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1 16:04

더 세월(40)

저자 성용경 / 그림 하현
36. 가족 모임
 


 
2015년 5월 21일,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이 날의 의미를 알고는 많은 부부들이 침대 시트를 갈아 끼우고 이불을 바꾸기도 한다. 여름으로 넘어가려는 계절에 얇은 이불로 바꾸는 건 당연하다고 태연하게 말할 수도 있지만, 침대까지 바꾸는 부부가 있다면 의미를 한번 점검해봐야 한다. 그렇다. 부부의 날.

이혼 전이었더라면 서정민은 부인 진정혜를 백화점에 데리고 나가 명품 하나쯤 사줬을 것이다. 워낙 명품을 좋아하던 여자라 좀 무리를 해서라도 그러는 게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한 번 칭찬이 두 달을 먹여 살린다면, 한 번 명품은 여섯 달을 먹여 살린다는 속담인지 우스갯소리인지 모를 말이 회자되는 것도 이런 이유 아닐까.

오늘은 3부자가 함께 집을 나왔다. 모처럼 외식을 하기 위해서다. 아버지 서정민, 장남 준호 그리고 차남 준서. 중2 준서가 서쪽에서 해가 떴냐는 듯이 아버지를 빤히 쳐다보았다.

“인마, 아버질 그렇게 쳐다보는 거 아냐.”

서정민은 준서에게 알밤을 하나 먹였다. 그러자 고1 준호가 나섰다.

“근데, 아빠, 오늘 정말 어쩐 일이세요?”

“야, 너까지 왜 이래! 이것들이 아버질 뭘로 보는 거야.”

말이야 바른말이지 애들과 함께 외식 나가본 게 기억이 제대로 안 날 정도다. 솜씨 좋은 할머니가 입맛에 맞는 음식을 잘해주지만 그것과는 다른 문제다.

“어쨌든 그동안 미안하다. 사고도 있었지만 너희들에게 무관심했던 게 사실이야.”

두 아들의 어깨를 당겨 크게 포옹해줬다. 그들이 불평 없이 학업에 열중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애들 엄마한테 가지 않은 것만 해도 자존심을 한껏 세울 만한 일이다. 물론 엄마가 최근 남자가 생겼다는 걸 알긴 했지만.

“아빠, 오늘 특별한 날이죠. 맞죠?”

장남이 묻지 않아도 될 질문을 한다.

“특별한 날이긴…?”

“제가 일부러 달력을 봤어요. 21일 날짜 밑에 적혀 있더라구요.”

서정민이 깜짝 놀랐다. ‘요즘 애들 보통내기가 아니라니까.’ 능청 떠는 건 자신의 어릴 때를 보는 것 같아 웃음이 났다.

“네들이 고것까지 다 알어?”

“두 사람이 한 몸 되는 거 성경에도 나와 있어요.”

교회학교에 그냥 다니는 게 아니구나. 성경 구절을 알다니 고맙기까지 하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두 아들이 함께 곡을 붙일 때는 눈물이 핑 돌 정도였다. 엄마와 아빠가 함께 있어 주지 못한 미안함이 울컥한다.

“아까 이순정 아주머니한테서 전화 왔어요. 할머니가 받으셨는데.”

차남 준서가 말했다. 휴대폰을 두고 잠시 바깥에 나가 있을 때 전화가 왔었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다른 사람 전화는 잘 받지 않으나 이순정 전화는 받는다. 업무상 긴급한 일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 외식은 이미 예약이 돼 있다. 파스타 요리를 잘하는 압구정역 부근의 레스토랑. 특별한 날에 의미 있는 모임을 가지려 했었는데 애들이 눈치를 채 이벤트가 얄궂게 돼버렸다. 이순정은 조카 홍소라를 데리고 나오기로 했다. 이런 가족 모임은 처음이다. 결국 저녁 예약을 아이들에게 미리 설명해줘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서정민 3부자가 먼저 레스토랑 파스타구치에 도착했다.

조금 후 이순정이 홍소라의 손을 잡고 들어섰다.

“소라가 오늘 따라 정말 예쁘네!”

서정민은 소라의 모습에 놀랐다. 두어 달 동안 훌쩍 커버린 느낌이다. 노란 레이스가 달린 하얀 원피스가 돋보였다. 초등학교 6학년을 이렇게 꾸민 것은 아마도 이모 이순정의 디자인 감각에서 나왔을 것이다. 노란색은 특별한 의미를 담은 건가.

아이들은 처음 만남이지만 어색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소라가 워낙 명랑한 표정이어서 마치 한 식구가 모인 자리가 돼버렸다.

“소라야, 이쪽은 준호 오빠, 저쪽은 준서 오빠야. 이름 기억할 수 있겠지?”

자리에 앉았을 때 이모가 소개하자 소라는 서슴없이,

“준호 오빠, 준서 오빠, 안녕!”

자연스럽게 인사를 했다. 오히려 두 남학생이 쭈뼛대듯 “소라, 안녕!” 하는 게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이렇게 만나는 거 보기 좋지 않아요?”

이순정이 말했을 때 서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가족의 가장이 된 것처럼 그는 뿌듯함마저 느꼈다.

“친자매같이 전혀 어색하지 않으니 신기하구려.”

“회장님께서 이런 모습 보시면 참 좋아하실 건데. 우리 두 사람 문제도 더 긍정적일 테고요.”

파스타의 양념이 묻은 손가락을 빨아 먹고 나서 이순정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자신의 말을 아이들이 눈치 채지 못한 걸 확인한 그녀는 싱긋이 웃었다. 서정민은 준호를 힐끗 쳐다보고 이순정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준호가 오늘이 ‘부부의 날’인 걸 알고 있더라니까.”

좀 더 크게 말해도 아이들은 듣지 못했을 것이다. 워낙 먹기에 바쁘고, 그들의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준서는 인터넷방송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BJ효근 형 요즘 인기짱이야. 연봉이 일억이 넘는대.”

준서의 말에 준호는 엄지손가락을 올려 보임으로써 동의했다. BJ(Broadcasting Jockey: 콘텐츠 제작자)는 인터넷 개인방송 진행자를 말한다. 그들은 대본을 혼자 쓰고 제작도 스스로 한다. 먹방, 게임방, 공부방 등 다양한 콘텐츠로 인기를 얻고 있다. 효근은 인터넷 방송국 ‘아프리카 TV’에서 피파 대통령으로도 불린다. 피파 회장 블래터의 경쟁자는 아니지만.

“게이머의 본좌가 임요한이란 건 알어?”

준호는 자신이 조금 알고 있는 게임 이야기로 관심사를 들고 나왔다.

“형, 요즘은 달라. 임이최마 구루(스승)들이 엎치락뒤치락 하는 걸 몰라? 경쟁이 얼마나 심한데.”

동생이 형보다 한 수 위로 보인다. 자존심이 조금 상했으나 형은 끗발을 들이댈 수밖에.

“준서, 넌 웹툰뿐만 아니라 게임에도 빠졌군.”

“아냐, 게임은 쬐끔만 해. 난 앞으로 웹툰 작가가 될 거야. 세월호 만화도 그릴 거고. 단원고 형들과 누나들도 등장시켜서….”

아이들 대화 속에서 갑자기 세월호 이야기가 나오자 서정민과 이순정의 귀가 번쩍했다. 서정민은 작은아들의 장래 희망이 만화가라는데 놀랐고, 특히 세월호를 그리겠다는 데 더 놀랐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하필 세월호야?”

잊고 싶은 세월호를 녀석이 건드린 것이다. 애들 이야기에 너무 민감할 필요 없다고 이순정이 말하지 않았다면 서정민은 하마터면 준서에게 언성을 높일 뻔했다. 준호가 적절한 시점에 대화를 이었다.

“아빠, 준서는 쿠베라 광빠예요.”

옆에서 듣고 있던 이순정이 광빠가 무슨 뜻이냐고 묻자 ‘미친 빠순이 빠돌이’의 줄임말로 광팬을 뜻한다고 준호가 설명했다. 알아듣기 힘든 두 오빠들의 이야기에 소외감을 느꼈는지 소라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오빠들 이건 모르지? 슈퍼맨 프로에서 대한 왕자, 민국 마녀, 만세 인어공주 나온 거 말야. 삼둥이들 넘 웃겼어.”

두 오빠는 그런 TV 프로는 안 봐서 모르겠다는 표정들이다. 오빠들이 몰라 하는 것에 소라는 재밌어한다. 이야기 중에도 먹는 것은 쉼이 없다. 준호가 훈제 소시지 두 개를 소라의 접시에 놓아줬다. 이번엔 준서가 달팽이 버터구이를 얹어줬다. 두 오빠들이 경쟁적으로 소라에게 관심을 보이는 통에 소라의 접시가 수북해졌다.

“오빠들, 왜 이래. 발레 선생님이 살찌면 안 된다고 하셨단 말야.”

발레 이야기에 귀가 솔깃한 오빠들. 네가 발레를 한다고? 형과 동생은 다시 한 번 발레 소녀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날씬하구나. 사춘기는 이런 상황에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

아이들 대화에 잠시 끼었다가 두 어른은 자신들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배상금은 받아야겠지요?”

이순정이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다. 가족협의회에서 당분간 수령하지 말자는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법 시행이 3월 29일이니까 9월 말까지 신청하면 돼. 학생피해자 유족들은 어떻게 할지 모르겠네.”

“일단 수령하면 국가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잖아요.”

국무총리 소속인 ‘416세월호참사 배상 및 보상 심의위원회’에서 정한 내용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서약을 하니까. 일단 회장님과 의논한 다음에 결정합시다.”

서정민은 딸을 잃은 아버지의 의견을 존중하자는 뜻으로 그렇게 말했다.

이팔봉 회장은 아침에 달력을 보았다. 5월은 그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특별한 달이기도 하다. 어린이날 손녀 소라와 놀았고, 어버이날 딸 순정이가 카네이션을 꽂아줬고, 스승의 날 서정민이 꽃다발을 들고 찾아줘서 고마웠다. 사업의 스승이라고 치켜세울 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무척 쓸쓸하다. 3년 전 하늘나라로 가버린 아내 생각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매스컴의 책임도 있다. 없던 부부의 날을 만들어 홀아비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으니 말이다.

“아빠, 집에 그대로 계세요. 케이크 사가지고 갈게요.”

식사가 끝나갈 무렵 이순정이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서 사장과 아들들도 함께 간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준호와 준서 형제를 한 번 본 적이 있기 때문에 낯설지는 않다.

“생일날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케이크는?”

이팔봉 회장은 기분이 좋았다. 딸이 시집을 갔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이런 날을 챙겨주는 게 고마웠다. 딸과 서 사장이 사업 아닌 어떤 관계를 이어가는지 잘 모른다. 약간의 눈치 부스러기 정도만. 승낙하지 않았으니 주변을 맴돌며 때를 기다리나?


<이 작품은 세월호 사고의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한 창작물이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기업 지명 등은 실제와 관련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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