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07 17:27

항만도시의 새로운 선택, 살고 싶은 공간으로

기고/한국해양수산개발원 이성우 본부장


연례행사처럼 새해 일출을 보고자 많은 사람들이 동해, 서해, 남해 바다로 모여 도로 정체를 빚었다는 이야기는 이제 일상적인 새해뉴스이다. 신년에 바다에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한해 모두의 희망을 담아서 기원하고픈 게 우리나라 사람들의 전통인 듯하다. 살다가 일이 잘 안 풀리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많은 사람들은 바다를 찾아 맑은 공기와 탁 트인 수평선을 바라보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회복을 희망한다. 그래서 저자가 근무하고 있는 부산은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바다가 주는 청량감과 개방감을 주제로 즐거움을 누리곤 한다. 그런데 진짜 바다, 특히 항만도시인 부산, 인천 등은 우리가 힐링할 수 있을 만큼 깨끗한 곳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우리나라는 제2, 제3의 도시가 항만도시이다. 사실 제1의 도시인 서울도 우리들이 잘 알고 있을 모르겠지만 서해와 한강으로 연결되는 서울항이라는 공식적인 항만을 가지고 있는 곳이니 우리나라의 최대 도시들이 대부분 항만도시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 항만도시 그대로 부산항과 인천항은 과거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주역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룬 숨은 공로자이다. 1960~70년대 한국전쟁으로 피폐해진 대한민국의 경제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제일 먼저 추진됐던 외국 원조 사업 중의 하나가 부산과 인천에 새로운 부두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당시 전쟁으로 피폐해진 가난한 한국이라는 나라는 자원도 없고 북한이라는 안보적인 위험도 있는 곳으로 짧은 기간 내에 경제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의견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근면한 국민성을 기반으로 부족한 자원을 수입해서 제조시설에서 생산하고 다시 수출하는 형태의 가공무역 방식으로 세계가 놀랄 만큼 단기간에 전후 복구는 물론 세계 10위권의 경제국으로 성장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기여를 한 인프라는 두말할 것도 없이 항만이었다. 여러분들의 머릿속에 우리나라의 산업도시는 대부분 항만도시일 것이다. 부산, 인천은 물론 울산, 포항, 여수, 목포, 군산, 평택 등이 왜 산업중심지 인지 쉽게 이해가 가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 우리나라의 경제를 견인해 왔던 항만도시가 현재 새로운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게 됐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항만에 있는 선박과 하역장비에서 발생하는 대기와 수질오염 물질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항만이라는 공간을 다시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와 있는 것이다.




최근 미세먼지로 전국토가 홍역을 치루고 있다. 미세먼지는 상당부분이 중국의 공장, 발전소, 차량 등의 오염원으로 부터 만들어져 북서풍을 타고 우리나라를 덮치고 있지만 많은 양의 오염물질이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 지자체는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발전소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노후화된 디젤차량의 도심 진입을 제한하고 있다. 또한 친환경 발전소 건설과 전기, 수소자동차 등 친환경 차량 지원금 제도도 만들어서 환경개선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와 같이 국민들의 건강을 위해 정부, 지자체 그리고 국민들 스스로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제대로 관리되는 못하는 곳이 항만이다. 전 세계 인구의 70%가 바다주변 즉 항만도시에 살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항만도시의 범위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국민의 절반 이상이 항만과 연결된 항만도시에 직간접적으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경제성장의 기반이 됐고 지금도 우리나라 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 항만시설이 항만도시에 살고 있는 시민들에게는 환경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며, 이에 대한 대응이 시급한 상황이다.

세계 주요 연구기관은 항만 혹은 선박이 발생시키는 대기오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중국의 China Daily Asia 등의 자료를 인용하면 고유황유 사용 선박 1척이 발생시키는 SOx, NOx 등의 대기오염 물질이 트럭 50만대 분량과 같다고 발표했다(<그림-1> 참조). 선박 크기와 항행 속도, 노후 정도 등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그 정도가 엄청나서 선박의 대기오염 수준은 다른 교통물류수단과 비교해서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또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듯이 것처럼 차량을 공회전 시킬 때 매연발생량이 훨씬 많은 것처럼 항만에 접안한 선박이 입출항시와 자체 전력 확보를 위해 엔진을 가동시킬 때우 발생하는 매연은 항행시보다 훨씬 높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대기오염물질은 항만배후에 거주하는 도시민들의 건강을 해치는 심각한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특히 선박에서 발생되는 대기오염물질의 양이 많은지는 선박에서 사용되는 연료에서 찾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선박이 사용하는 연료인 벙커C유는 원유를 정제하고 남은 가장 마지막 물질인 피치(피치는 포장재인 아스팔트 원료)보다 조금 상위 제품이다. 당연히 이러한 저급 연료를 사용하게 되면 다량의 대기오염물질을 발생시킬 수밖에 없고 이는 국민들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저급 연료를 사용하는 이유는 경제적인 요인 때문이다. 우리나라 수출입 화물의 99.6%, 전 세계 화물의 80~90%가 해운을 이용하는 이유는 대량 화물을 저렴하게 운송할 수 있기 때문이고 그 이면에는 싼 연료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얼마 전 독일의 한 연구기관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세계 최대의 오염된 항만(Global dirty 10) 중 부산항이 포함돼 있었다(<그림-2> 참조). 아마도 부산시민들이 보면 깜짝 놀라는 결과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항만들, 즉 선박이 가장 많이 오고가는 항만들이 가장 오염된 항만이라는 상식적인 결과에 기인한 내용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들은 간단하게 선박에 사용되는 연료를 최근 국제해사기구(IMO)가 권고하는 저유황유로 바뀌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전 세계 선박이 현재 사용되는 고유황유 대신 저유황유로 바꿀 경우 현재 사용되는 연료비보다 대략 150억 달러(16조원)가 추가된다고 하니 현재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대부분의 선사들 입장에서는 대폭적인 물류비를 높이지 않으면 대응하기 어렵다. 결국 이 물류비는 생산자들한테 전가될 수밖에 없고 우리가 구매하는 물건에 반영돼서 상품 가격이 오르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상품을 비싸게 주고 깨끗한 환경을 살 것인가 아니면, 싸게 상품을 사고 더러운 환경 속에 살 것인가의 선택의 문제이다. IMO는 선박들을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인지하고 2020년 1월 1일부터 현재 사용하는 선박연료의 유황함유량을 3.5%에서 0.5%로 낮추어 규제할 계획이다. 이 문제를 대응하기 위해 선사들은 저유황유를 사용하거나 스크러버(scrubber)시설을 선박에 장착해서 자체적으로 연료를 정제하거나 친환경연료인 LNG로 추진되는 선박을 신규로 제작하는 방법 밖에 없다. 해당 대안들 모두 비용과 관련돼 있고 현재 세계 해운시장은 지속적인 유동성 문제로 아직도 생존을 위한 버티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한진해운은 이 버티기 경쟁에서 밀려서 결국 도산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추가적인 환경규제로 새로운 친환경 선박을 만들거나 고가의 저유황유를 사용한다는 것은 선사들을 매우 어려운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지난해 말 미국 대통령 트럼프 조차도 자국기업 보호차원에서 IMO 환경규제를 유예해야 한다는 발언을 언론에 하기도 했다. 선사의 운영비용이 증가하거나 나아가 경쟁 선사들의 도산으로 인한 시장 과점화 상태가 되면 결국 이 비용은 소비자들한테 전가되고 국민들에게 부담이 늘어나는 연결고리 안에 지금 이 문제가 숨어있는 것이다.

항만도시의 심각한 대기환경문제를 인지한 유럽, 북미 그리고 중국까지도 자국의 항만도시에 대한 환경개선을 위해 IMO 환경규제 혹은 자체적인 환경규제를 차용해 대기오염물질배출관리구역(Emission Control Area : ECA)이라는 해양공간 대기관리 제도를 시행 중에 있다. 우리나라 역시 해양환경관리법 개정을 통해 국민들의 환경개선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정작 선박들이 집중적으로 출입하고 있는 항만에 대해서는 ECA와 같은 강력한 관리제도를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는 아직도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최근 경기 침체로 국민들의 생활이 힘들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ECA와 같은 환경보호제도를 도입하는 것 역시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더러운 환경에 살면서 경제를 살릴 것인가? 깨끗한 환경에 살면서 조금 더 경제적인 부담을 질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 역시 자세히 살펴보면 단순한 이분법의 논리가 아니라 조금 더 고민을 하면 정책의 우선순위의 문제이자 분배의 합리성에서 해답을 찾을 수도 있을지 모를 일이다.

생활수준이 높아진 우리나라 국민들은 이제 기꺼이 환경개선을 위해 비용을 지출할 의향을 가지고 있다. 다만, 지출방식의 합리성과 효율성이 중요한 의사결정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육상과 해상 모두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과 효과적인 분배를 통해 오염원 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현재 항만도시는 육상과 해상오염원에 대한 관리와 재정분배 기준에 비합리성이 존재하고 있는 듯하다.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부산, 인천, 울산 등 주요 항만도시의 대기오염은 심각한 수준이며, 선박의 미세먼지 배출량은 국내 총 배출량의 약 7%를 차지한다고 발표했다. 특히 국립환경과학원이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초미세먼지 배출 중 항만관련 비중(비도로이동오염원)은 부산 77%, 인천 33%, 울산 36%로 전국 평균 18%보다 월등히 높다. 반면, 항만 오염원 관련 예산은 도로 부문에 비해 절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제2차 수도권 대기환경관리 기본계획’에 의하면 전체 예산(1조 9,366억 원, ‘17~’24)의 73.1%가 자동차 관련 예산으로 항만 관련 예산(선박 DPF 부착)은 1% 조금 넘는 300억 원에 불과해서 실로 비합리적으로 예산이 배정돼 있는 것이다. 환경관련재정의 비합리적 집행의 근원은 공무원들의 안일한 행정보다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국민들이 이러한 문제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데에 기인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항만도시는 깨끗하고 아름답다는 선입견이 만들어낸 문제일 수도 있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항만도시내 오염원의 영향 정도를 정확하게 분석해서 합리적인 재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두 번째는 항만환경 개선 사업을 통한 새로운 고부가가치 창출과 질 높은 고용창출로 연결하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고부가가치 친환경 선박건조를 통한 조선산업의 재기가 가능하며 육상전원공급장치(Alternative Maritime Power : AMP기술과 같은 친환경 기술의 활성화를 통한 신 산업기반 구축이 가능하고 스타트업(start-up) 기업을 활용한 오염물질 정제 기술 등으로 청년층 신규 일자리 마련 등이 가능할 것이다(<그림-3> 참조). 환경개선은 항상 막대한 돈의 지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전환을 통해 돈을 벌수 있는 수단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마지막은 항만 혹은 항만도시 자체에 에너지 순환률 100%의 친환경 에너지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항만도시 혹은 항만에서 소비되는 에너지 전체를 바다와 연안이라는 공간을 활용해 해상풍력, 태양광, 조력 등을 통해 생산해 자급자족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화석연료나 원자력을 통해 생산된 전기에너지의 공급 없이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생성하고 소비하며, 에너지 소비로 인해 발생되는 환경오염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그림-4> 참조). 아마도 이러한 항만 에너지 체계가 구축될 경우 우리가 생각하는 맑고 깨끗한 항만과 바다가 다시 우리에게 돌아 올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경제와 환경을 상호 주고받는 이분법적 생각에서 벗어나서 항만공간의 환경개선을 통해서 국민건강 개선, 산업 활성화, 새로운 일자리와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항만도시의 환경관리 정책을 서둘러서 정비할 필요가 있다. 가보고 싶고, 머물고 싶고, 살고 싶은 항만도시는 단순한 지자체의 슬로건이 아니라 진정한 지역의 환경개선을 통해서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주요 항만도시 정책 관계자, 중앙 정부의 관련 부처 그리고 이 공간의 주인인 국민들이 환경에 대한 바른 인식과 미래의 먹거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분명히 가질 필요가 있다.

 

< 물류와 경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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