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해운강국으로 부상하기까지는 모진 산고(産苦)가 있었다. 이같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는 한국해운의 선진화를 위해 일평생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원로 해운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이호영 대표는 선진화된 유럽 해운물류체계와 한국 해운물류를 발전적으로 접목하는데 크게 기여해 왔다. 이에 본지는 이호영 대표를 만나 우리나라 해운물류 발전사, 당면과제 그리고 유럽 해운물류 현황에 대해 들어보았다.
Q 해운물류업계 원로로서 글로벌 장기불황으로 해운위기를 맞고 있는 국내 해운기업들에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A 근본적으로 해운산업은 경기산업입니다. 흥진비래, 고진감래라는 말처럼 호경기와 불경기가 교차로 나타나는 속성을 가지고 있지요.
그것은 구체적으로 화물량, 선복량, 운임률의 상호비율이 깨졌다가 정상적인 비율로 되돌아가는 현상이 되풀이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아무리 심한 불황도 언젠가는 호황으로 반전됩니다. 해운인 모두 이를 알고 불황을 극복키 위해 나름대로의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문제는 불황이 오래 지속될 때 자금악화로 인해 거래은행이 경영에 관여하게 되면 이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해운업체를 빚쟁이 입장에서 돈 될 것은 모두 팔아버리는 정리를 해버려 호황이 와도 만회할 수 없는 방향으로 정리해 버린다는 점이 해운업체가 겪는 어려운 점입니다. 불황은 반드시 호황으로 반전된다는 신념하에 해운업체나 주거래은행 관계당국이 불황을 견뎌낼 수 있도록 인내해야 합니다.
Q 국립 부산수산대 출신이신 회장님께서 어떻게 해운업계와 인연을 맺게 되셨는지 궁금한데요.
A 저는 원래 십수년 간 무역 분야에서 일했는데 1978년 윤석민 회장이 대한해운공사를 인수하게 돼 회장보좌역으로 대한해운공사에 가게 된 것이 해운과 인연을 갖게 된 계기입니다.
Q 회징님이 취임 후 여러 가지 혁신적인 일로 화젯거리가 되었었는데 무역업계에 게시던 분이 어떻게 그런 일들을 하셨나요?
A 저는 대한해운공사에서(후일 대한선주, 지금의 한진해운) 정기선 컨테이너 사업을 총괄하면서 상황실 담당 중역을 겸직했습니다. 이 상황실이 조직을 초월해서 회사의 중요한 일을 해결하는 특수부서였는데 이 상황실을 통해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한 바 있습니다. 해운이 오랜 전통사업이고 여러 조직이 부분 부분의 일을 나누어 처리하다 보니까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효율적으로 통제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는데 저 같은 초심자의 눈에는 이게 모두 보여 여러 가지 개선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소석률 100% 도전
Q 보다 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신다면?
A 1970-80년대 정기선 컨테이너 사업에서 평균소석률이 80-90% 정도였습니다. 이것도 훌륭한 것이라는 자긍심들을 가지고 있더군요. 저는 소석률 100%를 내걸었습니다. 전문가들이 정기선해운에서 소석률 100%란 이론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실질적으로 그것도 지속적으로 100%를 달성하는 것은 불가하다며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당시 가장 양이 많았지만 운임이 낮아 잘 싣지 않았던 타이어 담당자를 불러 “타이어를 우리가 원할 때만 싣는 조건으로 짐을 실으려면 얼마의 운임이면 가능하겠냐”고 물으니 “얼마면 될 수 있겠다”고 하며 그 운임으로 약속을 하고 고운임 화물로 채워지지 않는 스페이스만 타이어로 채웠고 라스트포트마다 이런 전략화물을 지정해 주었더니 소석률 100%가 지속되게 됐습니다. 그 당시 국내 은행금리는 23%정도에 실제금융은 지급보증서 떼고 선이자 떼면 실질금리는 26% 정도였습니다. 당시 해외금리는 프라임레이트가 7-9% 정도 됐으므로 그 차이가 매우 컸습니다. 당시 앞서가는 무역회사들은 해외현지법인을 설립하고 해외현지금융을 활용하고 있었는데 해운업계에서는 국내금융에만 매달려 있더군요. 저희는 우선 중요 해외지사를 현지법인화해 금융을 받아들일 그릇으로 만들고 본사에서 보내주는 지급보증서 혹은 해외에서 받을 운임을 담보로 하여 현지금융을 일으켜서 해외점소의 발생비용에 충당케 했습니다. 이 금리차가 막대해 경영에 큰 도움이 됐지요.
국적선사 최초의 해외직영터미널 운영
그 시절, 국적선사는 국내외 어느 곳도 직영터미널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당시 해운항만청의 방침은 컨선사가 터미널을 운영하는 것은 불요불급사업으로 간주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LA에서 APL이 사용하던 터미널이 비워지게 돼 선사 간 경쟁이 벌어지게 되었는데 마지막으로 에버그린과 대한선주가 최후까지 남게 됐습니다. LA 항만청의 부청장이 방한 시 팽팽한 상담이 진행 중이었는데 점심시간에 그의 취미가 라켓볼 경력이 10년도 넘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저녁에 그를 제가 회원으로 있는 코오롱스포렉스에 초빙하여 4게임을 가졌는데 스코어는 비겼지만 저는 방어만 하였을 뿐 공격은 별로 하지 않았던 반면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공격적인 게임을 펼쳤습니다. 그가 게임 후 벌거벗고 함께 사우나를 할 때 나에게 “게임은 당신이 이겼소. 당신이 공격을 했었더라면 스코어는 달라졌을 것이요”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동양의 에티켓은 연장자에게 심한 공격은 삼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당신은 시차적응 중이잖소?” 했더니 한국 사람들이 마음에 든다며 자기들의 마지노선을 귀띔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했던 수준보다 조금 높은 것이었기 때문에 다음 날의 회의에서 쉽게 합의에 도달해 대한선주가 LA에 직영터미널을 확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위의 일들은 당시로서는 한국 최초의 일들이었습니다.
Q 함부르크항만청과 폴주크 한국대표직을 오랜 기간 맡고 계십니다. 그만큼 회장님에 대한 신뢰가 두터운 것이겠지요. 선진물류를 현장에서 많이 경험하시면서 느끼신 점이 많으실 것입니다. 선진물류국가와 우리나라 물류실태를 비교하신다면...
이음새가 없는 매끄러운 물류
A 유럽의 물류는 한마디로 Seamless Logistics(이음새가 없는 매끄러운 물류)라는 키워드로 대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Paperless Port 와 overnight Jump 라는 방법에 의해 구현되는데 Paperless Port란 항만에서 서류가 없어지고 그 대신에 실시간 전산시스템이 그 기능을 대신해 관계자들 사이에 자료를 공유하고 서류절차로 인한 시간소비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Overnight Jump란 해상터미널에 도착한 화물은 당일 저녁에 터미널의 on dock rail terminal에서 열차가 발차(혹은 트럭편)하여 다음날 새벽이면 내륙기지에서 화물을 찾게 된다는 야반수송제도입니다.
유럽에서의 추세를 보면 Ecological logistics라는 말은 EU가 환경기준을 강화하여 환경 부담금을 높이고 있고, 고유가영항으로 에너지코스트가 높아졌는데 이에 대한 대책으로 철도와 선박에 의한 수송을 보다 육성하고 도로에 의한 트럭수송을 줄여나간다는 내용으로 성에너지물류, 저공해물류로 물류경쟁력을 키워 나간다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배경으로서는 같은 무게가 나가는 화물을 같은 양의 연료로 수송할 경우 트럭은 100Km, 철도는 300Km 선박은 370Km 를 수송할 수 있기 때문에 철도나 선박이 트럭보다 훨씬 저공해 수송이고 저비용수송이기 때문입니다. 또 탄산가스 배출에 있어서도 철도수송이 도로수송의 20% 밖에 탄산가스를 배출하지 않기 때문에 물류분야의 탄산가스 저감방법은 도로수송을 줄인다는 방법이 주된 내용으로 발전되고 있습니다. 함부르크항은 트럭 40% 철도 30%, 피더선 30% 로서 운송모드별 수송분담율이 비슷한 반면 우리나라는 트럭 90% 철도 10% 정도이고 국내 피더선은 없어졌으니 개선해야 할 점이 많습니다.
Q 국제물류연구회 회장직을 맡으시면서 물류인들의 단합과 연구모임을 주도하셨습니다. 물류라는 분야가 워낙 광범위하다보니 모임의 명칭도 다양합니다. 국제물류연구회 회원들은 국내 해운물류업계에서 내로라하는 물류인들로 구성돼 있어서 영향력도 컸었는데 회장님이 이끄시는 동안 주력했던 일들은 어떤 것들이었나요?
A 국제물류연구회 회원의 구성이 수도권, 중부권, 경상권, 전라권의 각 대학교 교수들과 해양수산개발원, 교통연구원, 국토연구원, 철도기술연구원 등 우리나라 굴지의 연구기관원들과 경제단체, 물류 유관기관, 기업체의 사람들로 구성돼 있으며 우리나라 물류관련 학회 회장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매월 1회라는 발표회의 빈도는 매우 드문 것으로서 보통의 학회가 춘추 2회 혹은 4회 정도 발표회를 갖는 것과는 양적 면에서 괄목할만한 것이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사단법인으로 등록한 이후 10여년이 지났습니다만 사단법인이기 때문에 사회적인 의무감도 있어서 1년에 2~3회는 공개적으로 국제세미나를 개최해 물류현안문제에 관하여 학계, 업계와 지식을 공유해 왔습니다. 국제물류연구회의 토론내용이 깊이가 있다는 정평을 얻게 되자 물류관련관청이나 지자체, 연구소, 기업체 등에서 물류전략계획을 세우면 그것을 확정시키기 전에 국제물류연구회에서 예비발표와 토론을 통해 그 내용을 가다듬는 사례가 속출, 물류관련부서의 장관이나 지자체의 장, 항만공사, 동북아물류위원회 의장들도 직접 발표한 바 있으며 정책의 입안단계에서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하는 많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Q 회장님의 칼럼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항상 공부하는 자세인 것 같습니다. 현 해운물류업계 종사자들이 공감하는 글을 쓰실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현 실정을 꿰뚫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회장님의 견해는?
A 저는 공교롭게도 무역 25년, 해운 10년, 항만 24년, 국제철도 15년의 생애를 살면서 물류의 각 분야와 물류의 원인행위인 무역을 아는 입장에서 이들의 상관관계와 종합 판단하는 눈을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똑같은 물류현상인데 이것을 무역 분야에서 설명하는 용어와, 해운에서 설명하는 것, 물류용어로 설명하는 것이 용어가 각각 달라 혼란스러운 점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더욱이 대부분 물류나 해운에 관한 글들이 전문용어, 외국약어 등으로 쉬운 것을 어렵게 설명하는 경향이 있어서 내가 글을 쓴다면 일반용어로 쉽게 써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쓰니까 독자들의 호응을 얻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쉽고 간단하게 골자만 추려서 해운항만 육상운송 등 물류전반에 관한 주제로 글을 쓸 것이며 이에 더하여 우리가 생활 속에서 겪게 되는 신변잡사에 관한 글도 씀으로써 독자들과 인간적인 공감대도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정부, 해외 진출 적극 지원해야
Q 해운계 원로로서 현 정부 해운항만정책의 미흡한 점을 지적해 주시고 향후 우리나라 해운항만정책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십시오.
A 요즘 들어 물류기업인증제가 시행된 이후 글로벌 물류업체로서 해외진출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글로벌 물류업체의 탄생은 해당업체들만의 과제가 아니고 국민과 정부 모두의 열망이니 만큼, 정부도 이를 적극 도와야 합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구호처럼만 강조될 뿐, 실질적인 지원책은 별로 마련된 것이 없습니다. 종합물류기업으로 요건을 갖춰 인증기업이 되면, 여러 가지 정책적 지원을 하겠다는 약속이 있었는데 결과는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시급한 것은 우리나라의 제조업이 진출 시 처음부터 물류회사도 동반 진출하여 상대국 정부로부터 이상적인 물류 조건을 보장받아야 하며, 이를 위해 우리 정부에서도 정부 차원의 협상력으로 적극 도와야 합니다.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우리의 글로벌물류업체들도 내륙물류기지에 터미널이나 보관시설을 가지고 있어야 이를 기반으로 3자물류사업을 펼칠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시설자금의 투자가 긴요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의 물류기업들이 해외에 시설투자를 할 수 있는 장기적, 안정적인 자금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기업의 수출을 촉진하는 방법으로 종합상사제를 마련하고, 혜택 성 금융지원으로 성과를 앞당겼듯이, 글로벌종합물류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해외투자를 위한 장기안정적인 기금이나 펀드 등으로 지원하는 제도가 뒷받침 돼야 할 것입니다.
Q 해운물류 관계당국이나 해운물류업계에 바라는 바는...
A 일반적으로 DHL이나 퀴네나겔(Kuhne+Nagel) 등, 우리가 흔히 지칭하는 글로벌 종합물류업체란 해상, 항공, 육상 등 전 구간을 물류사업영역으로 삼아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업체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글로벌 물류기업들도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은 운명적인 것으로서, 아래의 미흡한 두 부분을 직접 사업대상으로 삼아야 비로소 글로벌 3자물류업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 사업은 대자본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 고정관념이지만, 우리가 발상만 바꾸면 현재 재벌기업들의 물량만 가지고도 이 분야를 대상으로 물류사업을 직접 펼칠 수 있습니다. 그 의미는 해운업자나 철도회사를 상대로 경쟁한다는 개념이 아니고 이들과 협력하며 상생한다는 개념이니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입니다.
NVOCC란 자기 선박을 가지고 있지 않으나 다른 해운업자의 선대에서 일정량의 스페이스(Space)를 사서 이 선복을 이용해 자기 책임 하에 컨테이너 운송 사업을 영위하는 포워더를 말합니다. 이것은 선대의 선복을 미리 싸게 사는 것이므로 안정된 화물량을 가지고 있는 포워더라면 선복의 일부분은 자기물량으로 채우고, 나머지의 시가보다 저렴한 스페이스를 이용해 3자물류서비스를 하는 것인데, 이렇게 함으로써 저렴한 가격으로 자기가 원할 때 안정된 스페이스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 사업은 안정된 물량을 가지고 있으면 큰 자본이나 큰 조직이 없이도 가능함으로 재벌계열의 물류회사 같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사업이며, 해운업자의 입장으로 볼 때에도 자사의 소석률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므로 언제나 환영 받는 일이기도 합니다.
유럽의 한 항구에서 특정한 내륙지점으로 일정한 물량이 있을 경우 블록트레인 오퍼레이터(Block Train operator)로 부터 열차를 통째로 사서 일정부분은 자기 물량으로 채우고 나머지 스페이스는 타인물량을 수송해 주는 것을 영업으로 하는 형태의 사업을 Dedicated Block Train operation 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철도에서 NVOCC의 개념과 같습니다. 즉 열차의 운행은 블록트레인(Block Train) 업자에게 의존하고, 그로부터 공급받는 스페이스를 이용한 운송사업 영업은 자기가 담당하는 상생, 협력의 방법입니다.
이 때 빌리는 열차의 스페이스는 매우 저렴한 것이기 때문에 이 스페이스를 이용해 3자물류 서비스를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유럽의 공장에 정기적으로 원부자재를 조달하는 재벌계열의 글로벌 3자물류업체라면 이 물량을 기본으로 dedicated Block train 사업을 쉽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유의할 점은 해상운송을 여러 선사를 사용하게 되면 도착항구나 터미널이 서로 달라지므로 열차출발장소나 시간을 맞출 수 없기 때문에, 물량이 많다 하더라도 블록트레인을 만재해서 운영하기는 어렵게 됩니다.
그러므로 블록트레인 사업은 정시에 정해진 물량을 만재해야 하므로, 해상운송은 한 선사를 지정해 NVOCC 사업으로 화물을 보낸다면 두 사업이 서로 보완적으로 상승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 정창훈 편집국장 chjeong@ks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