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정기선 해운경기를 떠올리면 2008년 9월 이후 몇 달 동안 겪었던 해운공황까지는 아니지만 해운산업이 매우 큰 어려움에 처할 것 같은 우려가 든다. 금년 하반기 이후 우리는 해운 각 부문에서 들려오는 수도 없이 많은 힘든 상황을 접해 왔다. 심각한 공급과잉, 높은 벙커가격, 금융조달의 어려움, 신조선 건조로 인한 막대한 부채, 바닥까지 떨어져 실제적으로는 적자 운임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소식들이다.
이러한 최악의 여건에서 세계 컨테이너 해운업체들은 자구책을 마련하기 보다는 혼돈의 파멸적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규모의 경제, 범위의 경제, 그리고 자본의 논리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한발만 헛디디면 벼랑에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위험천만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다양성과 독창성으로 특징되는 후기산업사회를 사는 우리가 규모의 경제, 비용경쟁으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대를 역행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요즘 컨테이너 선사의 투자는 너무 한쪽 방향으로만 치닫고 있는 형상이다. 규모의 경제를 통한 비용우위 확보, 그리고 자본 투자우위를 통한 시장점유율 확보 경쟁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덴마크의 해운 및 석유그룹인 A.P. 묄러-머스크의 CEO는 향후 2년간 컨테이너 해운시장의 어려움이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머스크라인의 CEO인 닐 앤더슨도 “3분기에 예상보다 큰 폭의 이익감소에 이어 금년에는 적자를 볼 것 같다”고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닐 앤더슨은 “우리는 격렬한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 선점했다”며 규모의 경제에서 오는 비용절감, 지주사가 오일 비즈니스에서 실적을 내고 있다는 점 등이 강점이라고 했다. 또한 “중소형 선사들과 그들의 은행들은 이 컨테이너 해운 비즈니스에 남아 있어야 하는지에 의문을 갖는게 당연하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머스크 라인은 2006년에 세계 3위의 P&O 네드로이드사를 인수하면서 세계 정기선 해운업체들은 더욱 통합돼야 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와 같이 시장리더인 머스크사가 공격적인 경영으로 나오고 있어 아시아-유럽 간 컨테이너선 수송능력을 감축해야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머스크라인 은 물론 여타 취항 선사들까지 시장 점유율을 넘겨주지 않으려고 오히려 수송선대를 증강시키고 있다. 결국 운임을 바닥까지 추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알파라이너는 “지금까지 진행돼 온 아시아-유럽항로에서 시장점유율이 수위의 선사들이 펼친 운임전쟁은 시장점유율이 적은 선사들을 퇴출시키려는 목적이었다”고 하면서 “현재까지는 아시아-유럽항로에서 퇴출된 선사가 나타나지 않아 그 정책은 실패한 것이 아닌가”하고 진단하고 있다. 오히려 모두 적자를 감내해야 하는 고통스런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현재 아시아-유럽 간 현물시장 운임은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로 20피트 컨테이너(TEU)당 540달러이다. 이는 20피트 컨테이너당 평균 유가할증료(BAF)가 755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할증료를 제하면 TEU당 215달러의 적자운임을 보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운임은 전례가 없는 것으로 지난 9월 이후 적자운임이 지속되고 있다. 머스크 라인이 주도하는 경쟁자를 유럽항로에서 퇴출시키고자하는 ‘파멸적 운임전쟁’이 지속되고 있는데 아직 퇴출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선대 증강을 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내년까지 이와 같은 적자운임이 지속될 경우 몇몇 선사는 결국 손을 들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이는 곧 주요 선사들의 흡수합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2005년에 머스크가 P&O 네드로이드를 인수하고, 하파그로이드가 CP쉽스를 인수한 이래 다시 주요 선사간 흡수합병의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셈이다.
우선 막대한 적자를 내고 있는 일본선사들의 합병가능성이 검토되고 있다. 컨테이너선 분석기관인 알파라이너에 의하면 일본의 세 정기선사 MOL, NYK, K라인의 합병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일본의 세 정기선사는 금년 늘어나는 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대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에 와있기 때문이다.
MOL은 세계의 전체의 2.8% 선대를 보유하고 있고 NYK는 2.6%, 그리고 K라인은 세계전체의 2.2%를 차지해 만약 한 회사로 합병을 한다면 선대규모면에서 8.5%를 점유해 CMA-CGM에 이은 세계 4위의 선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대안은 아직 구체성이 결여된 하나의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그러나 실제로 우려되는 흡수합병 시나리오는 선박금융기관들의 채권회수 본격화 때문에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금년의 적자누적에 시장리더들의 공격적 전략 지속으로 내년에도 적자가 계속되고 여기에 해운회사의 신조선, 중고선 대출을 많이 취급했던 금융기관들이 채권회수를 본격화 할 경우 선사들은 현금흐름관리에 큰 문제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신조선가, 벌크선가, 유조선가의 총 선가 하락 규모는 5760억달러로 이는 그리스의 총 국가채무 규모 4650억달러를 크게 웃도는 규모이다. 이러한 선가하락으로 금융기관은 선주에게 대출상환을 강화하고 있어 선사들의 유동성을 크게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선박금융시장을 조사한 그리스 페트로핀 리서치 설문에 따르면 신조선 금융을 제외한 현재 세계 선박금융 규모는 약 5천억달러 규모이나 선박금융에서 유럽은행들의 비중은 81.7%나 되고, 이들 은행을 중심으로 2012년에도 선박금융이 타이트 해질 것으로 조사됐다. 세계 1위 선박금융 은행인 노르드방크도 선박금융에 대한 은행대출은 더 구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고, 국채 부실화로 은행 신용이 갱색될 것으로 보여 많은 독일 등 유럽은행들이 선박금융에서 손 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어 2012년 선박금융 더 어려워 질 수 있는 상황이다.
결국 정기선사간 초대형선 투입 및 시장점유율 확보 경쟁이 심화되면서 운임은 적자수준까지 떨어져 있고 여기에 외적요인으로 선박금융기관의 신용까지 경색되면서 추가 운전자금은커녕 기존 선박금융의 상환을 독촉할 상황에 놓인 것이고 이는 곧 선사들이 장부가 이하로 선박을 내다 팔아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유동성이 있는 몇 몇 마켓리더들이 이런 업체를 대상으로 M&A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우리 정기선사들은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하는가? 분명히 당분간은 세계최대 선대를 동원하고 초대형선을 앞세우고 여기에 ‘데일리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머스크 라인의 가격 및 서비스 경쟁력을 앞서지는 못할 것이다. 머스크사는 수송선박의 대형화 효율화로 원가경쟁력이 타 선사나 얼라이언스보다 월등히 유리하다. 타 선사들이 이러한 서비스를 하려면 수송능력을 크게 확충해야 하고 선박도 초대형화해야만 가능할 것이다. 여기에 머스크사는 타 선사가 따라오지 못할 차별화된 서비스를 추가요금도 받지 않고 제공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머스크 라인은 참으로 영리하게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위험성을 보완하기 위해 화주의 SCM에 부응할 수 있는 신뢰성을 줄 수 있는 서비스인 ‘데일리 서비스’를 함께 시작하고 있다. 머스크 라인은 10월24일부터 아시아-유럽 항로에서 새로운 서비스인 ‘데일리 머스크’를 시작했다. 이 서비스는 선적 항만 컨테이너 야드 반입에서 양하 항만 컨테이너 야드 인도까지 총 운송 기간을 보장하는 것으로 화주에게는 100%의 정시 인도를 가능하게 하는 서비스이다.
머스크가 이번과 같은 새로운 개념의 서비스를 내놓은 것은 타사가 추종할 수없는 서비스 체제를 확립하고 가격 경쟁과 함께 서비스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머스크는 데일리서비스로 동일한 비용구조에서도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사들이 적자가 나는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시장점유율을 뺏기지 않기 위해 빚을 내어 또 초대형선을 발주하고 있다. 그러나 이럴 때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초대형선 만으로 화주의 SCM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선사가 화물을 주도하는 세상이 아니라 화주와 화주를 대리한 포워더, 3PL사들이 화물을 주도하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선사들은 화주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다양한 운송수단과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화주들은 원가 절감뿐만 아니라 내륙운송 지정, 항만지정 등 화주의 다양한 서비스도 들어주길 바란다. 만약 규모의 경제로 시장을 대부분 점유한 선사가 화주의 다양한 서비스 요구에 유연하게 대처 할 수 없다면 그 피해는 화주에게 다시 돌아갈 것이다. 그래서 화주가 규모의 경제만을 내세우는 선사대신 서비스의 유연성이 있는 군소선사를 택할 경우 막대한 투자를 한 대형선사의 경우 투자실패에 따른 위험이 매우 클 수 밖에 없다.
당장은 아시아-유럽항로에서 시장점유율을 덩치 큰 회사에 넘길 우려는 있지만 그렇다고 부화뇌동해서 규모의 경제만을 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럴 때 일수록 미래를 만들어가고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해운산업의 미래는 화주가 주도하는 세상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효율적인 공급체인관리(SCM)이다. 내륙운송비를 절감할 수 있는 항만선택, 항만을 통과하는 총비용과 시간 절감, 화주업체 고유한 물류시스템 구축 솔루션 제공 등 화주의 SCM에 부응하기 위해 바다 쪽 보다는 육지 쪽을 바라보고 네트워크 가치혁신에 투자를 해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미 많은 비용절감 노력을 하고 있는 업체는 물론 더욱 힘든 생존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지만 정부와 금융당국도 2012년은 우리 정기선 해운업체들에게 2008년의 해운공황에 버금가는 큰 시련의 한해가 될 것임을 고려하여 가능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