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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12일 오후 9시 20분. 오색 불꽃이 여수 밤바다 하늘을 ‘쿵쿵쿵’ 굉음과 함께 화려하게 수놓았다. 관람객들이 일제히 “와”하는 탄성을 올렸다. 지난 2007년 11월 대회 확정 이후 4년 6개월을 준비해 올해 5월12일 개막한 세계인의 축제 ‘여수엑스포’가 93일간의 대장정을 마치는 순간이었다.
엑스포 주요 문화공연 출연진과 관람객들이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했다. 매일 밤 무대에 올라 마지막을 장식했던 멀티미디어 쇼(빅오쇼)도 이날 관람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오후 7시30분 박람회장 엑스포 홀에서 시작한 폐막식은 여수엑스포 성공 개최를 축하하는 축제의 장이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비롯해 국제해사기구(IMO) 코지 세키미츠 사무총장, 김황식 총리와 강동석 조직위원장, 박준영 전남지사, 김충석 여수시장 등이 참석했다.
김 총리는 “역대 어느 박람회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알차고 성공적인 박람회였다”고 평가했다. 또 강 위원장은 “남해안의 작은 도시 여수는 이제 세계 속의 여수가 됐다”며 “앞으로 남해안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이날 오후 3시 열린 여수선언 포럼에서는 해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여수선언’이 선포됐다.
반 총장은 “여수엑스포는 해양이 직면한 환경 문제에 관심을 높이고, 해양을 현명하게 이용·보존하는 국제적인 관심을 불러 모은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여수엑스포는 누적 관람객이 820만명을 돌파했다. 하루 최다 관람객은 7월30일에 27만5027명, 최다 방문 전시시설 아쿠아리움 240만명(하루 평균 2만9400명)의 기록도 세웠다. 그리고 기후변화·해양자원 개발·해양 보존 등의 주제를 대중에게 쉽게 설명한 점도 합격점을 받았다. 관람객 800만명은 폐막일 오전 돌파됐다. 여수 인구(29만명)의 두 배가 넘는 70만명의 스페인 사라고사 엑스포(2008년)도 관람객이 550만 명이었다.
문제점도 있었다. 여수엑스포는 사전예약제를 폐지했다가 복원하는 우여곡절을 겪어 관람객에게 혼란을 줬고, 관람객 유치를 위해 3000원·5000원 등의 할인표에다 공짜표까지 발행해 형평성 논란을 불렀다. 폐막일로부터 17일 전에 개최된 런던올림픽의 여파도 있었겠지만 외국인 관람객도 40만명 목표치 보다 15만명이 부족했다.
공연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초점이 흐려져 본격 해양문제가 부각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여수엑스포 조직위원회는 기간 중 800만명의 관람객과 12조2000억원의 생산유발 효과 및 5조7000억원의 부가가치 효과를 기대했다.
그러나 경제적 효과 못지않게 여수엑스포가 남겨야 할 중요한 유산은 우리나라가 해양강국으로 가는 데 필수적인 국민 해양사상을 고취하는 것이었다. 해양강국으로의 도약은 우리가 지향하는 선진강국이 되기 위한 선결조건이다. 2020년 무역 2조 달러를 목표로 하는 한국의 해상교통로 보호와 해양자원 개발은 국가 사활의 문제다. 중국이 서해의 내해화를 시도하고 이어도를 자기들의 관할해역이라 주장하고 나섰다.
일본은 독도영유권에 대한 야욕을 노골화하고 있다. 주변국들의 해양잠재위협의 현실화로 한국의 해양력 강화는 더욱 절실하다. 해양강국이 되려면 먼저 해양국가가 되어야 한다. 해양 국가는 국민과 국가의 정책이 해양을 통해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추구하는 나라다. 해양국가 국민의 진취적 생활양식이 곧 해양사상이다.
이는 해양인의 도전정신, 과학성, 단결성 그리고 국제성을 특징으로 한다. 반도국가인 우리나라는 해양국가의 특성이 많다. 그러나 조선시대 유교사상과 농경문화의 영향으로 바다를 경원시하는 경향은 해양국가로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다행히 여수엑스포는 해양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새롭게 하여 우리나라를 해양국가로 변화시킬 절호의 기회였다. 바다를 주제로 한 여수엑스포는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바다의 미래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 기반시설에만 2조1000억원의 예산이 투자되었다.
국가 경제의 무역의존도가 96.9%에 이르고 무역 상품의 99.7%가 해양을 통해 수송되는 우리나라에 바다가 국가 발전과 안보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관람객들이 피부로 느끼게 했어야 한다. 특히 청소년들이 해양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바다로 세계로 뻗어가는 진취적 기상을 함양하는 기회가 됐어야 한다.
1993년 대전엑스포가 한국의 선진국 진입을 세계에 알리는 신호탄이었다면 2012년 여수엑스포는 우리나라가 세계 5대 해양강국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여수엑스포는 행사기간이 끝난 후에도 해양안보관을 추가하여 국민 해양교육의 새로운 산실 역할을 지속하게 해야만 한다.
이번 여수엑스포는 해양(海洋)을 주제로 한 전문엑스포였다. 주제가 제대로 구현되었는가는 중요한 문제다. 해양을 내세우기는 하였으나 높은 점수는 줄 수 없다는 생각이다. 해양계의 총의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였고, 해양계는 이번 엑스포에서 곁가지로 밀려났다. 유치 당시의 주역인 해양수산부가 현 정권 들어와 해체돼 동력이 분산된 결과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여수엑스포가 남긴 성과는 없는 것일까.
첫째, 여수엑스포는 21세기 초반에 열린 세계 최초의 해양엑스포였다. 지구온난화, 수온상승, 거북이·산호·맹그로브 등 생물종의 다양성, 남·북극의 급격한 변화, 심해저 문제, 연안개발과 지속가능성, 섬나라의 공통과제 등 지구(地球) 아닌 수구(水球)의 총체적 문제들이 모두 노정되었다.
이번 엑스포에 제출된 세계 해양의 복잡다단한 문제들에 대하여 분석과 공유가 필요한 대목이다. 어린이를 포함한 시민 대중이 이 같은 문제들을 접하였음은 매우 소중한 경험이며,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계몽적 교육 효과를 얻어냈다. 집단적 해양인식 공유와 해양의식 제고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였다.
둘째, 일반 시민이 일시에 엄청난 양의 바다를 접하였으며, 그러한 경험은 이후 해양의 미래를 구상하는 데 결정적 토대로 작동할 수 있다. 문제는 엑스포에서 부딪힌 과제들을 사후 활용할 수 있도록 조직화하여 해양적 미래를 어떻게 설정하는가 하는 데 있다. 육지 중심 사고에 족쇄가 채워져 있는 한국인의 보편적 전통에서 바다 중심 사고로 전환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한다. 내친김에 달려간다고, 고양된 해양에 대한 인식을 범사회적으로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셋째, 도시 재생 등의 기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였어도 KTX를 비롯한 국가 기반 시설들이 여수를 비롯한 인근에 마련되었다. 남해안 관광벨트와 지속가능한 성장에 대한 합의가 실천되어야 한다.
또한 거대 시설물들도 남았다. 사후 활용은 어쩌면 여수엑스포 성공의 관건이며, 이 시점에서 여수엑스포가 성공이냐 실패냐는 채점 매기기보다는 사후 활용을 통한 훗날 재평가에 임해야 할 것이다.
여수엑스포를 유치한 해양수산부가 분산 해체되는 과정에서 바다통합 정책이 약화되고, 엑스포 역시 막대한 영향을 받았다.
마침 해양통합 정책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으며, 기왕의 해양수산부에 기후를 포함한 새로운 부서의 창출이 사회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해양엑스포로서 여수엑스포의 재인식은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이며, 향후 여수엑스포의 정신을 살려나가는 것도 해양엑스포라는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대선 정국에서 나오는 수많은 미래 비전의 품목 안에 해양의 미래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현실을 목도한다. 해양의 문제는 기후 문제를 포함하여 글로벌 어젠다로 자리 잡았다. 남중국해를 비롯하여 동아시아의 해양을 둘러싼 파고가 높다.
그럼에도 우리의 대선 주자들은 동남권신공항 등 퇴영적인 국내 문제에만 골몰하면서 해양 같은 미래 비전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여수엑스포의 성과물을 가지고 미래 해양 비전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엄청난 돈과 시간을 들여서 엑스포 같은 거대행사를 치를 이유가 없다. 바다를 제대로 챙기는 나라가 미래도 쟁취할 것이다. 바다의 미래 비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