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6 16:09

더 세월(64)

저자 성용경 / 그림 하현
56. 가짜뉴스


미디어의 발달로 각종 정보들이 쏟아지면서 그에 비례해 가짜뉴스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졌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현장을 참관하는 기자들에게 북한이 1만 달러씩 요구했다는 보도는 전형적인 가짜뉴스였다. 청와대는 가짜뉴스에 격노했다. 세월호 사고도 마찬가지였다. 고의 침몰 이슈가 대두되면서 가짜뉴스는 위력을 더했고 이를 검증하는 데 많은 사회적 비용을 필요로 했다. 

고의 침몰을 배제할 경우 사고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먼저 선체나 선박 기기의 이상을 들 수 있다. 특히 기기가 원인이라면 타기 혹은 기관 쪽 문제일 가능성이 컸다. 조타실 타기실 기관실 화물창 등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이상이 선박을 침몰에 이르게 했다는 분석이다. 보조기관실 축계실 추진기실 좌우선체균형장치실도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해 정밀한 조사가 필요했다.

복원력 상실이 침몰 원인이라는 보수적 견해에 선 사람들도 많았다.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여객선은 군함보다 복원력이 뒤처진다. 비상 사태에서 빨리 균형을 잡아야 하는 군함은 높은 복원력을 요구한다. 반면 여객선은 배가 기울어도 천천히 제자리를 찾도록 설계된다. 배가 균형을 잡는 과정에서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면 승객들이 멀미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고의 침몰설의 천국이었다. 대체로 세 가지가 고의 침몰설의 근거로 제시됐다. AIS항적 조작설, 앵커 침몰설, 잠수함 충돌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토론을 좋아하는 서정민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바닷바람이 시원한 저녁 현장수습본부 휴게실에서 세 사람이 모여 맥주 캔을 따며 토론에 들어갔다. 선조위 선배와 현장수습본부 해수부 직원, 그리고 서정민 자신이다. 서로 잘 아는 사이라 열띤 토론에도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사고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런 시간은 서정민에게 삶의 의미를 느끼게 했다. 서정민은 맥주를 들이켜며 선조위 선배에게 질문을 던졌다.

“고의 침몰설에 선조위가 명확하게 답을 제시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선배는 답변을 주저하지 않았다.

“AIS 조작설은 사실이 아닌 것 같아. 자네도 네덜란드 마린의 모형실험에서 세월호 행적과 유사한 결과가 나온 걸 잘 알잖아. 앵커 침몰설과 잠수함 충돌설도 세월호 외관을 확인한 결과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어. 그래도 국민의 큰 관심사이니 조사는 더 해봐야겠지.”

그의 설명은 이어졌다.

자로의 잠수함 충돌설과 영화 ‘그때 바다’의 앵커 침몰설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들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았다. 다만 AIS를 조작하려면 많은 사람
의 공모가 필요함에도 33차례에 걸친 선원재판에서 조작을 모의한 정황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데 선체에서 외력충돌 흔적이 나왔다면서요?”

현장수습본부 직원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선배는 이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했다.

선원 재판에서 검찰은 참사 원인으로 과적, 복원성 불량, 고박 불량, 조타 실수 등 4가지를 주장했다. 하지만 급변침과 변침 초기에 일어난 50도 이상의 급격한 횡경사는 선체 자체의 문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의문은 여기에서 시작됐다. 세월호가 외력에 의해 침몰했다면 왼쪽으로 기울며 급변침한 당시 상황에 미뤄 외부의 충격이 가해진 곳은 선체 좌측 어딘가여야 한다. 그 곳에 세월호의 진실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선조위 1차 중간 보고회에서 뱃머리 좌측면에 외력 외에는 설명할 수 없는 큰 힘이 작용해 생긴 흔적이 발견된 사실이 알려졌다. 보고서는 세월호가 3년가량 바닷속에서 부식이 진행됐고 인양 과정에서 선체에 변형이 발생했다고 전제했다.

하지만 왼쪽에 생긴 스크래치는 사고 이후 발생한 것이라 하기엔 자못 크고 깊었다. 보고서를 작성한 조선공학 교수는 세월호 뱃머리 왼쪽에 2,800톤의 충격이 작용해 46센티미터가량 움푹 파인 변형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그 교수는 스크래치 자국이 세월호 사고의 원인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해석했다. 큰 스크래치를 생기게 할 만큼 강력한 외부 힘이 아니고선 배의 급격한 선회와 횡경사가 발생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문제는 움푹 파인 곳이 사고 이후에 뭔가에 부딪혀서 생긴 건 아니라는 거잖아요?”

서정민이 선배에게 물었다.

“스크래치 위치상 침몰하다 해저에 충돌했거나 인양 중에 건드려서 생긴 건 아니지.”

“생존자 다수가 침몰 직전 ‘쿵’ 소리를 들었다고 진술했고, 블랙박스 영상에도 이 소리가 고스란히 잡힌 것도 외부 충돌에 무게를 둘 수 있는 근거 아닌가요?”

“배가 기울기 전에 둔탁한 충격음이 있었던 건 맞아. 조타수도 처음에 작은 각도로 변침할 때 ‘타(舵)가 이상하다’고 말했고 법정에서도 스테빌라이저(배 양 옆의 안정화 날개)에 뭔가 걸린 것 같다고 진술했다지.” 

“외력 충돌설도 신빙성이 있네요. 다른 검증 방법은 없나요?”
“스크래치 부분을 정밀 분석하면 원래 페인팅 재료 외에 다른 물질이 나오는지 확인할 수 있을 거야. 그것도 조사 대상이야.”

아직까지 선체에서 선박 도료 외에 다른 페인트는 나오지 않았다. 선조위 선배는 좀 더 전후 관계를 면밀히 파악하면 명확하게 결론이 날 것으로 기대했다.

외력 충돌설과 달리 앵커 침몰설은 여러 정황상 진실과 거리가 멀었다. 선수 갑판의 좌우 앵커 투묘(닻 내림) 장치를 확인한 결과 밧줄과 쇠줄은 모두 감겨 있었다. 애초에 앵커의 쇠줄이 감긴 상태에서 배가 침몰했다는 뜻이다.

앵커 체인 출입구에 찌그러진 흔적 없이 녹슨 자국만 남아있는 것도 앵커가 해저면에 걸려 배가 급격하게 기울어 침몰했다는 주장을 정면 반박하는 정황이었다. 사고 직전 학생들이 남긴 영상과 선내 CCTV, 차량 블랙박스 등에 미뤄 사고 당일 8시 50분 전까지 세월호에 이상 징후가 없었다는 점도 앵커 침몰설을 탄핵하는 근거로 활용됐다.

증거 인멸을 위해 좌현 앵커를 고의로 절단했고, 사고 직후 공개한 앵커는 다른 배의 것이라는 의혹도 일단락됐다. 선조위는 선체 수색과 인양 작업 과정에서 왼쪽 앵커를 절단하여 보관했고 절단한 앵커는 세월호의 것과 일치한다고 해명했다. 괴담이 허위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여러 설들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세월호 사고를 추적해온 주체들의 이목은 발표를 앞둔 선조위 보고서에 쏠렸다. 유가족들은 가설이 아닌 진실에 접근한 사고 원인이 충분한 근거와 함께 제시되길 바랐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조사하고 있는 중이야.” 

선조위 선배는 말했다.


<이 작품은 세월호 사고의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한 창작물이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기업 지명 등은 실제와 관련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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