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풍력발전기 설치 공사 현장에서 한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했다. 비가 그친 후 방수포에 고인 빗물을 제거하던 중 중심을 잃고 추락한 것이다. 추락 방지용 로프나 안전망, 미끄럼 방지 장비 등이 확인되지 않았고, 수사기관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수사한다고 한다.
지난해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형이 확정된 사업장 15곳의 명단을 공개했다. 주목할 점은 15건 모두 유죄판결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경영책임자들은 실형 1건, 집행유예 14건을 선고받았고, 법인에는 최대 1억원의 벌금이 부과됐다. 이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실효성 있는 법률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한국의 해운업은 전통적인 해운업을 넘어 항만인프라 산업, 해상풍력발전 산업, 해저케이블 산업 등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선박회사, 선박관리회사, 항만회사, 해상풍력사업자, EPC 원청, 그리고 다층적 하도급 구조까지, 복잡한 계약 관계와 구조로 얽혀 있다. 문제는 이처럼 계약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안전 책임의 소재가 불명확해진다는 점이다.
2022년 1월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형식적 계약 구조가 아니라 실질적 권한과 책임에 주목한다. 사업주나 법인이 실질적으로 지배, 운영, 관리하는 사업장에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종사자의 안전 및 보건을 확보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도급, 용역, 위탁을 주었더라도 시설, 장비, 장소 등을 실질적으로 지배, 운영, 관리하는 책임이 있다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는 수급인의 종사자에 대해서도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진다.
고용노동부가 공표한 자료를 보면, 중대재해처벌법의 주요 위반 조항은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의 충실한 업무 수행을 위한 조치”와 “유해·위험 요인의 확인·개선에 대한 점검”이었다. 여기서 핵심은 ‘실질’에 있다. 절차가 서류상으로만 마련됐는지, 아니면 실제로 작동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따진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중요해진다. 작업 전 위험 요소를 평가했는가? 안전교육은 충분히 이뤄졌는가? 작업 지시와 일정 통제는 누가 했는가? 안전보건관리책임자가 현장을 점검했는가? 안전장비 구매 예산은 누가 편성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이 책임의 소재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안전보건매뉴얼 정비해야
해운업의 특수한 상황을 살펴보자. 전통적인 해운업에서 선박소유자는 선박관리계약을 통해 선박의 운항 및 유지보수를 전문 선박관리회사에게 위탁하는 경우가 많고 선원 관리도 비슷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선원의 실질적 고용 관계가 중요하다. 즉, 선박소유자가 선박과 선원의 관리를 선박관리회사 또는 선원관리회사에게 위탁하더라도 선박소유자는 자신의 종사자인 선원에 대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기본적으로 부담해야 한다. 선박이 공해나 외국항만에 있을 때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며, 선원이 외국인이어도 동일하다.
해상공사 프로젝트는 더욱 복잡하다. 해상풍력 발전단지 건설이나 항만시설 공사에서 발주사 또는 EPC 원청의 책임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이러한 프로젝트는 일반적으로 발주사가 EPC 원청에게 공사를 도급하고, EPC 원청이 다시 전문 해상작업업체에 하도급을 주는 다층적 구조로 진행된다. 해상공사에서의 작업 공간은 주로 선박이지만, 해상공사의 본질은 건설공사다.
따라서 발주사는 EPC 원청과 도급계약을 체결해 공사 완성을 주문하고, EPC 원청이 직접 노무를 제공하는 공사 현장에 대해서는 실질적 지배, 운영, 관리를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므로 원칙적으로 발주사는 중대재해처벌법상의 책임을 부담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예외가 있다. 발주사가 공사의 시공을 주도해 총괄, 관리하는 경우라면 산업안전보건법상의 도급에 해당해 실질적으로 공사 현장을 지배, 운영, 관리를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경우 발주사도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해야 할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 관리에서 사업장의 고유한 특성과 규모를 고려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산업전반의 안전보건매뉴얼을 비치하거나 서류를 형식적으로 작성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해운업에서는 바다와 선박 등의 특수성을 반영한 위험성 평가와 분석이 별도로 필요하고, 그에 맞는 안전보건매뉴얼을 정비해야 한다.
한편, 일부 기업들은 대표이사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최고안전책임자(CSO)를 선임하는 방안을 고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인정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는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최고안전책임자가 경영책임자로 인정받으려면 회사의 안전보건 사항에 대한 완전한 전권이 부여되고 대표이사의 관여가 완전히 배제될 필요가 있다. 해운업은 육상보다 작업 환경이 열악하고 변수가 많으며 위험 통제가 어렵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해운업의 복잡한 계약구조 속에서 안전의 사각지대가 발생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각 당사자가 자신의 역할에 맞는 안전보건 의무와 책임을 성실히 이행하고 대비하는 것만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시대를 헤쳐 나가는 핵심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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