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16 15:13:00.0

이경순칼럼/ 대한민국, 바다가 살길이다

수필가 白岩 이경순

수필가 白岩 이경순

●●●풍수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줄임말이다. ‘바람을 갈무리(藏風)하고 물을 얻는 것(得水)’이라고 풀이한다. 풍수의 고전이라고 하는 ‘금낭경’은 “풍수의 법술은 물을 얻는 것이 으뜸이고 바람을 갈무리하는 것은 그 다음”이라고 하여 물을 더 중시하였다. 왜 물을 얻는 것을 중시했을까?

조선 사대부들이 집터를 고를 때 지침서로 활용한 책이 ‘택리지’다. 이 책은 말한다. “물은 재록(財祿)을 맡은 것이므로 큰 물가에 부유한 집과 유명한 마을이 많다. 비록 산중이라도 시내와 계곡물이 모이는 곳이라야 여러 대를 이어 가며 오랫동안 살 수 있는 터가 된다.” 왜 물이 재물을 가져다주는 것일까? 물자를 옮기는 데 말이 수레보다 못하고, 수레는 배보다 못한데, 물자를 옮기는 방법이 없으면 재물이 생길 수 없기 때문이다.

바람을 갈무리하는 산과 재물의 통로가 되는 물을 두고 한반도와 일본이 서로 다른 풍수관(국토관)을 수용하였다.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사방의 산이 에워싸는 분지를 선호했다. 심지어 길조차 외적의 통로가 된다 하여 ‘길이 없으면 나라가 안전하다(無道則安全)’는 논리까지 폈던 조선이었다.

대지에 발을 딛고 사는 인간 개개인에게 산이 중요한가 물이 중요한가는 각자의 인생관에 따른 선택의 문제다. 공자도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고 하여 사람마다의 차이로 돌렸다. 그러나 한 국가의 흥망성쇠와 관련지을 때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부국강병의 나라여야 굶주리지 않고 생명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조선의 지배계층은 일본에 비하여 정확한 시대정신을 읽어내지 못했다.

일본이 한반도로부터 풍수를 수용했음은 그들의 역사서 ‘일본서기’(8세기)에 나타날 뿐만 아니라 작금의 일본 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일본은 언제부터인가 우리와 다른 풍수관을 발전시켜왔다. 그들은 물길을 중심으로 하는 풍수관에 만족하지 않고 도읍지를 아예 산간 분지(아스카· 나라·교토)에서 바닷가로 옮기려 했다. 무인정권(바쿠후·幕府)의 최고 실력자(쇼군·將軍)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근거지인 오사카도 그렇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근거지로 삼았던 에도(지금의 도쿄)도 바닷가다.

특히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의 근거지를 에도로 옮기면서 가장 먼저 상수도를 건설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다마가와(玉川) 상수도로서 길이가 40㎞가 넘는다. 이 덕분에 17세기 이후 에도는 세계적인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다. “풍수는 물을 얻는 것을 으뜸으로 한다”는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수용한 대표적 사례이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역사철학’에서 “대지의 아들로서 특정 민족의 유형과 성격은 그 지리적 위치의 자연유형에 따라 규정된다”고 했다. 자연유형은 3가지로 분류되는데, 고원(초원)·평야·해안지대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해안지대만이 무역을 발달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무한한 정복욕, 모험심, 용기, 지혜 등을 심어주어 궁극적으로 인간(시민)의 자유를 자각하게 해준다고 했다.

자본주의 발달이후 유럽에선 경쟁적으로 그 패권국이 바뀌었다.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등이 한때 패권을 차지했다. 그러나 패권을 꿈꾸었던 프랑스만은 끝내 제국을 이루지 못했다. 프랑스가 해양국가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 페리 제독이 이끄는 ‘구로후네’(黑船) 함대 네 척이 일본에 도착한 1853년은 일본 근대화 역사에 획을 긋던 해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이 오랜 쇄국의 빗장을 풀고 아시아의 선진국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본 소설가 시바 료타로의 장편 ‘료마가 간다’는 일본 근대화의 청년영웅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1835~1867)가 당시 80문의 포문을 열고 개항을 요구하던 흑선을 충격과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료마의 동료 사무라이들은 양이(洋夷)가 일본을 겁박하는 것에 분노했고, 그들의 위용 앞에 벌벌 떠는 에도막부(幕府)의 허약한 실상에 충격 받았다. 그러나 료마의 생각은 달랐다. “구로후네란 배를 타고 한번 움직여 보고 싶어.(…) 고작 네 척의 군함을 거느리고 와서 일본 전체를 떨게 만들다니.” 이후 료마는 일본 근대화에 투신했다. 조슈번(藩)과 사쓰마번의 반(反)막부 동맹을 중재했고, 무역회사를 설립해 서양 근대문물을 받아들이려다 막부 세력에게 암살됐다.

일본이 지난 세기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선진국으로 우뚝 선 것은 막부가 무너지는 정권교체의 격변기에 쇄국이 아닌 개항을 택한 데서 비롯됐다. 반면 당시 쇄국을 택했던 한국은 지난 세기 일본에 짓밟히거나 뒤를 따라가는 형세로 지냈다. 하지만 일본이 개항에 박수만 친 것은 아니었다. 조선과 마찬가지로 ‘왕을 받들어 서양 오랑캐를 내친다’는 존왕양이(尊王攘夷)론이 유행했다.

그로부터 150년이 지난 지금 한·일 양국은 각각 FTA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라는 두 번째 개항을 요구받고 있다. 과거 서구의 개항 요구에 반발했던 역사가 양국에서 ‘FTA 괴담’이니 ‘TPP 망국론’이니 하는 것으로 이름을 바꿔 재현되고 있다. 이 역사의 반복 앞에서 한국은 이번만큼은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의 선택 여부에 따라 일본에 뒤처졌던 지난 150년의 역사가 끝나고 새로운 150년이 열릴 수 있다. 한·미 FTA와 한·EU FTA를 초조한 눈으로 지켜보던 일본 정부가 다자간 무역협정인 TPP 참여를 선언한 배경에는 이러다가 21세기 신(新)개항에서 한국에 밀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료마는 지금의 시코쿠(四國) 지역에 있던 도사번(藩) 출신 하급무사다. 봉건영주들이 다스리던 당시 일본에서 하급무사는 암담한 미래에 절망하는 계층이었다는 점에서, 한국의 지금‘88만원세대’지만 영어와 인터넷으로 무장한 G(세계화)세대를 떠올리게 만든다. 료마는 자신의 미래를 가로막는 막부를 타파하는 것을 넘어 개항과 국가발전이라는 큰 비전으로 열정을 승화시켰다. 우리 젊은이들도 괴담 따위에 휩쓸리기보다 “한국의 FTA 시대를 내가 개척한다”는 도전정신을 가져야 한다.

한미 FTA를 반대하는 젊은이들과 정치인들은 대통령 후보 시절 “반미(反美) 좀 하면 어떠냐?”라고까지 말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왜 한·미 FTA를 추진했는가를 곱씹어 보아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 초반과 임기 후반의 지정학적 인식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보기 위해서는 그가 읽었다고 하는 ‘해방전후사의 인식(이하 해전사)’과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이하 코리아)’라는 책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해전사’는 노무현 정부 출범 당시 역사인식의 일단을 보여주는 책이고, ‘코리아’는 2006년 2월 노무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들에게 직접 선물하고,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에서 일독을 권했던 책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식이 ‘해전사’에서 ‘코리아’로 변화했던 흐름은 노무현 정부가 한·일 FTA 협상을 중단하고, 한·미 FTA로 방향을 틀었던 역사적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 ‘해전사’가 ‘일제 대(對) 해방’의 양자구도로 역사를 보는 경향이 강했다면, ‘코리아’는 ‘세계 대 코리아’라는 다자구도로 역사를 보려 했다는 점에서 달랐다.

정치인 노무현을 정치적 정상까지 밀어 올렸던 것은 ‘해전사’적인 분노였지만, 그가 정상에서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코리아'가 묘사하고 있듯이 ‘네 마리 말에 의해 사방으로 찢기는 거열(車裂)형’에 처해졌던 코리아의 역사적 경험이었다. 동북아시대를 표방하면서 등장했던 노무현 정부가 한·일 FTA를 중단하고, 한·미 FTA로 갔던 것은 동북아에 발을 디디되 과거의 대동아공영권이나 중화질서에 함몰되지 않겠다는 지정학적 결단이었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의 정치적 유산을 계승하겠다면서 한·미 FTA가 ‘제2의 을사늑약’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모순이다. 역사적 유례를 찾자면 을사늑약이 아니라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끄집어내는 것이 낫다. 당시에도 이만손이라는 유생이 ‘영남만인소’를 올려서 서구열강과 통교하는 것을 반대했다.

조미수호통상조약 역시 불평등조약이었음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또한 조선에 대한 국제적 주권 인정을 통해 1897년 대한제국 수립으로 이어지는 단초를 제공해주었던 문명사적 의미를 직시해야 한다. 균형 잡힌 역사인식이 절대 필요한 시기다. 대륙문명이 동양(중국)이고 평야며 장기며 폐쇄라면, 해양문명은 서양(미국)이며 바다요 바둑이요 개방이다. ‘바다로 나아가야 하는 것은’지금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물류와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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