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축인 해운 물류 산업이 전례 없는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통상 및 금융시장 환경의 불확실성은 증가하고 자국 우선주의 정책 강화, 미·중 무역 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해상 분쟁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는 물류망을 위협하고 있다.
여기에 기후변화와 ESG 대응 요구, 기술의 발전 등 다양한 변수들이 작용하여 해운 물류 산업의 불확실성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러한 환경에 빠르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받고 있으며 이제는 기업이 생존하고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할 역량이 ‘마케팅 어질리티’(Marketing Agility)다.
마케팅 어질리티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서 고객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역량을 뜻한다. 단순히 광고나 판촉을 조정하는 차원을 넘어, 실시간 데이터 분석과 빠른 의사결정, 부서 간 협업을 바탕으로 고객 중심의 전략을 빠르게 실행하는 전사적 전략이다.
어제의 해운업이 장기 계약에 기반한 고정적 영업 방식을 고수했다면, 오늘의 물류 시장은 항만 혼잡, 실시간 운송 상황, 연료비, 날씨 등 수많은 요소가 운임과 일정, 고객 만족도에 영향을 주는 민감한 구조로 바뀌었다. 결국, 마케팅 전략도 더 이상 연 단위 계획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일 단위 또는 분 단위의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
이러한 변화에 성공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기업 사례는 이미 존재한다. 프랑스의 대표 해운 기업인 CMA CGM은 구글 클라우드와 협력해 AI(인공지능) 기반 물류 분석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시스템은 선박의 항로, 입항 일정, 기상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최적의 운송 경로를 제시하여 고객 맞춤형 서비스와 연결해 영업 전략에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애자일(agile)한 마케팅 전략과 디지털 기술을 결합하여 CMA CGM은 업무 효율성과 고객 만족도 제고, 탄소 배출 저감이란 ESG 성과도 함께 달성했다.
국내 사례로 현대글로비스가 조직 프로세스 혁신을 통해 적극적으로 애자일리티 전략을 도입하고 있다. 스마트 물류 플랫폼을 기반으로 고객사별 물류 요구를 AI, IoT(사물인터넷),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하여 실시간 분석하고, 빠른 솔루션을 제안하는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전자상거래 시장 확대에 따라 이커머스 특화 물류 체계를 빠르게 구축하고, 친환경 선박 도입과 탄소 중립 실천을 마케팅 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직원 전문성 함양과 역량 강화를 위해 실무 맞춤형 교육 과정을 도입했고 이러한 유연한 전략 수행은 고객으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으며, 물류 산업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공공부문에서도 변화가 일고 있다. 부산항만공사는‘항만물류 디지털 트윈 물류’시스템을 도입해 항만 운영의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빅데이터와 AI를 통해 터미널 운영 자동화, 선박 도착 시간 예측, 항만 혼잡도 감소, 시간당 화물 처리 속도 향상 등을 가능하게 하여 항만의 경쟁력 제고에 이바지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국가 전체 물류 시스템의 신뢰성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중요한 역할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업 및 항만의 변화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마케팅 어질리티는 단순히 기술과 전략의 문제가 아닌 산업 생태계 전반의 문제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책적 기반 마련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해운 물류 기업들은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하고 AI 분석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애자일 조직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선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디지털 물류 전환에 필요한 연구개발 지원, 스마트 항만·터미널 인프라 구축 예산 확대, 물류 스타트 기업과 협업 촉진을 통해 생태계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중소 해운사나 물류기업의 경우 디지털 역량이 제한되어 있어 시장 변화에 뒤처지고 있다. 이들 기업을 위한 교육·컨설팅 사업, 맞춤형 지원 프로그램, 클라우드 기반 물류 플랫폼 접근성 확대 등이 시급하다. 또한 민간의 혁신 노력을 제도적으로 보완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 데이터 공유 협약, 산학연 협력 체계도 더욱 체계화해야 한다.
신기술에 ‘만만디’(慢慢的)한 둔한 기질을 갖고 있는 국내 해운업체들과 창의력 없는 모방자(Copy Cat) 전략에만 집중하는 보수적인 경영자들은 현 상황에 안주하여 개선하지 않는다면 이제 성장은 할 수 없다는 긴장감을 끼고 살아야 한다.
조직 내 목소리 큰 사람의 자의적 가정과 데이터 기반의 충분한 가설 입증 없이 미리 헤아려 짐작하는 예측 경영은 사실 구름 위를 걷는 위험한 경영이다. 어떤 사정이나 형편, 상황 따위를 잘 살펴보고 그 장래를 헤아리고 추이, 변화를 관찰하여 측정하는 관측 경영이 필요하다. 변화는 예측이 아닌 관측에서 시작하고 미래는 예측만으로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케팅 어질리티는 해운물류 산업의 불확실성을 기회로 전환하는 핵심 역량이고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능력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이제는 예측을 넘어 관측을 통한 실행으로 기업뿐 아니라 정부도 이 변화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모방자가 아닌 경쟁력 강화를 위해 더 가치 있게 활동해야(Adding Values) 할 때다.
기술과 전략, 그리고 정책이 결합하는 환경 속에서 우리 해운 물류 산업이 글로벌 무대에서 다시 한번 중심축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민첩하게 몸부림쳐야 한다. 조직과 개인이 열정과 신뢰를 갖고 새로운 변화에 감지(sense)와 대응(respond)으로 대처하고 함께 이해하고 배우는 관측을 통해 효과적인 변화 프로세스를 갖춰야 한다.
새로운 정부 출범 후 기술과 전략, 그리고 정책이 단단히 매듭(knot)을 져 우리의 해운물류 산업이 국제 무대에서 독야청청(獨也靑靑) 괜찮은 속도(knot)로 순항하길 기원한다.
lgb14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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