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3 09:30

판례/ “워크아웃 중인 조선소의 강재절단, 유효한 대금 청구일까요?”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해양수산부 고문변호사)
<6.29.자에 이어>

1. 시작하며 

조선업계에는 선박 건조 대금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선박 건조의 초기 공정인 ‘강재절단(Steel Cutting)’이 이루어지면 매수인은 2차 분할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조선소가 워크아웃(채권단 공동관리)에 들어간 경우 매수인이 이를 ‘이행거절’이나 ‘청산 절차’로 간주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지가 실무상 큰 쟁점이었다.

이번 호에서는 워크아웃 절차 중인 조선사가 실시한 강재절단의 효력과, 이에 따른 계약 해제의 적법성을 판단한 서울고등법원 판결(2013나2010367)을 통해 조선 건조 계약의 법리를 심층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2. 사실관계

가. 원고는 워크아웃 절차가 개시된 국내 조선사(21세기조선)이며, 피고 시윙은 선박 매수인(SPC), 피고 KB캐피탈은 매수인에게 1차 선수금을 대출해주고 계약상 권리를 담보로 잡은 금융기관이다.

나. 원고와 피고 시윙은 화학제품운반선 5척에 대한 건조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서에는 ‘강재절단 시 2차 분할금 500만 달러를 지급한다’는 조항과 ‘조선소에 해산·청산과 유사한 절차가 개시되면 매수인이 해제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다. 원고(조선사)의 경영이 악화돼 워크아웃이 개시되자, 피고들은 “워크아웃은 청산 절차와 유사하므로 계약을 해제하겠다”고 통보했다. 반면 원고는 예정대로 ‘강재절단’을 실시했으니 2차 분할금을 달라고 요구했고, 피고가 이를 거절하자 오히려 피고의 대금 지체를 이유로 계약을 해제해버렸다.

라. ① 워크아웃이 계약상 해제 사유인 ‘청산/해산’에 해당하는지, ② 조선소가 실시한 강재절단이 대금 청구를 위한 적법한 이행인지가 문제 됐다.

3. 법원의 판단

서울고등법원(2심)은 다음과 같이 판시하며 조선사(원고)의 손을 들어주었고 상고기각 돼(2014다233176) 최종 확정됐다.

가. 워크아웃이 계약 해제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

법원은 “워크아웃은 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해 경영을 정상화하는 것이 목적인 절차로, 기업 소멸을 전제로 하는 ‘해산’이나 ‘청산’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보았다. 따라서 워크아웃 개시만으로 매수인이 계약을 해제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나. 강재절단이 유효한지 여부

피고들은 조선사가 엔진 발주도 취소한 상태에서 대금을 받아내기 위해 ‘형식적’으로 철판만 자른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1) 계약서상 ‘어떠한 분쟁에도 불구하고 매수인은 분할금 지급을 유보할 수 없다’는 조항은 절차의 실질성 여부로 인한 분쟁을 방지하려는 취지라는 점, 2) 미국의 ABS 선급검사관이 강재절단을 확인하는 서류(Stage Report)를 발행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2차 분할금 지급기일은 도래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 3) 비록 일부 자재 계약이 취소됐더라도, 조선사가 설계도면을 준비하고 강재를 보유하는 등 건조 의사가 전혀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는 점을 종합해 법원은 피고 시윙이 2차 분할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은 것이 계약 위반이므로, 이를 이유로 한 원고(조선사)의 계약 해제가 적법하며, 원고는 선수금을 반환할 의무가 없다고 보았다. 

4. 판결의 검토

워크아웃을 청산 절차와 동일시해 계약 해제를 인정할 경우, 회생을 도모하는 기업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리는 가혹한 결과를 초래한다. 법원이 워크아웃과 청산을 엄격히 구분한 것은 기업 구조조정 제도의 취지를 살린 정당한 판단이다.

1) 선박 건조는 수천 개의 부품이 들어가는 장기 프로젝트이므로, 매 단계가 완벽해야만 대금을 지급한다고 하면 공정마다 분쟁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2) 특히 영국법이 준거법인 국제 건조계약에서는 ‘선급의 확인(Classification Confirmation)’을 대금 지급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국제적 표준이다. 3) 본 판결은 조선사가 다소 경영상 어려움을 겪더라도, 선급의 객관적인 공정 확인이 있다면 매수인은 일단 대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다만, 조선사가 실제 선박을 인도할 의사나 능력이 전무함에도 오로지 선수금을 편취할 목적으로 철판을 자르는 ‘사기적 이행’까지 보호받아서는 안 될 것이다. 본 사안에서는 조선사가 도면을 작성하고 대체 설계를 검토하는 등 노력을 지속했다는 점이 입증됐기에 보호받을 수 있었다.

본 판결은 준거법인 영국법의 관점에서 강재절단의 요건을 해석했다. 영국법상 ‘이행거절(Repudiatory Breach)’이 성립하려면 상대방의 계약 이행 의사가 완전히 결여돼야 하는데, 법원은 원고가 선급 확인을 받고 도면을 준비한 행위를 ‘이행의 착수’로 보아 피고들의 이행거절 주장을 배척한 것이다.

5. 결론에 대신해

조선업종과 같은 장치산업에서 워크아웃과 같은 경영 위기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해외 매수인이나 금융기관은 국내 조선사의 워크아웃 소식이 들리면 선수금을 회수하기 위해 각종 법리적 공세를 펼친다.

그러나 우리 법원은 계약서의 문언과 국제적 관행을 중시해, 단순한 재무적 곤란만으로는 계약의 효력을 쉽게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국내 조선업계는 이러한 판례를 바탕으로 공정 관리의 투명성을 높이고, 대외적으로는 워크아웃 상태에서도 건조 능력이 건재함을 입증하는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아울러 금융기관 또한 담보이전계약 체결 시 해제권 행사의 요건과 시기를 보다 정교하게 설계해 리스크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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