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24 09:30

판례/ “부서진 배도 약속한 항구까지 돌아가야 할까?”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해양수산부 고문변호사)
<8.10.자에 이어>

1. 시작하며 

이번 호에서 소개할 판례는 용선계약에 따라 사용되던 부선(艀船)이 좌초돼 경제적 수리불능 상태에 이르렀을 때, 그 잔존물을 용선계약상 반환예정지까지 예인하는 데에 드는 비용까지 용선자가 손해배상으로 부담해야 하는지에 관해 판단한 사례이다.

2. 사실관계의 요약 

가. 원고는 이 사건 부선의 소유자이고, 피고는 공사업 등을 영위하는 회사로서 이 사건 공사를 도급받아 그 공사에 사용하고자 원고로부터 이 사건 부선을 임차하는 내용의 용선계약(이하 ‘이 사건 용선계약’)을 체결했다. 이 사건 용선계약에는 부선의 반환 장소를 군산항으로 정하는 조항(이하 ‘이 사건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나. 피고는 이 사건 부선을 공사 현장까지 예인할 목적으로 A(원심 공동피고, 미 상고)로부터 이 사건 예인선을 용선했다. 피고의 현장소장 甲은 풍랑주의보가 발효됐음에도 불구하고 공사 현장 인근으로의 출항을 지시했고, 그에 따라 A는 이 사건 예인선단을 출항해 공사 현장 인근 해상에 도착해 대기했다.

다. 그러던 중 이 사건 부선이 강한 조류에 떠밀려 좌초되는 이 사건 사고가 발생했고, 원고는 이 사건 부선을 구조해 인천항까지 예인했다.

라. 이에 원고는 A를 상대로 불법행위를, 피고를 상대로 계약상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를 주장하면서, ① 이 사건 부선의 선체손해액 또는 수리비, ② 구조 및 예인비(㉠ 사고 현장에서 인천항까지의 예인비, ㉡ 인천항에서 이 사건 용선계약상 반환 장소인 군산항까지의 예인비), ③ 영업손실금 등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3. 주요쟁점 및 법원의 판단

가. 주요쟁점

1. 불법행위 또는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성립 시기의 판단 

2. 손해 발생 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의 소재

3. 이 사건 부선이 경제적 수리불능 상태에 이른 경우, 그 잔존물을 이 사건 용선계약상 반환예정지인 군산항까지 예인하는 데에 드는 비용이 용선자인 피고가 부담할 손해배상 범위에 포함되는지 여부

나. 법원의 판단

1) 손해배상청구권의 성립 시기와 증명책임

불법행위나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현실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때에 성립하는 것이고, 이때 현실적으로 손해가 발생했는지 여부는 사회통념에 비추어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대법원 1998년 4월24일 선고 97다28568 판결, 대법원 2020년 7월9일 선고 2017다56455 판결 등 참조). 그리고 불법행위나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에서 손해 발생 사실은 피해자나 채권자가 이를 증명해야 한다(대법원 2017년 6월19일 선고 2017다215070 판결 등 참조).

2) 원심의 판단

원심은 원고와 피고가 이 사건 용선계약에 부선의 반환 장소를 군산항으로 정하는 조항을 두었다는 점에 주목해, 이 사건 부선이 경제적 수리불능 상태가 됐다 하더라도 이 사건 조항의 효력이 소멸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인천항에서 군산항까지의 예인비 또한 피고가 원고에게 지급해야 할 손해배상 범위에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3)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이 손해배상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보아 다음과 같이 파기환송했다. 

첫째, 이 사건 부선이 원심의 판단과 같이 경제적 수리불능으로 평가된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잔존물은 처분대금을 얻기 위한 효용만을 가진다. 따라서 잔존물 처분이 반드시 이 사건 조항에 따른 반환예정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거나, 잔존물을 군산항까지 예인하고자 하는 원고의 의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사회통념상 용인된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부선이 경제적 수리불능에 이른 경우에도 이 사건 조항이 그대로 적용된다고 보기 어렵고, 이 사건에서 그러한 특별한 사정에 관한 주장·증명은 찾아볼 수 없다. 

둘째, 이 사건 조항에서 반환예정지를 군산항으로 정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원고에게 군산항으로의 예인비 지출이라는 손해의 결과가 현실적으로 발생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원심 변론종결 무렵까지 이 사건 부선이 실제로 군산항으로 예인됐다거나 원고가 예인 계획을 구체적으로 수립했다고 볼 만한 자료도 없다. 

셋째, 그렇다면 원심으로서는 이 사건 부선이 경제적 수리불능에 이른 경우에도 그 잔존물이 군산항까지 예인돼야 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 여부 및 나아가 원고에게 그 손해가 현실적·확정적으로 발생했는지 여부를 심리했어야 한다.

4. 검토 및 시사점

대법원은 이 사건 부선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원심과 달리 설정했다.

원심이 이 사건 부선을 여전히 ‘반환의 대상이 되는 선박’으로 파악하고 그 반환에 필요한 예인비를 손해배상 범위에 포함시킨 반면, 대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경제적 수리불능 상태에 이른 선박을 반환 대상 선박이 아니라 처분대금을 얻기 위한 잔존물로 파악했다. 잔존물은 그 처분가치의 실현이라는 효용만을 가지므로, 굳이 원거리의 반환예정지까지 이동시켜야 할 이유가 원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대법원도 예외의 여지를 열어두었다.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반환장소 조항이 여전히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취지이다. 판례가 그 구체적 예시를 들지는 않았으나, 예컨대 계약에서 전손 상황에까지 반환지를 명시적으로 특정한 경우, 잔존물의 해체·처분 시설이 반환예정지에만 있는 경우, 또는 반환예정지로 옮겨야 잔존물의 매각가치가 실질적으로 높아지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단순히 계약서에 반환지가 기재돼 있다는 사정만으로는 이러한 특별한 사정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또 대법원은 계약상 의무의 존재와, 손해의 현실적 발생을 명확히 구분했다. 즉, 대법원은 반환장소에 대한 조항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예인비 상당의 손해가 현실적으로 발생했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고 본 것이다. 이 사건에서 원고는 변론종결시까지 이 사건 부선을 실제로 군산항으로 예인하지 않았고, 예인 계획을 구체적으로 수립한 자료조차 제출하지 못했다. 손해배상청구권은 손해가 현실적으로 발생한 때에 성립하는 것이므로, 발생 여부가 불확실한 장래의 비용을 계약 조항의 문언만을 근거로 손해로 인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판결은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준다.

선박소유자의 입장에서는, 사고로 자신의 선박이 전손 또는 이에 준하는 상태에 이른 경우 용선계약상 반환장소 조항을 근거로 원거리 예인비까지 청구하려면 최소한 그 예인의 필요성과 실행 계획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미리 갖추어 두어야 한다.  잔존물을 실제로 반환예정지까지 예인했거나, 예인 견적·일정 등 구체적 계획을 수립한 자료를 확보해 둘 필요가 있다. 

반대로 용선자의 입장에서는 반환장소 조항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예인비 부담을 당연시할 것이 아니라, 사고 발생 시 잔존물의 처분방식과 장소에 관해 선박소유자와 협의하는 절차를 거침으로써 불필요한 예인비 부담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이 판결은 용선계약상의 반환약정이 존재하더라도 경제적 수리불능 상태에 이른 선박의 잔존물에 관한 비용은 일반적인 손해배상 법리에 따라 실제 발생한 손해인지 여부를 별도로 심사해야 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계약상 의무와 손해배상 범위를 동일시하지 않고 손해의 현실성을 독자적인 판단 기준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향후 해상공사와 용선계약을 둘러싼 손해배상 분쟁에서 중요한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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