을 해야하나?”


한 봉사자가 걱정하며 안타까워했다. 그녀는 한낮에 술만 마시는 유가족에게 계란프라이를 건넸더니 버럭 화를 냈다고 말했다. 유가족이 “누가 이런 걸 주라고 했냐?”며 막 짜증을 부리더라는 것이다. 봉사자는 놀라고 무안했다고 한다. 사고 현장에선 서로가 예민하고 날카로웠다.


“봉사하면서 보람을 느낀 순간이 있어요?”


이순정이 물었을 때 그녀는 태연하게 답했다.


“아직 없었어요.”


순간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그동안 변한 게 없으니까요.”


그랬구나. 정부는 하는 일이 없었다. 유체를 수습한 다음에는 아이를 데리고 가는지 관심도 없었다.



<이 작품은 세월호 사고의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한 창작물이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기업 지명 등은 실제와 관련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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