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명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Sleepless in Seattle)

오랫 동안 전 세계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1993)’은 아내를 잃고 새로운 짝을 찾는 어느 젊은 아빠와 그의 어린 아들, 그리고 끈질기게 자기 맘에 꼭 드는 남자를 고르는 어느 여성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엮어가는 과정을 그린, 로맨스를 줄거리로 하는 멜로 드라마다. 필자가 희미한 옛 기억을 더듬다 결국 한국영상자료원에가서 연거푸 두번을 다시 보고나서야 겨우 펜을 들었다.

아내와 사별, 외롭게 잠 못 이루며 불면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시애틀의 건축가, ‘샘 볼드윈(Sam Baldwin/톰 행크스:Tom Hanks)’을 위해 이를 보다 못한 아들 ‘조나 볼드윈(Jonah Baldwin/로스 맬링거:Ross Malinger)’이 라디오 심리 상담 코너에 아버지의 딱한 사연을 전파에 띄우면서 부터 영화의 본격적인 스토리가 시작된다. 금슬 좋은 부부로 아내 ‘매기 볼드윈(Maggie Baldwin/커레이 로웰:Carey Rowell)’을 저 세상으로  떠나 보낸 샘은 영문을 모르는 아들에게는 처음에는 여행을 갔다고 둘러대다가 끝내 엄마는 병마에 시달리다 아빠로선 살릴 방법이 없는 하늘의 뜻으로 타계했다고 실토한다. 

정신과 의사를 찾아 안정을 취하라, 여행을 다녀라, 외기러기 클럽 회원이 돼라는 등 주위의 위로와 조언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마음의 평정을 찾지 못하게 되자 우선 아내의 흔적을 지우고 환경을  바꿔 새로운 삶을 살아 가려고 시카고에서 머나먼 시애틀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 친히 지내온 친구 부부가 위로를 하며 곧 좋은 여자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격려를 하지만 샘에겐 전혀 귀에 닿지 않고 위로가 되지를 않는다.

머나먼 시애틀까지 이사는 했지만 새로이 살아보겠단 노력은 헛 돼 샘은 여전히 눈에 아른대는 아내의 모습을 지우지 못하고 마음을 옥죄는 괴로움으로 몸부림친다. 한편 이렇게 아빠의 잠 못 이루는 모습을 지켜보다 못한 어린 아들 조나는 궁리 끝에 묘책을 생각해 낸다. 

라디오 상담코너에 전화를 걸어 아빠가 지금의 심정과 새로 맞을 아내를 공개 구혼토록 호소하는 아이디어였다. 

엄마를 여읜 슬픔으로 가슴이 미어지는 자신을 제쳐두고 밤마다 힘들어 하며 뒤척이는 아빠를 위해 때마침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빠가 원하는 새로운 여자를 만나기를 희망한다는 사연으로 전화를 연결한 것이었다. “아빠 전화왔어요” 하며 전화기를 건네는 아들 조나를 보고 이렇게 늦은 심야에 무슨 전화냐며 수화기를 받아든 아빠 샘은 첨엔 거절을 하다가 현재 방송중이고 어린 아들 조나가 연결했다는 진행자 권유로 대화에 응한다. 

나직하고 진지한 음성의 ‘닥터, 마샤 필드스톤’이란 중년의 여성 라디오 카운셀러와  아내와의 사별로 외롭게 생활하는 한 남자의 슬픈 사연이 전파를 타게 된다.  마침 이상적인 남자 ‘월터(Walter/빌 풀먼:Bill Pullman)’와 결혼을 앞두고 있는 똑똑하고 명랑한 애교 만점의 미녀 신문기자 ‘애니 리드(Annie Reed/멕 라이언:Meg Ryan)’는 애인을 데리고 상견례차 부모를 만나러 와 전격적으로 부모들에게 약혼을 알리고 난 뒤 귀가길에 이 방송을 듣게 된다. 

온 가족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대문을 나오다가 잊은 물건을 가지러 월트를 동거중인 숙소로 먼저 보내고 혼자 차를 몰고 가는중 차창 밖에 내리는 빗소리와 함께 라디오서 흘러나오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성탄곡을 듣다가 우연히 조나란 꼬마가 심야프로에서 상심해 있는 아빠를 위해 새 엄마를 구해달라는 전화를 이어 받은 샘의 “아내가 죽은지 1년반이 됐지만 다른 여자는 아직 상상도 못하고 잠을 잊은 채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하소연을 듣고 애니는 갑자기 애틋한 호기심과 함께 관심을 갖게 된다.

특히 샘의 얘기 속에 아내와의 추억이 너무나 많아 지금도 생생하며 첫 만남에서 차에서 내리는 그녀의 손을 처음 잡았을 때의 전율과 황홀감은 매직, 바로 그것이었다는 대목에서 현재의 애인 월터와 비교하며 무언가 마음의 동요를 의식한다. 그녀는 문득 샘이 자신의 운명적인 짝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운명의 남자가 따로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자 월터에 대한 마음은 멀어져 간다. 방송 이후 샘의 우체통에는 전국의 여성들로 부터 수천통의 편지가 날아든다. 조나는 아빠에게 배달되는 그 많은 편지들을 체크하는 과정에서 겉봉만 보고 읽기도 전에 마구 쓰레기통에 버리면서도 유독 애니의 편지에 집착하는 모습이 흥미를 돋운다.
조나는 아빠를 좋하한다고 찾아온 빅토리아란 여인을 하이에나 같다며 미워하고 애니의 편지를 받고 오로지 그녀만을 새엄마 감으로 고집, 아빠를 조른다. 드디어 애니도 검색을 통해 샘의 거처를 알아내 볼티모어에서 시애틀까지 찾아가 그들 부자가 정답게 지내는 모습을 보며 마음에 들어한다. 그러나 샘이 오랜만에 친구의 아내와 반갑게 포옹하는 모습을 보고 이미 딴 여자가 생긴 것으로 오해하고 서로가 우연히 얼굴을 마주 쳐다보긴 하지만 발길을 돌리고 애니는 다시 월터에게로 다가가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오마쥬로 길게 삽입된, 샘 친구 부인이 옛 영화 ‘러브 어페어(An Affair to Remember)’를 회상하며 주인공 ‘캐리 그랜트(Kerry Grant)’ 와 ‘데보라 카(Deborah Kerr)’의 환상속에 매몰돼 흐느끼는 장면을 비롯, 작품속에 자주 인용된다. 아빠가 엉뚱한 여자와 가까워지는 장면을 목격한 조나가 방송국에 다시 전화를 걸어 못마땅한 데이트 장면을 생중계를 하듯 하자 친구로 부터 이를 전해 들은 애니도 월트와 취침중에 아랫 층으로 내려가 옷장 속에서 방송을 청취하다가 월터에게 발각되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그래서 아직도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 애니는 발렌타인 데이에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만나자는 편지를 다시 쓴다. 그리고 샘 얘기를 특집 취재한다는 핑계로 뉴욕으로 향한다.

애니의 이색적인 데이트 요청에 흥미를 가진 조나는 아빠에게 편지 내용대로 애니를 만나라고 애걸한다. 그러나 아빠가 이를 무시하자 여자친구 제시카의 도움으로 저금통을 털고 8세 나이를 혼자 탑승이 가능한 12세로 속여 뉴욕행 비행기를 탄다. 마침 다른 여자를 선보기로 한 날 조나가 없어진 데 놀란 샘도 허겁지겁 뉴욕으로 급히 떠난다. 아빠 대신 혼자 애니와의 약속장소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 전망대에 오른 조나는 애니로 생각되는 여자마다 혹시 애니 아줌마냐고 묻지만 그 시간 그녀는 애인 월터를 근처에서 만나 장고 끝에 받은 약혼반지를 돌려주며 이별의 시간을 갖고 있었다. 결혼은 운명이 아니고 성취하는 것이라며 두 사람은 쿨하게 헤어진다.

더블 요금으로 새치기 택시를 탄 샘이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으로 달려가 웅크리고 있는 조나를 발견, 이들 부자는 빌딩 전망대에서 어렵게 만나 부등켜 안고 상봉의 기쁨을 나눈다. 전망대 닫을 시간이 가까워 샘 부자가 내려올 때 쯤 월터와 헤어져 약속시간 보다 늦게 헐레벌떡 달려온 애니는 지금 바로 안 올라가면 평생 후회할 일이 생긴다며 경비원에게 통사정을 해서 불꺼진 정망대에 오르지만 서로는 엇갈린다. 

그러나 전망대에 장난감 하워드와 함께 가방을 두고 온 조나가 아빠와 이를 찾으러 다시 거슬러 올라가는 순간에 전망대에 도착한 애니는 아무도 없는 석양녘 어둑히 텅 빈 주위를 실의에 차 둘러보다 마침 조나가 잊고 간 가방을 발견한다. 가방을 들고 내려가는 애니와 이를 찾으러 다시 오르던 샘 부자는 극적으로 마주친다. 앞서 길가에서 한번 본 적이 있는 두 사람은 한동안 마주 서서 어렵게 다시 찾은 사랑을 확인이라도 하듯 서로 쳐다만 보다가 “갑시다!”에 이어 “갈까요?” 서로가 동시에 손을 내밀고 도어가 닫히며 하강하는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다. 휘황찬란하게 오색 불빛을 수놓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외벽의 화려한 야경이 라스트 신으로 점멸된다.

‘노라 에프론 (Nora Ephron)’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1962년 시애틀 박람회때 문을 연 파리의 에펠탑 같은 스페이스 니들(Space Needle) 보트 하우스가 외로운 독신남 샘의 이사간 집으로 등장한다. 주인공 역의 톰 행크스는 ‘스플래시(Splash/1984)’로 인기반열에 올라 ‘필라델피아(Philadelphia/1993)’와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1994)’로 연속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여러편의 흥행작에 출연, 헐리우드  박스오피스의 황금열쇠로 점프한 스타의 진면목을 과시했다. 

필자가 특별히 관심많은 매력녀, 멕 라이언 역시 화제작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When Harry Met Sally/1989)’를 비롯,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1998)’, ‘프렌치 키스(French Kiss/1995)’, ‘탑건(Top Gun/1986)’에서 명성을 얻었고 빌 풀먼은 ‘당신이 잠든 사이에(When You Were Sleeping/1995)’와 ‘브라더 네이처(Brother Nature/2016)’, ‘워킹 아웃(Walking Out/2017)’으로 국내 팬들에게도 낯 익다. 마지막으로 감미로운 테마곡 ‘사랑에 빠질 때(When I Fall in Love)’와 ‘내사랑의 색깔(The Colour of  My Love)’ 함께 다시 볼수록 지루하지 않게 더욱 재밌는 영화로 기억하고 싶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