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아사히신문은 지난해 11월16일 실시된 중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480명의 의원 중 89%가 군대 보유와 전쟁 금지를 규정한 ‘평화헌법’ 개정에 찬성했고, 79%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찬성했다고 18일 보도했다. 이날 발표된 마이니치신문 조사에서도 당선자 91%가 개헌에 찬성했고, 78%는 ‘평화헌법’의 해석을 변경해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는 ‘해석 개헌’에 동의했다. 민주당이 압승을 거둔 2009년 총선 직후엔 당선자 중 59%가 개헌에 찬성했었다.
일본 헌법은 헌법개정 절차와 관련,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모두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어 개헌안을 발의한 후 국민투표를 거쳐 획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개헌 추진 세력은 이번 총선에서 자민당(294석), 일본유신회(54석), 우리모두의당(18석) 등 중의원에서 개헌 발의에 필요한 3분의2(320석)를 훨씬 넘는 366석을 확보했다.
그러나 참의원 242석 중 자민당 의석은 82석에 불과해 당장 개헌을 추진할 수 없다. 집권 자민당 아베 신조 총재는 17일 “참의원에서 3분의2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개헌 찬성 세력이 내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도 3분의 2 이상을 확보하면 일본의 개헌과 군사 강국의 문을 열게 된다.
일본 국민도 바뀌었다. 2010년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서 국민 67%가 헌법 개정에 반대했으나 지난달 도쿄신문 조사에선 35%만이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정치인과 일본 국민은 인접 국가만이 아니라 세계가 평화헌법을 포기하고 군사 강국을 향하는 일본의 다음 걸음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다케시마의 날’을 정부 행사로 격상하고 태평양전쟁 시절 성 노예 강제 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뒤집고,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공식화하는 것은 한국과의 ‘외교 전쟁’을 선포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일본은 한국의 새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기 사흘 전인 금년 2월 22일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치르는 것이 한국 국민에게 어떤 메시지로 다가설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일본이 성 노예 강제 동원을 부정하면 한국·중국·필리핀·베트남·태국·말레이시아 등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은 국가뿐 아니라 전 세계가 일본에 등을 돌릴 것이다. 일본이 군사 대국을 지향하면 당장 중국이 이를 상쇄하기 위해 군사력 대폭 증강을 서두를 것이고, 동북아 전체는 군비 경쟁 상황으로 내몰리게 될 것이다.
대표적 일본 옹호론자인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도 “일본이 반동적 국수주의, 대중영합주의를 추구하면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에도 나쁜 일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도 오늘의 일본을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말이다.
일본이 당면한 대내외 위기를 배타적 국수주의와 반동적 군사노선 강화를 통해 극복하려다 고립의 길로 들어설 것인가, 주변국들과 공존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에 따라 동북아의 명암이 갈릴 것이다. 세계가 아베 정권의 선택을 주목하고 있다.
역사를 통해 보면 일본은 냉전이 붕괴된 이후 집권 세력이 되면 우경화에 가속페달을 밟으면서 일본 우익은 음지에서 양지로 나와 세(勢)를 불리기 시작했다. 일본 경찰의 집계에 따르면 현재 종교집단에서 폭력단까지 우익단체가 1700개를 넘고, 우익 활동가도 ‘네트우익(ネット右翼)’이란 신조어가 말해주듯 사이버 공간에서 활동하는 익명의 네티즌까지 합하면 12만 명을 상회한다. 이렇게 일본 우익이 급팽창하는 원인을 냉전 붕괴에 따른 일본 국내외 정세 변동이나 경제 침체에 따른 사회적 위기의식의 확산 등 1990년대 이래의 우경화 추세에서 찾는 것은 현상만 보고 본질을 못 보는 것이다. 냉전이 붕괴된 1990년 이후 독일의 신(新)나치주의자들도 세를 불리고 있지만, 일본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미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원인과 결과를 뒤바꿔 역사를 곡해(曲解)하려는 어떤 시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2005년 영국과 미국의 드레스덴 공습 60주년을 맞아 이를 ‘폭탄에 의한 또 하나의 홀로코스트’라고 주장하는 신나치주의자의 망동(妄動)에 대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의 일침은 침략의 과거사에 분칠하는 일본 정객들의 망언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그렇다면 일본 우경화의 1차 책임은 뉘른베르크 전범재판과 달리, 도쿄 전범재판에서 반공의 이름으로 침략의 주범들에게 면죄부를 준 미국에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못 된다. 독일에서 신나치의 집회가 있던 날, 영미 공군의 융단폭격의 희생자였던 드레스덴 주민들이 밤하늘에 새긴 '이 도시는 나치에 몸서리를 친다'는 촛불 글씨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익단체나 정치가는 대중의 지지를 먹고 숨 쉬며 자라난다. 일본 국민에게 묻고 싶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를 흔드는 것이 자랑스러우냐?”고 말이다.
서독의 도덕적·정치적 재생(再生)을 가능하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1985년 5월 8일 서독 대통령 바이츠제커의 ‘독일 항복 40주년 기념’ 연설에 그 답(答)이 담겨 있다. “5월 8일은 해방의 날입니다. 물론 그때 적지 않은 사람이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원인을 전쟁 패배가 아니라 전쟁을 일으킨 나치스 독재의 시작에서 찾아야 합니다. 5월 8일은 회상(回想)의 날입니다. 회상은 과거를 왜곡하지 않고 정직하게 떠올리는 것입니다…. 젊은 세대가 정치를 맡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개인적으로야 40년 전 일에 대해 무슨 책임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 역시 독일 역사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젊은 세대가 그 책임을 망각하지 않도록 우리가 도와야 합니다.”
바다 건너에서 역사를 뒤집고 있는 아베 총리는 1954년생이다. 전(前)노다 총리가 1957년생, 마쓰바라 진 국가공안위원장이 1956년생이다. 일본에 바이츠제커 같은 나라의 어른들이 있어 그들에게 전전(戰前) 일본 역사를 바르게 가르쳤더라면 늦게 태어난 걸 방패삼아 저렇게 쉽게 과거를 부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드디어 ‘다케시마의 날’을 국가 행사로 공약한 아베 극우정권이 일본에 등장했다. 독도 깜짝 방문 쇼를 벌였던 극우 인사들도 모두 입각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돌이켜 보면, 평화선 선포일은 6·25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었던 1952년 1월 18일이었다. 공산군과의 싸움도 버거웠던 이때에 이승만 대통령은 왜 전선을 일본으로까지 확장했을까?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쟁의 기본전략 차원에서 보면 1952년 초의 ‘인접 해양에 관한 주권 선언’, 일명 평화선 선포는 무모한 정치 게임이란 말을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의 역사 기록은 우남(雩南)이승만의 편에 서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을 길들인 미국은 소련 공산 세력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일본을 반(反)소비에트 블록의 중심으로 등장시키려 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의해 1952년 초부터 일본은 바야흐로 패전국 지위를 벗어나 세계무대에 등장하게 되어 있었다. 6·25전쟁 이전부터 미국의 국가 기록에는 ‘대(對)한국 원조 달러의 이중적 움직임’이나 ‘한국 원조의 조정’이라는 단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 용어들은 미국의 동북아 전략의 속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한국 정부에 제공된 원조 달러가 일본으로부터 물자 구입에 사용되도록 매우 지능적으로 강제했다. 미국은 한국에 대한 원조로 일본의 경제까지 발전하게 하는 일석이조의 전략을 구사한 셈이다.
피는 공산권 방패막이의 한국이 흘리고 돈은 후방 경제의 일본이 벌게 하는 왜곡된 국제정치 현실에 이승만 대통령은 분노했다. 1952년부터 국제무대에 등장하는 일본과 미국 간에 어깃장을 놓아 ‘미국과의 직거래’를 이루고자 했던 것이 평화선 선포의 핵심 목표였던 것이다. 평화선 선포를 통해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달성함으로써 일본 중심의 동북아 전략에는 한계가 있음을 미국이 깨닫도록 한 것이다. 우남이 전격적으로 실행에 옮긴 1953년 6월 ‘반공포로 석방’은 미국과의 직거래 전략의 완성으로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놀라운 결과로 나타났다.
집단안보체제의 일원인 미국을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일본이 재무장해야 한다는 명분은 분명 코미디다. ‘호주머니에 송곳 감추기’의 달인 일본에, 60년 전 우남이 했던 것처럼 강력한 경고가 필요하다. 이제라도 매년 1월18일을 국가가 주관하는 ‘평화선 선포 기념일’행사를 제대로 거행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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