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의 국가전략화>
DJ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이르면서 우리나라는 동북아의 물류중심국가라는 전략이슈를 국가발전의 중요한 어젠다로 인식하고 추구해 왔다. 국가의 기간 SOC를 구축하고 대통령 직속으로 관련 기구를 두는 등 적극적인 물류정책을 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덕택의 효과인지 모르나 인천국제공항은 연 3년제 세계최고의 공항으로 평가되었고, 부산, 인천, 광양 등의 컨테이너 물량도 지속적으로 증가세를 유지하여 중국 항만의 등장으로 우리 항만이 몰락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다소나마 안심하게 하였다. 평택항과 군산항의 성장을 향한 노력과 일정한 성과 등은 한반도의 물류의 중요성과 가능성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대선을 전후하여 우리에게 물류관련 굵직한 정책들이 제시되었다. 한반도 대운하, 한중열차훼리는 뜨거운 대선의 핵심토론주제였다. 여기에다 한일 해저터널, 한중해저터널 더 나아가 아시아/아메리카 해저터널이 제시되기도 하였다. 한 나라에서 도로, 항만, 공항, 교량 등의 물류, 교통시설과 창고 등 보관시설은 국가경영에 중요한 수단임에 분명하다. 우리의 지난 역사에도 국가가 물류, 유통시설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주장과 정책이 논의되고, 펼쳐왔음을 알 수 있다.
< 고대국가의 물류 >
고조선 때의 神市는 최고 신성처로서 정무기능과 제의기능을 함께 가진 정교의 중심 구역이었다. 이와 함께 재판, 처형 등의 행정기능과 창고와 재분배기능 등 물류의 원초적 기능을 담당하였다.
이 때는 祭儀 장소로서 출발한 신성 공간에서 상업 같은 세속적인 활동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이후 세속왕권과 관계조직이 성장하고 정비되어 가면서 전통적인 신성처에서 분리된 조정이 성립한다. 제수용품이나 위신재의 조달과 재분배 과정에서 교환 행위가 발생하고, 신성처 외곽에서도 상품 생산, 물자 유통이 진전되면서 각지에서 상거래가 성장하게 되었다.
고대왕권은 官商-官市체제를 통해 국내 상업 부문까지 관장함으로써 교역의 양대 부문을 장악하게 된다. 고대의 官市는 국가가 주도하여 왕경과 주요 지방 도시에 설립한 시장으로서 국가 통제하에 운영되었다. 여기에 소속되어 상업에 종사하던 官商은, 신성처에서 활동하던 샤먼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샤먼 가운데서 종래 제물 조달을 위해 특수 물품의 구입까지 감행했던 이들이 상업에 종사하게 되고, 이후 관시 같은 상업시설이 설치되면서 이에 흡수되어 관상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삼국이 이렇게 관설 시장을 설치하고 전담 부서까지 두어 관리한 것은, 무엇보다도 세속왕권이 성립하면서 신성처와 샤먼층을 왕권 중심의 국가질서로 재편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작용한 결과다.
고대 유통 체계에서 관시체제와 함께 또 다른 축을 이루는 것이 조세의 수취와 지출이다. 이는 창고제의 성립과 운영을 통해 알 수 있다. 청동기와 초기 철기문화를 기반으로 한 지역집단들은 중심 구역에 공용 창고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세속왕권이 출현하고 제수용품을 조달하던 공납제도가 조세 수취로 변질되면서 창고도 그 성격이 변하게 되었다.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공용 창고에서, 수취물 보관을 위한 시설, 즉 왕권 신장을 위한 물적 기반으로 변질되었다.
신라의 경우 6세기 이래로 곡물과 직물은 현물화폐로서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었으며, 국가도 이를 주요한 조세 품목으로 수취했다. 8세기 중엽 무렵부터 민간 상업이 발달하고 민간 부문이 대외교역에 진출하는 등 신라 사회의 변화하였으며, 국가가 주도하는 유통체계의 한 축인 조세 수취체계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와 더불어 왕실, 귀족, 사원의 전장에서 생산하는 물품이 소유주의 소비에 이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각지에 흩어져 있는 전장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유통조직이 운영되기도 했다.
당시 관상-관시체제는 위축되고 대신 민간 상업 부문이 확대되고 민간 상인의 활동도 활발해졌다. 이는 전반적인 국가의 통치체제가 느슨해진 것이 그 근본 배경으로 작용하였지만, 관시 중심의 국가 주도 유통체계가 붕괴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민간 상업은 국내 상업에서 영역을 확대해 나갔을 뿐 아니라 중대 말 이후로는 대외교역에도 진출한다. 신라 말에는 장보고의 예에서 보이듯이 지방출신의 일반 민이 대외교역을 주도하기도 했다. 장보고는 대외교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군사력을 기반으로 반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한 다음, 신무왕을 옹립함으로써 중앙의 정치권력에까지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신라 국가가 국내 상업은 물론 대외교역에서도 민간 상업세력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고, 신라 상업세력의 구성과 활동 양상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교통, 운송수단은 물론 필요 물자를 서로 교환하는 유통조직도 불비한 여건에서 국가가 주도하는 관상-관시체제는, 지배기구 운영을 위한 물품 조달과 지배층에 대한 소비품 공급을 통해 국왕 중심의 집권력을 강화해나갈 수 있는 유력한 도구였다.
관상을 중심으로 전개된 국내 상업은 상품의 가치를 실현하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매개자 역할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가 주도하는 유통체계의 일각을 담당하면서 재정 운영에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지배체제를 유지, 재생산하는 데 기여한 것이다. 한편 관상-관시체제의 외곽에서는 민간 상업이 성장하고 있었으며, 국가 주도의 유통체계가 미치지 못하는 영역에서 물자 유통에 기여하고 있었다. 민간상업은 점차 영역을 확대하여 별도의 독자적인 유통체계를 조직했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고려시대의 물류 개요>
고려시대의 가장 중요한 물류 활동은 국가의 세금을 받고 운반하는 일이였다. 즉 각 지방에서 들여오는 세곡(稅穀)을 개경까지 운반하는 일이였으며, 이는 주로 조운(漕運)과 조창(漕倉)이 그 핵심이었다.
당시의 세곡은 연해안 또는 수로·연변의 적당한 장소에 보관되었다가 선박 편으로 개경까지 운송되었는데, 이를 조운이라 하며, 이 일을 담당하는 기관이 조창이다. 원래 조창은 세곡의 수송을 위해 해로와 수로 연변에 설치된 창고이지만, 세곡의 보관뿐만 아니라 부근의 세곡을 모아 경창으로 수송하는 일을 맡은 기관이기도 했다.
수납한 세곡은 조운 때까지 일정기간 조창에 보관되었다가 해안이나 강변에 있는 포(浦)로 운반되었다. 세곡의 운성을 위해 각 조창에는 조선이라고 하는 조세 운반선이 비치되어 있었으며, 선박으로 1년에 4번 정도를 운반해야 국가 재정이 유지될 수 있었다.
각 조창에서 출발한 선박은 정해진 항로로 운행했을 것이며, 주로 육지와 가까운 연안을 이용했겠지만, 고려 때의 해안 항로는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지 않다. 또한 당시로써는 운반을 위해 농번기를 피해야 했고, 기후의 변화도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조운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안전한 뱃길을 개척하는 것은 조운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과제였는데, 그 대책의 하나가 바로 운하굴착이었다. 지형조건이 나빠 계속해서 실패했던 굴착은 조선시대까지도 그 노력이 이어졌다.
조세 운반은 대부분 해로를 통해 이루어졌지만, 내륙지방의 조세는 한강수로를 이용해 운반되었다. 내륙수로를 이용한 조창은 충주의 덕흥창과 원주의 흥원창이었다. 한강의 수로는 내륙지방 사람이 서울로 통하는 가장 편리하고 안전한 길이었는데 두개의 조창은 이러한 한강의 수로를 이용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었다.
<조선시대의 물류 논의>
조선 초기에는 수로를 통한 세곡운송과 상품운송은 정부의 관선이 담당했는데 비효율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위탁하게 된다. 그래서 숙종 때는 운임으로 1만석이나 지불했다. 이러한 이윤을 바탕으로 해서 당시 한강변의 상인들인 경강상인들이 2천석 용량의 선박 등 300여척의 배를 운영했다. 2천석이면 160톤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로, 이들이 정박했던 곳은 서강, 용산강, 양화진, 등 8곳이었고, 서울의 밤섬에는 배를 만드는 조선소가 있었으며 어음을 다루는 객주·여각이 600여개에 달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서울은 상업도시로 변모하게 되는데 이에 따라 상품경제에서 파생되는 여러 일을 하는 한잡지류(閑雜之類)라 불리우는 비생산인구가 수십만에 이르게 된다. 이들은 특히 경강에서 도성 안으로 조세 등의 짐을 운반하는 하역작업을 하였는데, 이런 일에 종사하는 운부계, 마계, 역인계 등의 조직까지 결성하고 보다 많은 일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했다. 이들은 쌀 1천석의 운임으로 11석7두를 받았는데 이익은 상당한 것이어서 18세기에는 왕실인척까지 나서서 역인계 창설을 주도하다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조선시대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 '말은 수레보다 못하고 수레는 배보다 못하다'는 대목이 나온다. 산이 많고 들이 적은 우리나라에서 해상운송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대대로 배가 중요한 운송수단일 수 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도로의 부족과 수레의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제가는 <북학의(北學議)>에서 '매우 이익이 큰 수레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라고 개탄하기도 했다.
박제가는 당시의 공리공담을 일삼던 주자학적 사상계와 풍수도참설에 비판적이고, 국부(國富)를 창출하기 위한 방안으로 상공업진흥론과 농업진흥론을 제기했다.그는 당시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천시하고 위험시하던 사대부들과는 반대되는 견해였다. 더욱이 상공업 육성에 장애가 되는 양반들을 도태시키기 위해 봉건적인 문물제도와 과거제도를 타파할 것도 주장했다.
그는 또한 상공업을 진흥시키기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1) 용차론(用車論) ;교통기관을 발달시킬 것2) 악화주조(惡貨鑄造)를 금지하고 화폐의 질을 높일 것, 3) 은의 해외유출과 중국상품의 유입을 철저히 금지할 것, 4) 밀무역(密貿易)을 양성화시킬 것, 5) 은을 축적할 것, 6) 국내시장을 확보할 것 등을 제시했다.
농업경영의 합리적인 개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인다면 국가재정이나 경제질서 전반의 안정을 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박제가는 농민경제와 국가재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물자유통과 물가 평준화를 기하기 위해 수레를 보급해야 한다는 주장했다. 이러한 방안은 토지소유관계의 측면에서보다는, 당시 사회·경제 실태 위에서 농업을 합리적으로 경영함으로써 농업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것이었다. 그는 농지의 광점(廣占)을 탓할 것이 아니라 경영의 개선과 합리화·집약화를 통해 수익을 늘리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차제(車制)를 개선하고, 도로를 개량하여 교통을 편리하게 한 후 물자의 거래를 촉진해야 하며, 또 중농(重農)정책을 주장하여 농구의 개량, 농업기술의 개선을 역설하는 한편, 상공업의 발전과 적극적인 무역정책을 권장한 점 등은 당시의 정치·사회 현실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주장이었다. 북학사상은 개방적 정신으로 선진문명을 학습하여 부국과 문화발달을 도모함으로써 근대로의 전환을 준비하는 역사적 과제에 부응하고자 한 점에서 그야말로 ‘새로운 문명기획’이었다.
<국가물류와 기업물류>
DJ와 참여정부에 의해 진행된 동북아 물류중심국가의 전략과 대륙횡단철도와 개성특구 등의 대 북방물류정책이 MB정부 들어서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남북간의 이상기류로 개성주재 공무원이 추방당하고 외교적 경색이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한반도대운하사업은 대선 때는 물론 총선 때에도 중요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많은 반대 모임과 찬성모임이 생겨나고 있다. 대운하는 당초의 물류주제를 뒤로하고 관광과 지역 개발 등의 이슈를 더 앞세우고 있는 형국이다.
국가주도의 물류논의가 심화될수록 우리는 기업물류의 역할을 주시하게 된다. 오늘날 기업물류는 국가물류와 더불어 중요한 국가 경쟁력의 축을 형성하고 있다. 국가에 주도되어왔던 이전의 물류에서 점차 기업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으며, 전 세계의 주요 물류기업들은 국가의 기본적인 지원과 정책적 후원을 토대로 기업 자체의 노력과 전략으로 시장을 확장해 가고 있다. 국가에서도 21C 국가 성장 동력원으로 지식기반서비스 산업군으로 물류, 유통서비스 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기업의 물류 프로세스는 선진국에 비해 경쟁력이 매우 미약하다. 이러한 기업물류의 변화는 글로벌 비즈니스를 지향하는 이 시기에 반드시 거쳐야할 관문인 것이다. 오늘날 많은 기업들이 물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물류기업/부문을 신설하고 있고, 전문적인 3자 물류의 도입과 와 4자 물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몇 년전의 화물연대 노동자들을의 파업이 일어나고 '물류대란' 등에서 보듯이 물류는 이제 한 나라의 전 삶과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류은 정부의 중요한 통제정책인 동시에 민간주도의 시장원리에 맡겨야하는 양면적 가치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새로 출범한 육,해,공의 모든 물류,교통 수단과 관련 정책을 통활하는 국토해양부에 남다른 기대와 관심을 갖는 이유는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실용정부‘란 구호에 맞게 형식과 허울이 아닌 명실상부한 '실용(實用)'을 추구하여 기업과 국민경제 전체가 윈윈(win-win)하는 물류정책이 시급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