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26 10:22:00.0

기획/“쓰나미 눈앞에 둔 하주업계 내년 1분기 고비”

大不況 하주·물류업계 현장을 가다
10월이후 물량 급감…새해 사업계획 ‘엄두 못내’
해상운임 곤두박질, 육송운임도 하락 조짐

●●● “IMF 때도 공장을 중단하고 휴가를 간 적이 없지만 지금은 조업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오죽하면 내년도 사업계획을 못 세울 지경이겠나. 지금은 기업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어느 하주기업 관계자의 말이다. 최근 수출입업계의 상황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말일 듯싶다.

수출입 하주들이 세계 경제 침체 여파로 어느 해보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수출 화물량이 두자릿수로 줄어들자 수주감소를 견디지 못한 기업들이 본격적인 감산에 들어가고 있다. 물량 감산은 자동차, 화학, 화섬, 제지 등 전 업종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현대자동차와 GM대우, 쌍용자동차가 최근 공장가동 중단, 주말 특근 및 잔업 중단 등의 방식으로 생산량 줄이기에 나섰다. 특히 GM대우 부평공장은 내년 1월4일까지 가동이 완전히 멈췄다. 화섬업체인 휴비스는 수요가 줄어 전주공장의 생산량을 30% 이상 축소했으며, 삼남석유화학도 공장 정비를 통한 감산에 들어갔다.

거기다 국내 최대의 철강 기업인 포스코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감산을 결정해 제조기업들의 감산대열에 합류했다. 현대제철이나, 동국제강, 세아제강 등 다른 철강회사들도 연말을 맞아 줄줄이 공장가동 중단 계획을 내놓고 있다.

타이어 업계는 미국 자동차 빅3인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크라이슬러의 부실이 표면화되면서 이 지역 수출이 뚝 떨어졌다. 이들 3곳은 미국내 타이어 시장의 2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빅3 물량을 교체 시장으로 전환하더라도 단가 하락은 피할 수 없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수출기업들은 현재의 상황을 지난 97년 IMF 외환위기 때보다도 더 혹독하다고 전하고 있다. IMF 시절엔 내수시장만 붕괴됐을 뿐 해외 수출시장은 여전히 강세를 나타내 수출이 한국 경제를 견인했지만 지금은 전 세계적인 불황으로 해외 판매물량이 크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은행들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신용장(L/C) 개설에 인색한 모습을 보이면서 기업들은 원자재 수입에 발을 동동 굴리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수입을 주력하는 하주기업들은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수출입 하주기업들의 위기는 곧 연관 산업인 해운물류업계의 동반 침체로 이어져 문제의 심각성이 자못 크다.

“IMF보다 더한 불황”

대형 하주기업인 A사 관계자는 최근의 회사 상황을 묻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10월부터 시작된 물량 감소가 시간이 지날 수록 점차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량 감소가 향후 몇달 동안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데 더욱 힘이 빠진다.

“10월에 10% 정도의 물량이 줄기 시작해 지난달엔 20% 가량 빠졌다. 이번 달 들어선 30% 가까운 수준으로 물동량이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 3월까지는 어떻게 될 지 한달 계획 짜기도 힘들다.”

이 회사는 국내 물류센터의 재고량이 만고(滿庫) 수준에 이른데다 해외 창고 재고율은 평소보다 10% 이상 상승했다. 내수 물량 감소 뿐 아니라 해외 판매량이 40% 이상 떨어지자 불가피하게 재고량을 늘린 결과다. 달마다 공장 가동계획이 나오는데 최근엔 가동 중단으로 이마저도 세울 수가 없게 됐다.

실제로 무역협회에 따르면 11월 수출은 18.3%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수출증가율이 9월 27.7%에서 10월 들어 8.5%로 크게 둔화된데 이어 감소세로 전환한 것이다.

특히 11월 수출은 거의 모든 품목과 모든 시장에 걸쳐 부진을 나타냈다. 선박을 빼고 석유제품, 반도체, 자동차 등 주력품목 대부분이 큰 폭으로 감소했고 중동을 제외한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과 동남아시아, 중국, 중남미 등 개발도상국 모든 지역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다.

특히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와 휴대폰 등은 각각 44%와 26% 급감해 수출업계의 시황 하락을 이끌었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경기 악화로 전자제품 교체주기가 길어졌기 때문이다. 이어 자동차와 자동차부품이 13%, 27% 감소했고 석유화학제품도 37%나 떨어졌다.

대형 물류기업인 B사는 내년도 사업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하주기업측에서 내년 1~3월 상황을 전혀 예측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기업들은 일반적으로 생산기간 1달, 운송기간 1달 정도로 계산해 2~3달 전에 미리 외국 바이어들로부터 주문을 받는다. 때문에 내년 1분기까지 수출될 물량은 이미 올 연말에 발주가 마무리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하주기업들이 연말까지 받은 주문이 전무한 상태여서 B사도 내년 3월까지는 ‘손가락만 빨아야 할’ 상황이다. 그나마 계약된 것이라곤 일회성(스팟) 물량이 전부다.

제품판매감소로 제조기업들의 물류창고재고율이 크게 상승하고 있다


“중국 지역이 가장 심각하다. 경제 침체로 중국쪽의 하강속도가 생각보다 너무 빨라 놀라고 있다. 12월초까지 중국과의 수출입 물량이 40% 가량 줄었다. 성탄절이나 연말 특수 등으로 지금이 성수기인데, 물량이 전혀 없다. 내년 2~3월 돼 봐야 그나마 향후 전망을 알 것 같다.”

B사 관계자는 중국과 함께 브릭스(Brics)로 불리던 러시아도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을 꺼냈다. 이달 들어 50%의 물량이 하락했다. 물론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대비해 10월말께 미리 주문해놨던 제품들이 현지 물류창고에 그대로 쌓여 있는 형편이어서 추가 발주가 아예 없다. 이 관계자는 중동지역과 남미는 15~20%의 물량 감소율을 보였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그나마 감소폭이 적어 위안을 삼아야할 처지다.

그는 10월부터 금융위기 쓰나미의 징후를 느꼈다고 했다. 정부나 언론에서 11월께부터 실물경제 악화를 본격적으로 조명하기 시작했으나 일반 기업들은 10월부터 수주 감소가 표면화됐다는 말이다.

그는 “멀리서 쓰나미가 오고 있는 걸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현재 바로 눈앞에 와 있다. 내년 1~2월께 우리를 덮칠 것”이라고 현재의 심각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일회성 물량이 전부

중견 화섬기업인 C사는 여우를 피하자 범을 만난 처지가 됐다. 상반기에 원자재값이 높아서 어려움을 겪다 하반기 들어 가격이 떨어지면서 호재로 여겼는데, 금융위기를 만났다. 이 회사 관계자는 “대부분의 화섬업체들이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감산에 돌입했다”며 “원면·원사가 30% 이상 줄었고, 직물도 상황이 썩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내년 하반기까지 수출이 늘어날 여지가 없다고 내다봤다. 동유럽이나 러시아, 중남미,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주요 수출국이었는데, 최근 들어 이쪽 시장이 모두 무너진 상태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11월 섬유 수출은 18.4%나 감소했다. 예년엔 크리스마스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으나 올해엔 경기침체로 그마저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최근의 경제불황은 끄떡없을 것 같던 중국 화섬업계에까지 큰 타격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업체들이 주력해 왔던 미국 시장으로의 수출이 완전히 막히면서 시황이 꽁꽁 얼어붙은 것이다. 중국 화섬업계는 최근 들어 구조조정에 대한 목소리가 굉장히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한국 기업들은 지금처럼 어려운 경제여건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세계 화섬업계를 주름잡아왔던 중국기업들이 인건비 상승으로 경쟁력이 크게 약화돼 해외 시장에서 한국기업들의 진입 여건이 크게 좋아졌기 때문이다. C사는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중국기업과 경쟁해 두바이 디시다샤(아랍 남성 전통의상) 시장 진출에 성공했다.

수출입 기업들의 상황이 이같이 힘들다 보니 해운물류업계에도 그 영향이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현재 물량 감소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곳은 유럽항로. 이 항로는 지난해 호황으로 대형선박이 대량으로 투입됐던 곳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급격한 시황 하락으로 운임이 곤두박질쳤다. 지난해 20피트 컨테이너(TEU)당 4천달러선을 웃돌던 해상운임은 올해 들어선 1300~1500달러대로 내려 앉았다. 불과 1년만에 3분의 1토막 난 셈이다.

게다가 4~5월동안 진행되는 운송계약으로 한해 운임이 결정되는 북미 항로도 최근 운임 하락이 나타나고 있다. 계약기간이 아님에도 선사 영업담당자들이 화물 집화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하주들을 찾아 “물량만 보증해주면 운임할인은 해줄 수 있다”고 거래를 시도하는 형편이다.

게다가 이 항로는 올해 초 천정부지로 치솟은 국제유가를 반영하기 위해 도입됐던 유가연동할증료(Floating BAF)가 내년엔 불투명하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물론 유가가 올해 상반기와 비교해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기도 했지만 어려운 시황으로 선사들이 BAF 적용에 엄두를 못 내고 있는 점이 큰 이유다.

한 하주는 “올해 플로팅 BAF 때문에 미국 계약이 많이 힘들었다”며 “내년엔 BAF 얘기 꺼내는 회사완 거래를 안할 것”이라고 공언해 선사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하주들은 운임이 큰 폭으로 떨어졌음에도 그 효과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물동량이 없다보니 운임 할인에 대한 비용 감소가 가슴으로 크게 와닿지 않는 형편이다. 게다가 해외 항만에서 바이어들이 주문한 화물을 찾아가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체화료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도 하주들을 어렵게 하고 있다. 무료장치기간을 넘길 경우 1일 30유로씩의 체화료가 붙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을 맞는 경우도 빈번하다.

한 하주관계자는 선적상한제를 실시하거나 유가할증료 인하에 인색한 한일항로와 한중항로에 쓴소리를 했다. 그는 “한일항로와 한중항로는 유가가 굉장히 떨어졌음에도 할증료 변화가 없다”며 “업계가 다 같이 어려운데 협회 담합을 통한 인위적인 통제는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의왕 ICD 물동량 반출입 절반가량 줄어”

기자가 지난 18일 찾은 의왕내륙컨테이너기지(의왕ICD)는 최근 해운·물류업계의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수도권 물류의 심장인 의왕ICD. 이곳을 통해 수도권에서 생산된 수출화물들이 부산항이나 광양항으로 나가거나 외국에서 들어온 화물들이 수도권으로 운송된다. 연일 드나드는 컨테이너차량들로 북적대는 이곳은 한국 수출입 업계의 동맥과도 같은 역할을 해왔던 터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의왕ICD가 한산하다. 세계 경제 침체 여파로 수출입 화물량이 절반 가량 뚝 떨어졌다. 화물연대 파업으로 국내 물류가 마비됐었던 지난 2003년에도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고 할 정도다. 당시에도 차량 운행은 줄었음에도 파업을 벌이는 화물연대 조합원들과 비조합원들의 실랑이, 대책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운송사들의 움직임 등으로 분주함만은 여전했다.
의왕ICD장치장, 수출입화물감소로 텅빈 모습이다.

하지만 기자가 찾은 의왕ICD는 예전의 생기 있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곳곳에 컨테이너를 받지 못해 텅 빈 공간들이 최근의 어려운 업계 사정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차량 운행도 현저히 줄어 이곳이 중부 지역의 수출입 화물을 책임지는 심장부가 맞나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했다.

입주업체인 D사 대표이사는 “(의왕 ICD) 재고만 봐도 절반 이상 줄어든 것을 알 수 있다”며 “예전엔 수입 풀컨테이너(만재화물)가 들어와 짐을 내리면 공컨테이너가 함께 늘어나는 식이었는데, 지금은 수입자체가 줄면서 풀컨테이너, 공컨테이너 할 것 없이 다 같이 줄고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쌓여 있는 컨테이너도 빈 것이 대부분이다. 예전엔 4~5단씩 쌓고도 빈 자리를 찾기가 힘들었지만 지금은 텅 빈 자리가 많아 여유롭기까지 하다.

그는 “문제는 이 불경기가 언제까지 계속될 지 모른다는데 있다”며 “회사 역량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 될 경우 문닫는 회사도 많이 생겨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의왕ICD. 화물이 없어 대기중인 화물차의 모습이 부쩍 눈에 띈다

이같이 수출입 물량이 크게 줄면서 지난 6월 화물연대가 파업까지 불사하며 올려놓은 육송운임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지난 6월 운송사는 하주들과 운송료 9% 인상에 합의했다. 요율표(태리프) 상의 할인율을 종전 20%에서 10~15%로 축소하는 방식이었다. 또 화물연대측은 물류 파업을 통해 운임 19% 인상을 관철시켰다

하지만 최근 들어 물동량이 급감하면서 하주들이 할인율을 예전 수준으로 다시 확대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일감을 더 많이 확보하려는 화물차주들의 본격적인 물량 쟁탈전이 예고되고 있어 자연스레 운임인하로 옮아갈 가능성이 크다. 경기 악화로 화물연대의 입김이 상당히 퇴색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왕복화물을 싣지못해 차량대기장으로 향하는 화물차

E사 소속 화물차주는 “예전엔 안산간 셔틀을 하루에 3번 이상 운행했지만 지금은 하루에 한번 운행하기도 힘들다”며 “예전엔 월 매출 800만~900만원에 이르렀지만 지금은 400만원 올리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할부금이 남은 사람들은 정말 힘들 것”이라며 “차값이 대략 2억원 가량인데 한달에 300만~500만원의 할부금이 고스란히 빠져 나간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부산-의왕간을 운행하는 장거리 화물차 기사들의 경우 왕복 화물이 없어 의왕ICD에서 1박을 하는 경우가 자주 눈에 띈다. 다음날 내려갈 화물을 실을 요량이지만 1박을 하고도 왕복화물 수송을 장담 못하는 실정. 화물차 기사들은 오후3시가 넘으면 화물이 없어 일손을 멈추는 상황이기도 하다.

의왕ICD 관계자는 최근 GM대우가 부평공장 조업중단을 선언하면서 물량이 소폭 늘었다고 언뜻 이해하기 힘든 말을 전하기도 했다. 부산에서 의왕ICD를 거쳐 GM대우 부평공장으로 수입원자재가 수송되고 있다. 예전엔 통과화물이어서 이들 물량이 집계에서 제외됐으나 공장이 가동을 중단하면서 터미널내 장치물량으로 전환됐다. 경기 침체로 인한 씁쓸한 일면이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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