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23 16:04

더 세월(17)

저자 성용경 / 그림 하현
15. 그녀의 시신


사고가 일어난 지 일주일째 되는 날 정오 무렵 시신 5구가 나왔다.

여자 셋, 남자 둘.

첫 번째 시신은 여자였다.

여자는 피부가 너무 깨끗했다. 익사한 시신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산 사람 그대로의 피부였다.
“내 아들인가 싶어서 확인하러 갔었는데 여자 분이었어요.”

한 어머니가 말했다.
 
자기 아들은 아니었으나 시신이 너무 깨끗해 신기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유가족이 찾기 쉽도록 많은 신체 부위가 공개 되었다. 그러나 가족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메가폰 방송이 나왔다.

“101번 여성입니다. 키 165센티, 나이 30대 중반, 코가 높고요. 귀밑에 점이 있고요.”

팽목항 바다에 시선을 주고 있던 서정민은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이순애는 분명 귀밑에 점이 있었다. 남편도 아닌 그가 이 정도까지 알고 있다는 걸 고맙게 생각하면서 급히 다가갔다.
 
그녀였다. 아름다운 모습 때문에 입을 맞출 뻔했다. 사람이 이렇게 깨끗하게 죽을 수도 있구나. 독약이라도 가지고 있었더라면 로미오처럼 탁 털어 넣었을 것이다. 

서정민은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 번호를 눌렀다.

진도체육관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팔봉 회장은 서정민의 전화를 받았다.

“회장님, 순애 씨가 돌아왔습니다.”

“……으응! 물론 눈은 감았겠지. 그래도 고맙다.”

회장의 목소리가 너무 침착하여 서정민은 다른 사람으로 착각할 뻔했다. 딸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건가. 일주일이라는 기간은 기적을 만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팽목항으로 와서 딸의 시신을 직접 확인하자 이 회장은 굳은 표정을 지었다. 시신이 깨끗하다는 것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시신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그는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다. 슬픔을 삼키고 서정민을 바라보았다.

“지금 파리는 아침이겠지. 순정이한테 이제 알려야겠구나.”

이때를 차분히 기다렸다는 듯 그는 휴대폰의 단축번호를 눌렀다. 작은딸은 막 외출을 하려는 참이었다.

언니 이야기와 세월호 이야기를 듣자 그녀는 모든 걸 알았다는 듯 흐느끼기 시작했다. 전 지구가 다 알고 있는 비극에 자신의 가족이 포함된 사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루 이틀 더 걸리더라도 모든 걸 정리하고 귀국하라고 아버지는 딸에게 말했다. 

이 회장에게는 고민 하나가 더 남아 있다. 외손녀 홍소라에게 엄마의 죽음을 어떻게 알리나. 초등학교 5학년이면 생사를 구분하고 혼자된다는 게 뭘 뜻하는지 알만한 나이다. 내일 회사직원을 통해 손녀를 데려오도록 할 참이다.

시신이 돌아오고 있었다. 두 번째는 남자였다. 

어른인데 심하게 부패해 알아볼 수가 없었다. 같은 시간에 찾은 시신인데도 이렇게 차이가 나는가. 죽은 지 오래됐다는 뜻이다.

남학생이 세 번째로 인양됐다.

입에 거품이 나와 있었다. 어머니는 얼굴 형태를 다 알아봤다. 여드름이고 뭐고 피부가 그대로였다. 거품이 있다는 것은 죽은 지 얼마 안됐다는 거다.
35미터 깊이에서 건져 올린 시신들은 여러 형태로 가족들 앞에 나타났다.

구조대는 시신을 건물 바닥에 방치하거나 엘리베이터 바닥에 놓고 갔다. 그러면 구조대 관계자가 와서 대피소로 옮겼다.

목줄을 동여매고 농성을 벌이던 한 유가족이 기자 앞으로 다가갔다.

“시신을 제일 첨에 봐야하는 게 가족 아닌가요. 손상되거나 훼손이 될 수 있잖아요. 근데 대피소로 다 옮겨 놓더라구요.”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거까진 이해해요. 국과수에서 먼저 시신을 받아서 소지품 같은 거 확인을 해야 하니까요.”

목이 메었던지 목줄을 잡아당기고 그녀는 말을 계속했다.

“그럼 두 번째로 우리에게 보여줘야 하지 않나요. 우리한테 보여주지도 않고 지들이 차려놓은 영안실에다가 시신을 꽁꽁 싸매서 막 닦더라구요.”

그녀는 시신을 가족이 먼저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살아있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산 사람을 이송하다 죽게 만드는 건 아닌지 그는 의심하고 있었다.

“국과수 직원들이 1차, 2차 확인하고 가족들은 3차로 들어와서 얼굴을 봤어요.”

그녀는 한숨을 내뿜었다.

단원고 여학생의 아버지는 딸의 유품을 받았는데 핸드폰만 없었다. 해경이 메모리칩을 빼고 돌려주었다. 칩은 ‘수사상 분석이 필요하다’며 나중에 돌려주겠다고 했다. 이래저래 가족들의 불만은 쌓여 갔다.

마지막 시신 수습 후 83일째 더 이상 추가 실종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사고 반년이 지났는데도 10명의 실종자는 가족 품에 돌아오지 못했다. 그들은 차가운 바닷물에서 어떻게 지낼까. 계절이 바뀐 걸 알고 있을까.


<이 작품은 세월호 사고의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한 창작물이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기업 지명 등은 실제와 관련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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