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02 16:01

더 세월(62)

저자 성용경 / 그림 하현
54. 선체 직립


사무실 창문 너머 보이는 하늘이 유리알같이 맑다. 5월의 싱그러운 바람에 여자들의 마음도 살랑거린다.

‘바깥으로 나와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사랑을 속삭이세요.’

얄미울 정도로 화창한 날씨는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사무실 안의 두 남녀는 한사코 소파에 앉아 TV만 바라보며 꿈쩍도 하지 않는다.

“서 사장님, 지금 배가 일어서요! 보세요!”

4년 동안 옆으로 누웠던 세월호가 일어서려는 순간, 이순정은 소리쳤다. 약혼한 상태인데도 그녀는 예비 배우자를 사장으로 불렀다.

서정민과 이순정은 광화문 사무실 소파에 앉아 이 장면을 보기 위해 기다려 왔다. 다른 채널에서는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을 데려 나오고, 야당이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에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뉴스를 보도했지만 이 채널은 세월호가 곧추서는 모습을 끝까지 보여줬다.

2018년 5월 10일 낮 12시 맑음

예정보다 3주 앞서 세월호 선체가 직립했다. 4년간 옆으로 누워 있었던 선체는 94.5도까지 바로 세워졌다. 현대삼호중공업은 오전 9시부터 목포신항에서 1만 톤급 해상크레인으로 선체를 세우는 작업을 시작했다. 전날 선체를 40도까지 들어 올리는 예행연습에 성공한 뒤 선체를 바닥면에 완전히 내려놓지 않고 8도가량 세워진 상태에서 이날 본작업에 착수했다.

직립 작업은 오전 9시 해상에 설치된 크레인이 세월호 선체 아래 수평빔 33개에 연결된 쇠줄을 4,300톤의 힘으로 잡아당기면서 시작됐다. 작업은 오전 만조를 기하여 해상크레인에 쇠줄을 앞뒤 각각 64개씩 걸어 선체를 뒤편에서 끌어당기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쇠줄을 연결하기 위해 선체 바닥면에 수직빔 33개가 설치됐다. 좌현에 설치돼 있던 수평빔과 결합해 L자 모양을 이뤘다. 수직빔은 세월호가 세워지면 받침대 역할을 하게 된다.

작업 시작 30분 만에 선체가 바닥에서 40도까지 일어나자 직립 작업이 잠시 중단됐다. 앞뒤 쇠줄에 걸리는 중량을 미세 조정하는 작업 때문이었다. 세월호의 무게중심이 이동하자 배 바닥을 받치던 수직 빔에 고루 힘이 전달되도록 하는 점검 작업이 극도의 긴장 속에 진행됐다. 선체와 쇠줄을 합한 무게는 무려 1만430톤에 달했다. 직립 과정에서 자칫 선체가 뒤틀리거나 부서질 수 있었다.

점검을 마치고 공정이 다시 재개됐다. 작업을 시작한 지 1시간 30분이 지난 오전 10시 37분에 선체는 60도까지 세워졌고 11시 58분엔 90도에 이르렀다. 하지만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선조위는 낮 12시 10분 94.5도가 되자 비로소 직립 작업 종료를 선언했다. 정부가 현대삼호중공업과 세월호 직립을 계약한 지 100일 만이었다.

선체가 훼손된 상태라 선체를 보강하고 고정하는 사전작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계획보다 공정이 길어졌다. 직립을 원활히 하기 위해 선체 방향을 90도 틀어 부두와 평행하게 하는 작업도 사전에 이뤄졌다. 부두 안쪽으로 60미터 떨어진 곳은 해상크레인 붐대가 선체와 61도를 이뤄 가장 큰 힘을 낼 수 있는 지점이었다.

“왜 바로 세우지 않고 기울여 세웠나요?”

이순정은 서정민의 설명을 듣고 싶었다.

“이미 좌현에 화물과 펄 등이 쏠려 있고 그쪽에 설치한 받침대 무게가 선체 무게중심을 이동시켰기 때문이지.”

누워 있는 배를 굳이 세울 필요가 있었을까? 이런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 정부는 직립을 해야 하는 이유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미수습자 5명 수습

둘째, 정확한 사고 원인 규명

셋째, 물리적 공간의 사후처리

선박이 옆으로 누운 상태에서 미수습자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또 직립은 선체 접근을 용이하게 하므로 공간 활용성을 높일 수 있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물리학적, 공학적, 역학적 견해를 총동원해도 여전히 규명하지 못한 사고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서도 직립은 필요했다.

세월호 침몰에서 인양을 거쳐 육상 직립에 이르기까지 4년 1개월이 걸렸다. 그 과정을 간략히 살펴보면 이랬다.

2014년 4월 16일 국민의 가슴을 태우며 가라앉은 세월호는 사흘 뒤 선수 부분이 물에 잠기며 완전히 침몰했다. “움직이지 마라”는 방송을 남기고 선원들만 배를 탈출해 공분을 샀다.

그로부터 1년 3개월가량 지난 2015년 8월 7일 국제입찰을 통해 인양업체로 선정된 상하이샐비지는 인양 작업에 착수했다. 당초 계획했던 인양 완료 시점은 2016년 6월이었다. 하지만 수중 작업이 예상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워 인양은 상당 기간 지연됐다. 특히 화물칸 C갑판과 D갑판의 기름을 제거하고, 선미 부분을 굴착해 리프팅 빔을 설치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17년 4월 9일 세월호가 육상에 올려진 뒤 미수습자 9명을 찾는 수색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3·4·5층 객실 구역과 화물칸에 대한 2차례 정밀수색이 이뤄졌다. 7개월 가까운 수색 끝에 단원고 고창석 교사, 단원고 조은화·허다윤 양, 이영숙 씨 유해가 수습돼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여전히 단원고 남현철·박영인 군, 양승진 교사, 권재근·혁규 부자 등 5명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2017년 11월 16일 목포 신항 수색 현장을 지키던 남은 미수습자 가족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목포 신항을 떠났다.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 장례를 치르며 가족을 가슴에 묻었다.

선체조사위원회는 2018년 2월부터 세월호를 바로 세우는 작업에 착수했다. 각종 기계·설비가 얽혀 있어 작업자 안전 문제로 제대로 수색하지 못한 기관실 등을 추가로 수색하고, 진상규명을 위한 선체조사를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2018년 5월 10일 드디어 선체가 바로 섰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직립에 성공했네요. 유해 수습은 언제 시작되나요?”

“준비작업에 3주 걸린다니 6월 초 가능하겠구먼.”

선조위는 좌현빔 제거와 워킹타워 설치 등 마무리 작업을 하고, 미수습자 5명의 유해가 흘러들어 갔을 것으로 보이는 기관실 등에 대한 마지막 수색작업을 벌인다. 진상규명을 위해 조사가 필요한 기관실 컨트롤박스, 타기실, 프로펠러 등이 있는 세월호 우현을 집중 조사하고, 일부에서 제기된 ‘외부 충돌설’ 규명을 위해 누워 있던 선체 좌현도 자세히 들여다볼 계획이다. 세월호 선체 활용 방안도 국민 의견을 수렴해 정부에 권고할 예정이다.

선체를 원형 그대로 보존해 국민안전 교육관 등으로 사용하는 방안과 객실 등 선체 일부를 보존하는 방안, 앵커 등 세월호 상징물만 남겨 활용하는 방안 등 3가지 안이 유력하게 검토됐다. 선조위원장은 “선조위 활동 기한인 8월까지 침몰 원인 규명을 위한 조사활동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선체 직립작업 생방송이 끝나갈 무렵 사무실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서정민의 절친한 친구 소종민이었다. 두 사람은 고교와 대학 동기 동창이다. 공교롭게도 이름이 비슷해 학창 시절 본의 아니게 단짝으로 묶였다.

소종민은 해외취업선만 20년 이상 승선했다. 기관장으로 15년 근무했으니 기계 소리만 들어도 고장의 유무를 알 만큼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너무 성실해 친구들은 그를 돌부처로 불렀다.

“시간이 늦었지만 같이 점심이라도 하자. 아니면 커피라도?”

부산에 거주하는 그는 하선 휴가 중 잠시 짬을 내서 상경했단다. 꿀맛 같은 짧은 휴가 중에도 찾아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사무실에서 악수를 할 때 서정민의 손에는 힘이 들어갔다. 꼭 잡았다.

“마침 우리도 점심 먹으러 나가려던 참이야. 같이 가자.”

‘우리’는 이순정을 포함한 말이다. 서정민이 이혼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약혼자가 있고 또 그 사람과 한 사무실에서 같이 근무하는지는 미처 알지 못했던 소종민은 ‘축하의 밥’을 사겠다고 했다. 광화문광장에서 몇 걸음만 가면 닿는 포시즌스호텔로 향했다. 개장 초기 이세돌과 알파고가 세기의 바둑 승부를 겨룬 곳으로 유명하다.

“한국에 이런 호텔이 있었나?”

좁은 선박에 익숙한 기관장 소종민은 호텔 2층에 있는 이탈리아 레스토랑 보칼리노에 자리를 잡으며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요리에 익숙한 이순정이 만족해하자 대접하는 그도 기분이 좋았다. 기관장은 마주 앉은 두 남녀를 바라보며 ‘약혼 축하한다’는 말을 먼저 꺼내고 말을 이었다.

“세월호가 바로 섰다고 하는데 사고 원인이 나왔어?”

많은 화제를 제쳐두고 세월호 이야기부터 시작한 것은 여객선의 피해자인 서정민을 배려한 이유일 것이다.

“외부 충격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어. 이제 내부에서 원인을 찾아야 해. 예컨대 기관실, 타기실 등에서 말일세. 기관장이라면 찾을 수 있겠구나.”

“조타실에서 급변침한 게 원인 중 하나라고 들었는데?”

기관장이 물었다.

“솔레노이드 밸브에 의심을 두기도 하더군.”

“밸브의 고착이 원인일 수 있겠군.”

기관장다운 진단이다. 솔레노이드 밸브는 선교 방향타의 전기신호를 타기실 유압신호로 바꾸는 장치로, 좌우 라인을 개폐하는 역할을 한다. 밸브는 전기로 작동하고, 유체의 흐름을 완전 닫힘 또는 완전 열림 방식으로 조절한다. 보통 원격 제어가 필요한 곳에서 사용된다.

“밸브는 어떤 원리로 작동하나?”

서정민은 대충 알고 있었으나 기관장의 의견을 듣고 싶어 물었다. 전기를 가하면 솔레노이드 코일은 원통관 내부의 강철 플런저를 들어올리는 강한 자력을 제공한다. 이것은 평상시 닫혀 있는 밸브의 오리피스를 열고 액체나 기체의 흐름을 가능하게 해준다. 소종민의 설명이었다.

“물속에서 바로 세웠더라면 훨씬 쉽고 비용과 시간도 덜 들었을 텐데 왜 먼 길로 돌아온 거야?”

기관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시신 손상과 유실을 염려해 유가족들이 반대했지.”

서정민의 대답에 그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수긍하는 눈치였다.

선체가 바로 서는 순간 유족의 마음은 어땠을까? 서정민은 그 순간을 TV에서 찬찬히 보았다.

작업을 지켜보던 일부 희생자 유족은 “기도합시다” 하며 고개 숙여 눈물을 훔쳤다. 선체가 일어서는 과정에서 이따금 굉음이 울려 긴장이 감돌기도 했지만 직립은 무사히 이뤄졌다.

선체가 세워지면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좌현이 모습을 드러내자 감동과 의아함이 교차했다. 좌현 부분은 네티즌 수사대 자로가 ‘잠수함 충돌’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본격적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레이더영상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주황색 괴물체가 잠수함 충돌설의 핵심 근거였다.

선조위원장은 “최근에 제기된 외력설은 좌현 뒤쪽에서 측면 스태빌라이저를 밀고 지나간 시나리오”라고 설명하며 “이건 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현상이 있어서 조사 중이며 아직 결론을 내릴 단계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직립이 마무리되었으니 그동안 진입이 불가능했던 선수 좌현 일부 공간 등에 대한 수색이 이뤄질 예정이다. 엔진룸이 있는 세월호 기관구역은 각종 장비가 얽혀 있고 아직도 펄이 많아 정밀 조사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프로펠러의 오작동과 선체 좌현의 충돌 흔적 등 침몰원인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해소하려면 선체를 세워놓고 조사하는 게 필수적이다. 5명 남은 미수습자 수습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세월호 이후 선원들 분위기는 어때? 훈련이 더 강해졌나?”

현장이 궁금해서 서정민은 물었다.

“훈련에 임하는 정신이 많이 달라졌다고 할까. 훈련이 비상시 행동을 좌우한다는 걸 인식해 가는 것 같아. 미흡하지만 선주 의식도 많이 바뀌었고.”

현장 실무자로서 기관장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재혼이라고 청첩장 안 보내면 안 된다는 거 알지?.”

말을 남기고 기관장 소종민은 부산으로 내려갔다.

“Bon Voyage!”

서정민과 이순정은 그의 안전항해를 기원했다.


<이 작품은 세월호 사고의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한 창작물이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기업 지명 등은 실제와 관련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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