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8 16:04

더 세월(41)

저자 성용경 / 그림 하현
37. 침몰시각 논쟁

 

“날짜와 시간이 뭐가 그렇게 중요해. 산 사람의 호기심일 뿐이지.”

사람들이 침몰시각을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에 서정민은 자신도 모르게 신경질을 부렸다. 신문을 보고 일러주는 이순정이 무슨 죄가 있으랴. 둘밖에 없는 사무실, 다정함으로 공간을 가득 채워도 모자랄 판에 서정민은 요즘 세월호 이야기만 나오면 부쩍 신경을 곤두세운다.

공식적인 세월호 침몰 시각과 승객의 사망 날짜 사이에 논란이 있다는 기사는 잠자던 그의 불안감을 다시 깨웠다. 침몰한 지 일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이런 논쟁으로 살아남은 자를 괴롭히나. 그는 화가 끓어올랐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세월호 침몰 원인을 두고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잠수함 충돌, 암초 접촉 등 음모설까지 가세했다. AIS(자동식별장치) 항적 화면에 의문의 물체가 표시된 게 알려지면서 의혹에 불을 지폈다.

“의심 받을 만하네요. 정체불명의 물체도 있었고….”

이순정이 음모론의 입장에서 말했다.

“해상에 쏟아진 컨테이너박스일 수도 있지. 더 알아봐야겠지만.”

서정민은 미확인 물체의 정체를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추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사고 선사와 정부의 석연치 않은 기록은 불필요한 의혹을 확대재생산했다. 특히 사고 보고가 오전 8시에 있었다고 적힌 청해진해운의 자체 메모는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회사는 이것이 어디까지나 자체 메모일 뿐 공식적인 기록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해수부에서도 침몰이 8시 30분에 시작됐다는 기록이 나오자 실무자의 단순 착오로 돌렸다.

그렇더라도 공식적 참사 발생 시각은 있어야 했다. 조타실 키가 듣지 않은 시점이 언제일까?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 일단 이 시점을 사고 시각으로 하는 데 대체적으로 동의했다. 그럼 탑승자들이 사망한 날짜는?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한 2014년 4월 18일로 통일했다. 왜? 생존기간을 이틀 더 늘려주기 위한 배려인가? 이 부분에서 서정민은 또 분노했다. 서류상으로 이틀을 더 살려둔다고 이미 죽은 영혼이 깨춤을 추겠는가.

“배에서는 좀 버틸 수 있는 곳이 있다면서요.”

이순정이 어디서 들은 바를 이야기하자 서정민은 헛웃음을 보였다.

“뭐, 에어포켓을 말하는 것 같은데, 물론 있을 수 있지. 몇 시간 더 버틴 사람도 있을 수 있고…. 그렇더라도 선체 안으로 1미터도 못 들어간 대한민국 해경이 그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희생자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은지… 내, 참.”

말해 놓고 그는 부르르 치를 떨었다.

어젯밤에 서정민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 희미한 불빛 아래 한 여자가 나타나 하체를 다 보여주려는 듯 음흉하게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는 혼란스러웠다. 혹시 기억이 왜곡된 건가. 내가 알지 못하는 기억의 어느 한 조각 아닐까. 이순애의 얼굴이 아니라고 부정하면서도 여자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며 여자는 사라졌다. 잠에서 깬 그는 식은땀을 흘리다 등을 대고 있던 벽의 서늘함을 느끼고는 화장실로 들어가 오래도록 오줌을 누었다. 그리고 일부러 성기를 크게 흔들어 보았다. 누구에게 닥칠지 모를 죽음에 대한 공포를 털어버리려는 주술의식 같았다.

두 사람만 있는 사무실에 정적이 흘렀다. 생각에 잠긴 서정민을 향해 이순정이 물었다.

“참, 아까 전화로 할 말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 그랬지. 아~”

그는 생각이 잘 나지 않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최근 들어 기억이 깜빡할 때가 많아졌다. 시답잖은 농담에도 곧잘 웃어주는 이순정이 없었다면 자살을 시도한 세월호 생존 동료처럼 그의 행동도 위험 수위까지 갔을는지 모른다. 그에게 이순정은 삶의 의욕을 불어넣어주는 풀무와도 같다. 조금 전 화낸 게 미안했는데 이순정이 먼저 말을 걸어와서 안심이 됐다.

“기억이 잘 안 나면 이따가 말해줘요.”

그녀는 환자를 대하는 방법을 완벽하게 아는 것처럼 그를 능숙하게 대했다. 기억을 되살린 서정민은 너무 늦지 않게 자신의 계획을 전할 수 있게 해준 기억세포에 고마움을 전하며 이순정에게 말을 건넸다.

“오늘, 우리 특별한 일 없지요?”

“건자재는 내일 선적이라 오늘은 특별한 거 없어요.”

그러면서 그녀는 뭔가 불안해졌다. “근데 왜요?”

“….” 대답 대신 의자에서 일어난 서정민은 창가로 가 창밖을 한참동안 내려다봤다. 그의 시선이 머문 곳은 광화문광장 한 편에 마련된 세월호 가족 텐트였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이곳을 ‘세월호광장’이라고도 부르기 시작했다. 노란리본이 햇살에 반짝이는 곳. 그는 이윽고 고개를 들고 이순정을 바라봤다. 그의 시선이 그녀의 시선과 허공에서 얽혔다. 심각한 이야기는 서로 피하려고 노력해왔던 그들이다. 부자연스러운 웃음이 입가에서 흘러나올 때 그는 천천히 입을 뗐다.

“지금…요, 용인으로 갑시다. 언니가 나한테 할 이야기가 있는가 봐.”

어제저녁 꿈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꿈속의 여자 형상이 불만을 가득 품은 듯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상대방이 이미 동의한 것처럼 슬리퍼를 벗고 구두로 바꿨다. 이순정은 당황했다. 남자의 건강 상태가 걱정되기까지 했다.

“갑자기 이러시면 당황스러워요.”

몽유병 환자를 대하는 것 같기도 하고, 유령과 대화하는 착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용인에는 이팔봉이 일찌감치 조성해 놓은 가족묘지가 있다. 아버지가 조성해 놓은 묘지에 언니 이순애가 묻혀 있다. 황당하기도 하여 그녀가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그가 말한다.

“꿈에서 언니를 만났어요. 위로를 원하는 것 같아.”

서정민은 꿈 내용을 이야기하지 않았고, 이순정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피자 위의 토핑처럼 무슨 위로가 되랴 생각하며, 환자가 나설 채비를 하니 그녀는 따라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2015년 5월 11일,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이 시행되던 날 그들은 용인으로 달렸다. 두 사람이 차를 탈 때 운전은 늘 이순정의 몫이다. 서정민은 목련꽃을 무릎 위에 놓고 정성스레 챙겼다.

이제 특조위 활동에 기대를 걸어도 좋을까. 특조위는 지난 1월 1일 설립된 후 다섯 달을 허송세월했다. 시행령이 제대로 협의되지 못한 탓이었다. 사람들의 기대에도 특조위 활동은 그로부터 일 년 만인 2016년 6월 30일에 종료됐다. 만족한 결과가 나올 리 없었다.

가장 한심스러운 사실은 살아남은 172명이 모두 제 발로 탈출한 사람들이지 배 안에서 구조된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사고 첫 날 잠수사들이 수습한 피해자 시신이 10구가 채 안 될 만큼 당시 구조작업은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정부는 2014년 11월 11일 잠수 수색 종료를 선언했다. 7개월 동안 진행된 선내 수색은 9명의 미수습자를 남긴 채 일단 멈췄다. 계속되는 수색에서도 실종자가 발견되지 않은 데다가 겨울 추위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후 시신 유실과 선체 훼손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세월호 인양을 추진하기로 했다. 선체 자체가 증거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의 의견을 받아들인 결과이다. 선체 인양은 세금 낭비이고 특조위 활동은 세금 도둑이라는 일부의 주장이 있었지만 막대한 나랏돈을 쓸 만한 가치가 있다는 데 힘이 실렸다.

묘지에 도착한 두 사람은 이순애의 묘 앞에 목련다발을 놓았다.

-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

서정민이 박목월 시인의 시를 읊었을 때 두 사람은 약속한 듯이 눈물을 흘렸다. 눈물은 서로 닦아주는 거라는 듯 그들은 손수건을 꺼내 상대방의 붉어진 눈시울을 닦아주었다.


<이 작품은 세월호 사고의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한 창작물이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기업 지명 등은 실제와 관련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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