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8-27 10:04:00.0
SCM 2.0 시대가 온다…“이젠 선택이 아닌 필수”
글로벌 기업 SCM에 따라 업계판도 좌우
HP는 공급망관리의 질적인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리며 델을 제치고 개인용 컴퓨터(PC)시장 1위 탈환에 성공했다. 수요 감소로 어려움을 겪던 버버리그룹, 불가리 등은 공급망내 정보공유를 위한 대대적인 IT 투자를 통해 재고관리를 최적화할 수 있었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의 새로운 전략무기로 SCM(공급망관리)가 급부상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호상 연구원이 펴낸 ‘경쟁우위의 새로운 원천 : SCM’이란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기업들은 단순한 재고감축 기법이 아닌 전략무기로 SCM을 활용하고 있으며 SCM 수준에 따라 업계 판도가 뒤바뀌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
세계 PC시장 1위였던 델은 재고감축 위주의 전통적인 SCM, 이른바 SCM 1.0에 치중하는 사이 HP는 위기관리개념 됩 및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소매 유통업체 관리를 통해 SCM의 질적 수준을 한단계 높임으로써 2006년 PC시장 1위에 올라섰다. 과거 델은 공급망 효율성과 직판 방식이라는 사업모델로 PC시장을 석권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HP, 중국의 레노보, 대만의 에이서 등도 SCM 경쟁력을 제고함으로써 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고효율, 저비용 중심의 경영방식이 한계에 다다르게 됐다.
노키아는 플랫폼 전략을 통해 개발한 제품을 중국, 인도 등 신흥시장의 유통 협력업체와의 협업 등 SCM을 활용해 대량 공급함으로써 수익률을 극대화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노키아의 영업이익률은 24.2%로 10%대에 머물고 있는 경쟁사들을 2배 이상 앞서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재고감축에 초점을 맞춘 SCM 1.0을 바탕으로 하고, 차별적 경쟁력 확보를 겨냥한 SCM, 일명 SCM 2.0을 추진중이다. SCM 1.0이 기업 입장에서 ‘비용절감(재고감축)’을 추구하는 반면 SCM 2.0은 ▲탄력 ▲그린 ▲고객지향 등을 추구하며 ‘유연성 확보’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SCM 1.0만으로는 최근 들어 급변하는 글로벌 생산·물류·유통 환경 속에서 지속적인 경쟁력 확보가 어려운 실정이다.
▲탄력적 SCM= SCM은 고도화될수록 공급망의 위기 대응력은 취약해지는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조기업들이 JIT(Just In Time) 등으로 대표되는 감량경영을 내세워 재고 및 중복투자를 회피한 결과 위기가 발생했을 경우 대처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글로벌화가 진전되면서 예기치 못한 수요변동, 협력업체 도산, 자연재해, 테러 등 경영위기의 발생빈도와 파괴력이 높아지고 있다.
2000년 초 같은 위기상황을 맞았던 휴대폰 제조회사 노키아와 에릭슨이 위기관리력의 차이로 희비가 갈렸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2000년 3월 미국 뉴멕시코주 필립스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휴대폰에 사용되던 반도체 칩 생산이 중단됐다.
이 때 노키아는 전사적인 태스크포스팀을 가동해 미국 밖에 위치한 필립스 공장에서 공급량을 선제적으로 확보했다. 결국 원활한 반도체 칩 공급으로 이듬해 세계 시장 점유율은 27%에서 30%로 확대됐다. 반면 에릭슨은 사태의 심각성을 간과하고 부품공급을 대기했다가 약 5억달러의 손실을 내고 2001년 소니와 합작사를 설립, 휴대폰 사업에서 철수하고 말았다.
글로벌 기업들은 위기대응력을 강화하기 위해 유연성을 보강하는 방향으로 기존 공급망을 재설계하는 추세다. 예기치 못한 수요변동에 대처하기 위해 탄력적 계약, 생산처의 다양화 등으로 공급망의 유연성 확보에 나서게 된다. 소수 공급업체에 대한 높은 의존도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다수 공급업체를 활용하고 공급업체간 긴밀한 협력을 유지하는 전략이 이에 해당한다.
▲그린 SCM= 최근 환경 및 에너지와 관련해 세계 각국의 규제가 강화되고 있어 기업들도 친환경 경영을 지속성장의 관점에서 인식하기 시작했다. 유해물질사용제한지침(RoHS), 교토의정서, WEEE(폐전자제품 처리지침) 등 각종 환경 관련 규제로 친환경 공급망 구축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일본의 경우 지난 2006년 8월에 이미 일본전자정보기술협회(JEITA)가 친환경 SCM 가이드라인을 작성해 모든 전자업계에 배포하는 등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이중 최근 확산되고 있는 그린 SCM의 하나인 '리버스(Reverse) SCM'은 A/S 대상 제품, 고객반품, 수명이 다한 제품 등을 회수해 재활용 퍠기하기 위해 등장했다. HP는 리버스 SCM을 구축해 컴퓨터 프린터 등의 폐기물 재활용에 성공하고 기업이미지도 높였고 인텔은 예상되는 CO2 배출량을 금액으로 환산해 공급망 설계 및 생산계획시 반영하고 폐기물 관련 데이터에 대한 실시간 모니터링 체제를 구축중이다.
존슨앤드존슨은 협력업체를 선택할 때 자사의 환경 및 각종 가이드라인 충족 여부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준수여부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월마트는 캐나다 위탁 물류업체의 기존 도로 배송을 철도배송으로 바꾸고 트럭의 디젤형 보조발전기를 축전형 전기발전기로 교체하는 CO2 배출량 감축 프로그램을 통해 연간 2백만달러의 비용을 줄였다.
▲고객지향 SCM=공급망 내 모든 의사 결정의 초점이 제품 중심에서 고객중심으로 변화하면서 SCM도 저비용으로 신속하게 제품을 시장에 공급하는 것보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시장에 적기 공급하는 것에 더 가치를 두게 됐다.
노키아는 온·오프라인을 통합, 여러 각도로 고객의 반응을 입수해 관련 정보를 제품 개발에 반영하고 있다. 수집된 고객 정보를 활용해 신제품을 개발하고 출시 시기를 결정하며 이를 지원할 수 있도록 공급망 체계를 정비했다. 그 결과 노키아의 기기당 연구개발(R&D) 비용은 12%에서 8%로, 판매가 대비 제품개발 원가는 30% 축소됐으며 제품개발 사이클은 기존 공정에 비해 20%나 단축됐다.
맥도날드는 가격 경쟁력을 위한 SCM 최적화에서 탈피해 고객 취향과 기호변화에 발맞춰 맥카페 점포를 출시했다. 스타벅스를 경쟁사로 규정해 탄생된 맥카페는 기존 패스트푸드 식당이 아니라 최고급 커피를 편안한 공간에서 즐길 수 있게 한다는 카페의 개념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국 기업의 SCM 수준은= 이같이 다국적 기업들이 SCM을 기업 발전의 원천기술로 활용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아직까지 그 도입이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매출 1천억원 이상 국내 제조 193개사 중 2006년까지 SCM을 도입한 기업은 19.7%에 불과한 실정이다.
또 국내 상장 100대 기업에 속하는 43개 제조사를 대상으로 1998~2007년간 SCM의 도입성과를 분석한 결과 2003년까지는 성과가 뚜렷했으나 그 이후로는 정체상태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삼성전자, 현대차 등과 같이 매출액 10조원 이상의 상위그룹, 해외 수출 비중이 2/3를 넘는 글로벌 그룹 성과는 우수한 반면 매출액 중하위 그룹과 국내 위주 그룹의 성과는 부진한 것으로 평가됐다.
보고서는 SCM을 단순한 솔루션이 아닌 관리 패러다임으로 인식하고 도입후 가시적인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을 땐 재고감축이란 1차목표부터 달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SCM 2.0을 도입할 땐 3대 트렌드를 한번에 도입하려고 하는 것보다 업종특성, 관련규제 등을 고려해 우선순위를 정하고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