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15 15:49:55.0

기획/ “중량물 수송시장 기회의 땅 아니다”

선복과잉으로 운임 반토막
일부 물류기업 저단가 수주로 수익성 악화 자초

●●●중량화물 수송은 최근 몇 년 사이 해운물류업계에서 가장 각광받은 분야 중 하나로 떠올랐다. 내로라하는 국내 물류기업들이 너나할 것 없이 선박을 대거 발주하며 중량물 수송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국내 EPC(Engineering Procurement Construction) 업체들의 해외 수주가 호황을 맞으면서 관련 물류시장도 덩달아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EPC 기업들이 해외에서 수주한 금액은 715억달러에 이른다. 2005년 이전만 하더라도 해외건설 수주액이 100억달러를 넘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올해에도 유럽발 재정위기에 따른 혹독한 경제불황 속에서도 해외건설 수주액은 6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가운데 플랜트 수주가 전체 수주액의 절반을 훌쩍 넘는 520억달러를 기록할 전망이다.

특히 최근 국제유가의 강세로 오일달러를 한껏 확보한 중동국가들이 대규모 건설사업에 나서면서 국내 기업들의 발걸음도 분주해지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아랍에미리트(UAE) 루와이스 정유생산 확장사업(RRE 프로젝트) 7개 패키지 중 핵심 5개 패키지를 싹쓸이 한 것에서 한국 기업들의 높아진 경쟁력을 엿볼 수 있다.

RRE 프로젝트의 물류수송이 올해부터 시작됐다. RRE 프로젝트는 올해 중량물 수송시장에서 단연 화제가 됐다. 전체 수송물량이 자그마치 100만CBM(=㎥)을 넘어서는 대규모 공사여서 중량물 물류기업들이 거는 기대는 자못 컸다.

GS엔지니어링이 맡은 2번 3번 패키지와 삼성엔지니어링이 맡은 7번 패키지의 물류 수송이 진행됐으며 수송선사로 전통적인 중량물 수송 강자인 점보쉬핑과 SAL OXL을 비롯해 일본 NYK히노데, 우리나라 STX팬오션 등이 참여했다. 이와는 별도로 동방은 GS와 300t급 이상의 초중량화물에 대한 수송계약을 단독 체결하고 7월부터 지난달까지 5차례의 수송을 진행했다. 동방은 도크와이즈 롤독 NYK히노데 코스코쉬핑(COSCOL) 등과 겨뤄 수송사로 선정됐다. 동방은 입찰에서 항만하역 오퍼레이션 등 종합물류서비스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아 GS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

이렇듯 대형 해외 건설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국내 중량물 수송시장의 기대치가 한껏 올라가고 있지만 실제 운송사들이 체감하는 시황은 사뭇 냉랭하다. 블루오션으로 부상하던 몇 년 전과는 달리 현재 중량물 수송시장은 선박과잉과 치열한 경쟁으로 운임은 빠른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다고 선사들은 하소연 했다.

중량물 수송 시장 선종별로 시황도 제각각

중량물 수송시장은 크게 세 부문으로 분류된다. 크레인을 이용해 화물을 선적하는 LO-LO(Lift on Lift off) 시장과 플랫 바지선이 쓰이는 RO-RO(Roll on Roll off), 반잠수식 선박을 이용하는 FO-FO(Floating on Floating off) 시장 등이다. 이 가운데 인양방식의 LO-LO 선박들이 가장 많은 척수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LO-LO 시장에선 BBC차터와 빅리프트 점보쉬핑, SAL 등 유럽계 선사가 전통적인 강자다. 독일 리크머스는 중량물 정기선 서비스로 차별화된 시장을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대부분의 중량 화물들이 LO-LO 선박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다만 이 시장은 최근 들어 선박량이 크게 늘면서 경쟁이 심해졌다.

국내에선 현대상선이 지난 2007년 10척의 중량화물 전용선단을 구축하고 이 시장에 처음으로 명함을 내밀었다. STX팬오션도 지난해 시장조사를 마치고 올해부터 6척의 헤비리프트 선박을 앞세워 화물수송에 나서고 있다. 현대상선은 올해 현대중공업이 인도 정유업체 NOCL에 납품한 800t급 리제너레이터와 765t급 촉매재생기 등을 운송했으며, 지난달 RRE 프로젝트 일환으로 SK건설이 제작한 361t급 리액터 수송을 마쳤다. STX팬오션도 RRE 프로젝트 수송 외에 STX그룹에서 진행 중인 이라크 디젤발전플랜트 프로젝트 화물을 독점 수송했다.

RO-RO 시장은 요즘 우리나라 물류기업들이 대거 발주해 익숙해진 자항선(self-propelled barge)에 의해 움직인다. 우리나라 동방은 국내 중량물 수송시장에서 자항선을 도입한 선구적인 기업이다. 지난 2006년 1만1천t(재화중량톤)급 <동방자이언트>호를 인도받아 해운 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뒤 2008년과 지난해 7월 각각 1만2천t급 2호선과 1만5천t급 3호선을 선단에 편입했다. 이후 메가라인도 1만6800t급 1만7300t급 등 자항선 2척을 인수했으며 (주)한진도 올해 초 신조 자항선인 <한진파이오니어>호를 인도받았다. 대한통운은 1만5000톤급 자항선 2척을 내년께 인도받고 중량물 선사로 발돋움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 동방은 올해 RRE 프로젝트 뿐 아니라 두산중공업의 중동 담수화설비 운송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이달 초 한진으로부터 용선한 <한진파이오니어>호를 통해 담수설비 수송에 나서며 이 부문 독점체제를 구축했다. 메가라인은 셰브론이 진행하는 호주 고르곤 프로젝트에서 NYK히노데와 함께 전담선사로 선정되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FO-FO 시장은 중량물 수송시장 중에서도 틈새시장으로 분류된다. LO-LO와 RO-RO 방식의 중량물 선박이 육상플랜트 화물 수송에 쓰인다면 FO-FO 선박은 석유시추선이나 플랫폼 등의 해양플랜트 수송에 주로 이용된다. 네덜란드 도크와이즈를 중심으로 페어스타 OHT 중국 코스코 등이 반잠수식 선박을 보유 중이다. 특히 도크와이즈는 20여척의 선단을 보유하고 있으며 내년 초 11만DWT 규모의 <도크와이즈 뱅가드>호를 인도받을 예정이다.

우리나라에선 STX팬오션이 지난 2008년 1만7천t급 <에스티엑스로즈1>호를 인도받아 관련 시장에 진출한데 이어 메가라인도 지난해 3만5천t급 반잠수식 자항선 <메가패션>호를 시장에 투입했다.
중량물 수송시장은 선박의 형태별로 시황이 다소 차이를 보인다. 육상플랜트를 실어 나르는 LO-LO와 RO-RO 시장은 선사들의 이전투구 속에 운임하락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반면 FO-FO 시장은 높은 시장진입장벽으로 기존 선사들이 어느 정도 선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육상플랜트 선사 ‘한겨울’

육상플랜트 수송시장에선 올해 초 독일 벨루가의 파산 과 SAL의 매각 소식이 전해졌다. 벨루가는 60여척에 이르는 LO-LO 선박을 보유하고 중량물 시장에서 강자로 군림해왔으나 지나친 선대 확장으로 파국을 자초하고 말았다. 벨루가 선박 중 18척은 같은 국적의 한사헤비리프트에 인수됐으며 나머지 선박은 선주사에 반선됐다.

SAL은 지난 6월 일본 케이라인에 경영권을 완전히 넘겼다. SAL은 지난 2007년 지분 50%를 케이라인에 매각한 뒤 올해 들어 나머지 지분도 올해 모두 정리했다. 중량물 시장 전망이 호의적이지 못하다는 전망이 경영권 매각으로 이어진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비교해 FO-FO 시장은 시장환경이 다소 괜찮은 편이다. 다른 선사들이 줄줄이 적자실적을 발표할 즈음 도크와이즈는 3분기에 4천만달러의 영업이익(EBITDA)을 실현한 것으로 집계됐다. 육상플랜트 수송시장이 늘어난 선복으로 과열 양상을 보인 반면 FO-FO시장은 제한된 선사에 의한 제한된 경쟁으로 안정적인 운임이 유지됐다는 평가다.

국내 중량물 수송시장도 체감시황은 차갑다. 현대상선과 STX팬오션은 중량물 수송시장에 진출한 뒤 얼마되지 않아 국내 EPC 기업의 물량 절반 이상을 실어 나르는 발 빠른 성장세를 구가했다. 하지만 운임은 크게 떨어진 반면 연료비는 크게 올라 수익성은 후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 중량물 수송 운임은 t당 100달러 안팎까지 하락한 상황이다. 과거 200달러선에서 반토막난 셈이다.

중량물 전문선사 한 관계자는 “더이상 중량물 수송시장은 블루오션이 아니다”며 “벨루가가 파산했다고 하지만 선박량은 줄어들지 않아 선복과잉은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중량물 수송시장의 운임하락을 두고 최근 이 시장을 평정한 물류기업 A사에 화살을 돌리는 목소리도 들린다. A사는 과거 중량물 물류입찰에서 잇따라 승리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삼성엔지니어링 6건, 두산중공업 3건, GS엔지니어링 4건 현대엔지니어링 1건 한화건설 2건 등의 중량물 수송을 확보했다.

하지만 이 같은 영광의 배경에 덤핑응찰이 존재하기에 물류업계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한 시장 관계자는 “A사는 최근 진행된 프로젝트에선 경쟁업체보다 1천만달러나 낮은 입찰가를 제시해 낙찰받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물류기업 한 관계자는 “A사가 낮은 단가로 입찰을 따는 것은 뭐라고 할 부분이 아니지만, 이를 수송하는 선사들의 운임이 낮아지는데다, 중량물 시장 전체 물류비가 낮아지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향후 입찰에서 제살깎아먹기 식의 ‘저단가 경쟁’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다.

A사 관계자는 이를 두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것이라고 답했다. “수주를 하려면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무리하게 입찰에 참여한다기 보다는 많은 물량을 유치해 경제를 실현함으로써 경쟁력 있는 단가를 얻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 중량물 선사 정책적 육성’ 지적도

정부가 국적선사들의 중량물 수송 확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컨테이너나 벌크선 시장에 비해 중량물 수송시장의 진입장벽이 높은 건 단순한 운임 위주가 아닌 화물을 효과적으로 선적하고 수송하는 ‘엔지니어링’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점보쉬핑 등의 외국선사들은 엔지니어링 파트 인력이 수십 명에 달하지만 국적선사들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정부가 중량물 수송인력을 육성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을 정책적으로 도입해 국적선사들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선사 한 관계자는 “중량물 시장에서 도크와이즈처럼 퀄리티로 승부하는 시장이 있는 반면 국적선사나 중국선사와 같이 운임으로 승부하는 시장이 있다”며 “정부가 국적선사들의 교육지원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희 차장 khlee@ks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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