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09 16:01

더 세월(28)

저자 성용경 / 그림 하현
26. 특별조사위원회


합동통신의 황 기자가 서정민의 소매를 잡은 곳은 서울역 3층 그릴이었다. 부산에 있는 수중탐사회사를 취재하기 위해 KTX를 기다리는 중이라면서 서정민을 잠시 만나자고 했다. 피해자이면서 해운전문가는 오직 서정민 한 사람뿐이라는 걸 아는 까닭에 기삿거리가 부족할 때는 그에게 매달리곤 한다. 거머리도 이런 거머리가 없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황 기자는 독특한 기사를 올려 몇 번 각광을 받은 적이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는 표정으로 메모지를 급히 꺼내고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사고 발생 10개월이 지났는데도 특별조사위원회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이유가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특별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허비한 탓이랄까… 조사위원의 수도 너무 많고요.”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제정된 특별법에 따라 유가족과 국회, 대한변협, 대법원이 추천한 위원 17명으로 구성된 특별조사위원회는 2015년 3월 9일 제1차 회의를 열었다.

“무엇보다 유가족들이 애가 탈 텐데 이런 늑장은 너무 한 것 아닙니까?”

기자의 질문이 빨라지고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 같아, 서정민은 오히려 톤을 낮춰 대답했다.

“홍콩만 하더라도 1개월 안에 특별조사위원회가 활동에 들어가지요. 특별조사위원회를 미리 법으로 규정해 뒀기 때문인데, 사건마다 특별법을 제정하는 수고와 시간의 낭비를 줄일 수 있는, 그런 장점이 있지요.”

“그럼 홍콩은 조사위원이 몇 명이나 됩니까?”

“신망 있는 법관 2명만을 위원으로 지명한답니다. 사고와 직접 관련된 행정부와 입법부로부터 독립된 사법부가 사고원인 조사에서 훨씬 더 객관적이라는 판단 때문이지요. 세월호의 경우 조사위원회 위원 중 법관은 없습니다. 객관성을 유지한다는 의미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봐야할지….”

“특조위가 형사처벌을 목표로 하고 있는 듯한데, 이런 경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해난사고는 전통적으로 처벌보다는 사고원인을 밝히는 데 초점을 둡니다. 홍콩도 조사에서 나온 증언이나 자료는 절대 형사상 목적으로 쓰지 못합니다. 조사위는 장래 유사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을 권고하는 데 설치 목적이 있고, 형사처벌이나 민사손해배상은 위원회가 위임받은 사항이 아님을 명기하고 있지요. 사고 관련자로부터 자발적인 진술을 구할 수 있는 좋은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수사권과 기소권은 위원회가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씀입니까?”

“그런 것은 검찰에서 중립적으로 행사한답니다.”

서정민은 3년 전 홍공 항내에서 충돌로 2분 만에 침몰한 여객선 람마4호 침몰 사건을 떠올렸다. 130여 명의 여객 중 39명이 사망한 사고. 사망자 중에 그의 사업 고객 한 명이 포함돼 있었다. 조사에서 특이한 점은 사고 원인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방식이었다.

여객선은 격벽이 많아야 하는데 이 배는 있어야 할 격벽이 없어 선박이 급격히 침몰했다. 조사위는 항해 안전을 위한 자세한 개선 사항을 공표했다.

특별법에 대한 이야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황 기자는 질문의 주제를 한국녹색회로 바꾸었다. 서정민이 환경단체 고문으로 일하는 사실을 알고 그는 떡 본 김에 제사 지내겠다는 심산으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영농조합을 왜 금수원 인근에 있는 한국녹색회에서 운영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환경단체 이름이 들어가면 이미지 관리가 어느 정도 되잖아요.”

“농장의 닭과 오리들이 환경적이라는 뜻입니까?”

“복합영농을 환경 친화적으로 운영한다고 홍보를 하면 이미지 개선이 되지 않을까요.”

환경단체에 소속된 회원 대부분은 구원파 신도들이다. 지난 33년 동안 구원파 영농조합의 배후세력 역할을 해왔다. 굴업도와 서귀포에서는 환경보호를 명분으로 개발사업에 맞서고, 안성과 청송에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환경운동을 벌였다. 일가의 땅을 지키기 위한 흑기사 역할을 한 것이다.

“박준홍 녹색회 중앙회장이 소속된 단체와 연관이 있습니까?”

“전혀 별개입니다. 환경단체는 비슷한 이름이 워낙 많아 확인이 필요합니다.”

“유 회장의 두 아들이 소유한 청송의 300만 평 유기농 공동체를 지키는 데도 한국녹색회가 앞장서겠네요.”

“여의도 면적의 세 배나 되는 땅이니 규모가 대단하잖습니까. 합법적으로 지켜주는 방패막이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아, 대단하군요. 시대의 흐름을 잘 타는 재주, 좋은 의미로 지혜가 보이네요.”

그리고 황 기자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출발시간이라면서 일어섰고 감사 표시를 잊지 않았다.


<이 작품은 세월호 사고의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한 창작물이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기업 지명 등은 실제와 관련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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