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해운불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특히 벌크선 시장은 ‘끔찍하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끝 모를 바닥시황을 연출하고 있다. 해운 산업 지원 정책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해운업계 안팎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이유다.
9월까지 BDI 평균 1000선 밑돌아
현재 해운사들은 운임 폭락, 유가 급등, 유동성 부족 등 3중고에 체력이 바닥난 상황이다. 건화물선운임지수(BDI)는 이달 들어 600선대로 떨어졌다. 지난 12일엔 661까지 하락해 2월3일 기록했던 역대 최저치(647)를 경신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이후 바닥을 찍고 상승세로 전환하긴 했으나 여전히 그 수준은 참담하리만치 낮은 수준이다.
9월18일 현재 연간 BDI 평균치는 919포인트로 1000선이 채 못 된다. 지난 2008년 평균 6300포인트에 비해 85%나 폭락했다. 연평균 BDI는 2009년 2613, 2010년, 2761, 2011년 1548 등 매년 우하향 추세다. 지금까지의 추세로 봤을 때 올해는 연평균 1000포인트를 넘기기 힘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 전체 선사의 절반이 적자를 기록했었던 벌크선 시장의 영업성적표도 올 한해 더욱 심각할 것으로 점쳐진다.
최근의 해운시황 불황은 유럽 재정위기에서 비롯됐다. 유럽 지역의 재정위기로 전 세계 경제의 위기감이 고조됐으며 그 결과 세계 해운시장을 이끌어 왔던 중국마저도 경기 하강의 징후를 나타내고 있다. 선진국들의 경기 둔화로 원자재를 사들여 완제품을 생산하는 중국의 수출입 흐름이 작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됐으며, 결국 해운시장 물동량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교역량 증가율을 4%로 예상했다. 2010년 12.9%에서 지난해 5.8%로 급락한 뒤 추가 하락하는 것이다. IMF는 세계 경제 성장률을 2010년 5.3%, 지난해 3.9%에서 더 떨어진 3.5%로 전망했다. 특히 2010년 2.0% 지난해 1.6%의 저성장을 이어온 유로존 경제 성장률 전망은 참담하다. 올해 -0.3%의 역성장이 예상됐다.
반면 국제유가는 고공행진을 거듭해 선사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18일 현재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111달러를 기록 중이다. 2009년의 61.7달러에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선박연료유인 벙커C유의 t당 가격은 이달 들어 670~690달러대(싱가포르항 IFO 380cst 기준)를 오르내리고 있다. 상반기에 비해 다소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운 수준이 아닐 수 없다.
연료유 가격은 매년 큰 폭으로 뛰고 있다. 플래츠(Platts)에 따르면 벙커C유 연평균 t당 가격은 2009년 373달러에서 2010년 465달러로 24% 오른 뒤 지난해엔 651달러로 1년 전에 비해 40%나 상승했다. 올해 상반기엔 699달러를 기록했다. 2009년에 견줘 87% 급등한 것이다. 1분기에 736달러까지 상승했다가 2분기에 662달러로 하락했다.
그 결과 선사들의 매출액 대비 연료비 비중도 매년 크게 늘어나고 있다. 한진해운의 연료비 비중은 2010년 18%에서 지난해 24%로 껑충 뛰었으며 올해 상반기 22%를 나타냈다. 현대상선도 비슷했다. 2010년 16%에서 지난해 22% 올해 상반기 25%로, 매년 연료비 비중이 확대 추세를 보이고 있다.
STX팬오션은 두 선사들에 비해 상황이 더 심각했다. 2009년 18%에서 2010년 20%로 확대된 뒤 지난해 29%까지 치솟았다. 올해 상반기엔 30%선을 넘어섰다. 선사들 적자 원인의 1순위가 바로 연료유인 셈이다.
해운기업의 유동성 악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산업 기반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영업실적은 1년 사이 크게 악화돼 해운산업의 신용도도 크게 떨어졌다. 선주협회에 따르면 해운산업 매출액 규모는 2010년 44조538억원에서 지난해 42조6325억원으로 3.2% 뒷걸음질 쳤으며 순이익은 2010년 9059억원 흑자에서 지난해 2조2540억원 적자로 급반전했다.
유동자산은 감소한 반면 유동부채는 늘어나면서 유동비율도 나빠졌다. 2010년 117.4%였던 해운산업의 유동비율은 지난해 99.1%로 하락했다. 부채비율은 2010년 246.6%에서 지난해 330.4%로 1년 사이 급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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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자금지원으로 악순환 고리 끊어라
상황이 이렇다보니 해운업계에선 선제적 자금조달을 통한 유동성 위기 극복 노력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실정이다. 정부가 지원하는 자금 조달을 통해 유동성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재무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해운산업에 지원한다는 신호가 포착될 경우 금융시장의 긍정적인 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 이는 곧 유동성 확보의 선순환 구조를 확립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얘기다. 해운불황으로 실적이 악화되면서 선사들의 신용등급은 하락한 상태다. 그 결과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져 선사들의 유동성 위기를 불러왔으며 선박 투매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벌크선사 관계자는 “현재 선사들은 한계 상황에 다다른 것 같다”며 “외부 지원이 없을 경우 국내 선사들은 저가로 선박을 팔았다가 호황기가 도래했을 때 고가로 매입하는 IMF 시절의 악순환을 반복하게 될 것”이라고 정부의 조속한 지원을 요청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는 해운산업 지원 정책을 도입했으나 경쟁국들에 비해 규모는 미흡하다는 게 대체적인 해운업계 평가다. 정부는 지난 2009년 9월 자산관리공사(캠코)의 구조조정 선박펀드 프로그램을 도입한 바 있다. 구조조정 펀드는 지난해까지 총 33척을 매입해 선사측에 4700억원의 유동성을 수혈했다. 무역보험공사는 지난해 1월부터 해운산업 경쟁력 확보를 목적으로 수출기반보험 제도를 운영하며 선박 6척에 대해 4300억원의 보증서를 발행했다. 수출입은행은 올해 6월 중견 중소기업 신용대출 대상에 해운업을 포함시키기로 결정했으며 해운업 대출한도를 1500억원으로 늘렸다. 현재 중소선사 3곳이 대출 신청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외국은 막대한 자금을 해운시장에 투하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은 중국이다. 중국은 선사와 조선사에 파격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중국은행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코스코에 108억달러의 신용을 제공했으며, 중국수출입은행은 향후 5년간 코스코와 차이나쉬핑에 각각 95억달러씩 지원키로 했다. 이와는 별도로 중국 조선소에 신조발주 지원을 위해 여신 224억달러를 제공한다.
덴마크는 세계 1위 컨테이너선사인 머스크라인에 수출신용기금 5억2천만달러의 금융을 지원하는 한편 62억의 금융을 차입하는 유동성 지원책을 제시한 바 있다. 독일 정부는 지난 2009년 유동성난에 빠진 하파그로이드에 12억유로의 지급보증을 한다는 내용의 자금 지원안을 통과시켰다. 프랑스의 경우 CMA CGM에 대해 채권은행이 5억달러 규모의 자금지원에 합의했다.
이밖에 일본은 해운업계에 이자율 1%로 10년 만기 회사채 발행이 가능토록 했으며, 인도는 정부가 21억달러의 자국 선주 지원 프로그램을 내놨다.
전략화물 국적선사 수송, 3자물류 지원도
해운업계에선 전략물자 수송의 일본계 선사 참여 또한 풀어야할 숙제다. 한국전력 발전 자회사가 유연탄 수송 입찰에 일본계 선사를 지속적으로 참여시키면서 촉발된 문제다. 한전은 지난 2007년 이후 일본계 선사에게 석탄 수송을 맡기고 있다.
지금까지 발전 자회사들이 일본계 선사와 맺은 장기운송계약은 18척으로,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전체 석탄 수입량의 25%를 일본선사가 수송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전력의 발전용 수송석탄 수입량 7950만t 중 일본 선사들이 수송한 양은 1654만t에 이른다. 같은 해 일본전력은 수입 석탄 1억7150만t 전량을 자국 선사에게 수송을 맡겨 양국 호혜평등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본선사들이 한전의 석탄수송을 수송해 얻는 수익은 연간 2400억원, 총 2조6500억원에 달한다. 일본계 선사와의 장기운송계약이 국적선사에게 돌아갔다면 해운위기 극복에 큰 힘이 됐을 것이란 얘기가 해운업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국적선사들은 발전자회사들이 상호주의를 적용해 일본계 선사들의 참여가 배제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6월 국토해양부와 지식경제부는 발전 5개사에 공문을 보내 실질적인 국내선사에게만 자격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대량화물을 가진 공기업이나 대기업들이 관련산업과의 공생발전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며 “중국의 국수국조(자국 조선소에서 건조한 선박으로 자국 화물 수송) 정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발전사 경영실적 평가제도도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발전사에 대한 경영실적 평가항목 중 유연탄 도입 단가에 대한 배점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총 100점 중 9점이 ‘유연탄 도입 단가’다. 그 결과 발전사는 일본계 선사가 전략적으로 낮은 가격을 제시할 경우 경영실적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계약 체결에 나선다는 지적이다.
발전자회사들은 이달부터 다음달까지 15만t급 유연탄 장기수송 선박 7척을 공동 발주한다. 남부발전 2척, 중부발전 2척, 서부발전 1척, 남동발전 1척, 동서발전 1척 등이다. 국내 해운업계는 국적선사와 국내조선소간 컨소시엄으로 입찰 자격을 제한해 일본계 선사들의 수송 참여를 배제시켜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2자 해운물류기업의 부상도 시장의 화두가 되고 있다. 2000년 이후 대량화주들의 활발한 2자물류 진출로 기존 전문 해운물류기업들이 설자리를 잃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업물류비는 2001년 89조원에서 2009년 152조원으로 연평균 6.9% 증가했지만 3자물류 비중은 2005년 42.9%에서 2009년 39.6%로 감소 추세다.
대량화주들이 운영하고 있는 해운물류기업은 해마다 늘고 있다. 대부분의 화주기업들이 2자물류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철강기업들 중에 물류자회사가 없는 곳이 없다는 게 빈말이 아니다. 현재 대형 화주가 소유하고 있는 해운사로는 대림코퍼레이션(대림그룹) 대우로지스틱스(포스코) 디케이에스앤드(동국제강) 쌍용해운(쌍용양회) 현대글로비스(현대차그룹) 등이 활동하고 있다. 물류기업의 경우 범한판토스(LG그룹) 삼성전자로지텍(삼성그룹) CJ GLS(CJ그룹) 롯데로지스틱스(롯데그룹) 세아로지스(세아제강) 등 다양하다. 최근엔 삼성그룹이 삼성SDS를 현대글로비스와 같은 종합물류기업으로 키운다는 청사진을 내놔 해운물류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2자물류업체의 경우 모기업 등의 일감 몰아주기로 급성장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현대글로비스의 경우 7년간 성장률이 1675%에 이른다. 매출액 규모에서 국내 1위 선사인 한진해운을 위협할 만큼 무서운 속도로 매년 해운시장의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선주협회 관계자는 “모기업 물량의 수송비율을 제한하는 법령을 제정하는 등 2자물류기업에 대한 일감몰아주기 행태를 규제하는 장치를 하루 속히 마련하고 제3자 물류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면, 세액 공제제도를 도입해 3자물류 시장을 활성화 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