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9 16:06

더 세월(60)

저자 성용경 / 그림 하현
52. 모형실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해양연구소에서 유의미한 실험이 있었다. 바닷바람이 유난히 심한 2018년 1월. 바헤닝언 해양연구소에서 세월호 모형실험이 진행됐다. 크기를 약 25분의 1로 축소한 노란 모형배를 띄워 선회할 때 상황을 확인하는 시험이었다.
 
무게중심과 침로, 화물이동, 스태빌라이저 등을 계속 바꿔가며 200여 차례 항주(航走)를 반복했다. 세월호와 가장 가까운 항주를 찾아내기 위한 과정이다. 
현장에 416가족협의회 선체인양분과장과 진상규명분과장이 참관했다. 이들은 13일간 모형실험을 지켜봤다.

영어와 불어를 잘하는 이순정이 통역관으로 참여한 것은 우연이었거니와, 서정민이 2차 모형실험 무렵 네덜란드로 오기로 해 그녀를 들뜨게 했다. 비록 서정민은 모형실험과 관계없이 자비로 온 것이지만, 이팔봉 회장이 그들의 결혼을 승낙한 터라 네덜란드에 함께 있는 동안 호텔방을 따로 쓸 필요가 없는 것만으로 수지맞는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걸 두고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하지.”

두 사람이 네덜란드 여행계획을 의논할 때 서정민이 한 말이다.

이순정은 몹시 들떠 있었지만 말은 차분했다.

“신혼여행도 아닌데….” 

지금까지 두 사람은 함께 여행을 하고 함께 방을 쓰기도 했지만 침대는 따로 썼다. 지금은 다르다. 같은 방, 같은 침대를 쓴다고 간섭할 사람이 없다. 무섭기만 하던 ‘영감’이 위수령을 해제했기 때문이다.

앞서 진행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는 생존자의 경험이나 증언과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 

생존자들은 처음 배가 기울어졌을 때 몸이 붕 떠오를 만큼 큰 기울어짐을 느꼈다. 당시 화물칸에 주차된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보더라도 차가 튕겨 쓰러질 만큼 횡경사 각도가 컸다. 이번 모형실험에선 다양한 데이터를 입력한 뒤 그에 따라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확인하게 된다.

모형실험은 항적 실험과 침수 실험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모형배도 두 가지로 제작됐다. 항적용은 검은 수조에서 움직임이 잘 보이도록 노란색으로, 침수용은 세월호처럼 아래쪽은 파란색, 위쪽은 하얀색으로 도색했다.

현지시각으로 1월 23일 모형배가 처음으로 항주했다. 

선조위가 설정한 화물량, 무게중심, 타각 등의 조건에 맞춰 항해를 하던 모형배는 어느 순간 원을 그리며 돌았다. 실험에 활용된 데이터는 인양한 세월호에서 확보한 블랙박스 영상 등에서 얻었다. 그 영상들이 없었다면 이 실험을 시작조차 못 했을지 모른다.

모형배 갑판에 화물을 대신해 무게추를 달았는데 추를 지지하는 레일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세월호가 얼마나 많은 화물을 실었으면 모형배마저도 이럴까.

2차 모형실험은 침수 과정을 밝히는 ‘침수 실험’과 ‘침몰 실험’, ‘실시간 항해 시뮬레이션’으로 구성됐다. 항해 시뮬레이션은 선체를 직접 조종하면서 사람의 조타 행위와 사고 당시 해역의 조류·방향·세기가 세월호 침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C갑판 창문과 통풍구에서 바닷물이 처음 유입되는 것을 확인했다. 물은 C갑판에 차오르더니 세월호가 더 기울어지자 D갑판과 E갑판을 거쳐 기관구역까지 흘러들어갔다. 닫혀 있어야 할 선체의 수밀(水密) 구역이 열려 있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2018년 2월에 진행된 2차 실험엔 김창준 선조위원장도 직접 참석했다. 함께 현장에 들른 서정민이 소감을 묻자 그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현장 분위기를 느끼는 것도 진실규명에 필요합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급회전에 의한 횡경사 발생과 침수에 의한 침몰로 볼 수 있다. 횡경사가 발생해도 침수가 없었다면 침몰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복합적인 원인들이 존재한다. 

선조위원장의 설명에 서정민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결국 복원성과 수밀성이 문제였군요.”

“전문가라 그런지 이해가 빠르시네요.”

“모형실험 결과는 국민에게도 공개되나요?”

“종국적으로 공개됩니다. 마린 보고서는 4월 말쯤 나올 것입니다. 선조위 운영 방침은 팩트는 공개하되 해석은 최후 보고서에 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조위 조사 보고서는 8월쯤 내놓을 예정이죠.”

“선체 직립을 결정하게 된 계기라도 있나요?”

“선체 조사는 조타실, 객실, 화물창, 기관구역으로 나뉩니다. 배가 왼쪽으로 누워있다 보니 기관구역 조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직립 후에 수색에 들어갈 계획입니다.”

“기존 세월호 조사 보고서와 선조위 조사가 다른 점은 뭔가요?”

“검경합동수사본부가 선박자동식별장치(AIS) 하나만 가지고 보고서를 작성했다면, 선조위는 블랙박스 영상과 선체 조사를 통해 진실규명에 나서고 있습니다. 좀 더 객관적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거죠.” 

서정민은 김 위원장의 답변을 들으면서 선조위가 어렵게 얻은 데이터를 잘 활용해 사고 원인을 밝혀내 주길 바랐다.

모형실험 현장을 나온 서정민과 이순정은 해안 경치가 좋은 레스토랑에서 감자요리 스탬폿에 곁들여 전통주 게네베르를 마시고 적당히 기분 좋은 상태에서 로만손 호텔로 돌아왔다.

“결혼 전에 한 침대 쓰는 건 좀 어색하지 않아요?”

이순정이 샤워를 마치고 침대 쪽으로 다가오며 머뭇거리자, 서정민이 그녀를 번쩍 들어 안았다.

“이젠 모형실험 같은 건 없어요. 지금부터 실시간 항해랍니다.”

네덜란드에 와서 모형실험에 참관하고 교민회 초청파티에 다녀오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한 그들은 모처럼 찾아온 둘만의 시간을 오롯이 즐기고 싶었다.

영감이 승낙한 이상 도덕적인 부담도 없었다. 

그들은 침대 위로 올라갔다. 

45도 기울면 아래로 추락하고, 50도가 넘으면 자력으로 움직일 수 없으며, 15분 만에 60도까지 넘어지는 배를 연상할 필요는 없었다. 90도로 기운 채 서로를 포옹하고 잠든 그들은 공포와 절망이 아닌 기쁨과 희망을 마음속에 품었다.


<이 작품은 세월호 사고의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한 창작물이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기업 지명 등은 실제와 관련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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