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20 16:03

더 세월(34)

저자 성용경 / 그림 하현
31. 트라우마
 


유가족의 가슴마다 절규의 언어가 부유한다. 사고 이후 가족의 삶은 송두리째 무너졌다.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일이 하나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루 종일 해맑게 웃던 아이의 얼굴만 떠올랐다. 4월이 끔찍하게 싫어졌다. 누군가에겐 꽃망울이 터지는 생명의 시간이지만 그들에겐 생때같은 아이의 생명을 앗아간 잔인한 달이었다.
 
유가족의 절규에 반응한 안산 시민들도 세월호 신드롬에 빠졌다. 시민의 90퍼센트가 분노 무력감 불안 등의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심리치료가 필요한 안산 시민만 17만 명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특히 단원고 인근 3개 동 주민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삶의 질 저하를 호소했다.

사실 국민 전체가 집단적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부작위 살인죄로 2심에서 무기징역형을 받은 선장으로 인해 대한민국 국격이 곤두박질쳤다는 한숨이 터져나왔다. 집단 병증에 언론도 한몫했다. 한국 언론은 지역 이념 세대를 가리지 않고 갈등의 담론을 조장했다. 자극적이고 무분별한 기사와 방송 보도가 국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입혔다.

불면증과 악몽, 우울증 등의 증상은 사고 후 수개월이 지나서 나타나 가족들을 괴롭혔다.

“우리가 정신병 환자야? 왜 병원에 가?”

피해 학부모들은 병원 진료를 기피했다. 정신과 병원은 얘기를 들어주는 곳이라고 홍보해도 그들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피해자나 유가족이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는 이유는 있었다. 정치적 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하면서 정부가 마련한 기관에서 심리치료를 받는 게 떳떳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세월호 1주기를 하루 앞둔 4월 15일

이순정은 안산 화랑유원지 내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옛 친구를 만났다. 친구 윤다정은 언니와 함께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언니는 세월호에서 아들을 잃었다. 1주기가 돌아오자 그녀는 사고 당시의 악몽 같던 감정들이 되살아나 힘들어 했다. 일종의 ‘기념일 반응’이었다. 친구의 언니는 희생된 여학생 한 명의 사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쟤가 내 친구 딸이었다. 우리 아들이 초등학교 때 좋아하던 애였지.”

갑자기 언니는 눈물을 글썽였다. 옆에 있던 이순정도 눈시울을 적셨다. 친구가 언니의 팔을 잡았다.

“언니 그만 해. 그동안 많이 힘들었잖아. 눈물도 다 말랐을 텐데.”

하지만 눈물은 아직 마르지 않은 듯했다. 그 언니는 한참을 더 서 있었다.

이순정은 갑자기 팽목항에서 본 실종자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은 유가족이 오히려 부럽다고 했다. 시신을 들고 나오면 축하한다고 말하곤 했다. 실종자 가족의 마음 속엔 치유될 수 없는 아픔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들은 바닷속 깊은 곳을 떠돌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며 방파제 난간을 잡고 울곤 했다. 비록 흰 천에 덮인 채 돌아온 언니였지만, 그렇게라도 해후하지 않았더라면 이순정은 같은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하고 또 재를 거두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안산 합동분향소에는 단원고 학생 영정만 안치돼 있었다. 일반인 영정은 일찍이 철수했음에도 이순정이 여기에 온 것은 친구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분향소를 나온 이순정과 친구는 화랑유원지로 갔다. 오후의 햇살을 비스듬히 받으며 애인끼리 데이트하거나 친구끼리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걷기 좋은 곳이다. 벚꽃이 흩날리는 유원지 벤치에 두 사람이 앉았을 때 친구 윤다정이 물었다.

“동업한다는 서 사장님은 건강이 괜찮으셔?”

죽은 순애 언니의 딸 소라에 대해서 먼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뜻밖이었다.

“사고 후 얼마간은 괜찮았었는데 최근 불안 증세를 보여 통원치료 중이야. 좀 호전되긴 했지만….”

“트라우마 치료는 2, 3개월이 골든타임인데, 조금 일찍 치료를 시작했더라면 더 좋았을 걸.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치료 받도록 독려해야 해.”

친구 윤다정은 참으로 다정하다. 전문 상담사란 직업을 선택한 것도 이 같은 성격 때문이었다. 윤다정은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담하는 일을 했다. 세월호 사고 이후엔 피해 학생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안산 온마음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머린컨설팅 사무실에 들렀을 때도 서정민에게 상담사로서 따뜻한 조언을 건넸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만 빼면 그녀는 이성으로 호감을 받을 만했다.

이순정이 친구를 쳐다보았다.

“그 사람 겉으로 보면 너보다 더 멀쩡해.”

윤다정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몸이 나았다고 마음이 나은 건 아니지. 정신과 치료는 받아봐야 알아.”

“이번 일로 트라우마가 무서운 줄 알았어. 마음의 암세포랄까… 그런 거.”

“혹시, 동업하면서 서 사장님께 정신적 부담을 주는 건 아니지?”

“그보다… 그 사람은 늘 언니를 죽였다는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애.”

“마지막 모습을 봤을 테고…혼자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 크겠지.”

윤다정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야, 네가 정말 잘해줘야겠다.”라고 농치듯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동업자로서 사업 잘하는 일밖에….”

이순정이 말했다. 윤다정이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았다.

“우리 솔직해보자. 너, 혹시, 서 사장님 마음에 두고 있는 거 아냐?”

“얘, 엉뚱하긴! 우린 그저 50대 50씩 투자한 동업자일 뿐이야.”

“지난번에 봤을 때 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던데? 동업자라기보단 연인 사이로 느껴지던걸.”

윤다정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얘가 생사람 잡겠네.”

이순정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친구의 너스레가 싫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물어보는 건 이유가 있어서야. 그분 건강에 네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는 걸 말해주려는 거라구. 악몽을 지우기 위해선 언니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이 필요해.”

‘왜 하필 나야?’하고 말하려다 이순정은 가만히 있었다.

“물론 희생일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행복한 일일 수도 있고.”

갑자기 분위기가 진지해지자 이순정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누구나 인생의 중대한 문제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멍해지는 것인가. 그 순간 엄마를 잃은 소라의 모습이 선하게 떠올랐다. 윤다정은 말을 이어갔다.

“그런 고민으로 널 고문하려는 건 아냐. 다만 인생은 자기 계획대로 가기보단 환경에 맞춰지는 경우가 더 많을지도 몰라.”

상담사한테 홀린 기분을 붙들고 이순정이 벤치에서 일어나자 윤다정도 따라 일어났다. 이순정은 휴대폰을 꺼내 서정민에게 전화했다.

“지금 별일 없으면 안산 화랑유원지로 와서 여성 동업자를 픽업하세요. 그리고 저녁식사는 와인을 곁들여 스테이크를 먹자구요. 한 분의 손님이 있는데, 윤다정이란 친구 알죠?”

상대방은 알았다고 했다.


<이 작품은 세월호 사고의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한 창작물이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기업 지명 등은 실제와 관련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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