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2 16:02

더 세월(43)

저자 성용경 / 그림 하현
39. 수상한 매각
 

세월호 침몰 이튿날 청해진해운은 세월호 쌍둥이배 오하마나호의 인천~제주 운항을 중단한다고 발표했었다. 법원이 압류한 선박이라 어차피 운항은 불가능했다. 나이 28년 된 배를 채권자인 산업은행도 처리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오하마나호는 당초 감정가 105억 원에서 4차례나 유찰된 뒤 2015년 1월에 서동마리타임이라는 민간업체에 28억 원에 낙찰되어 소유권이 이전되었다.


해양계 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서정민의 친구는 6년 전 단체여행단에 껴 이 배를 무료로 탑승한 바 있다. 그때 회사의 홍보용으로 이용된 것 같아 뒤가 씁쓸하다고 고백했다. 그런 그가 오늘 한 방송 기자와 인터뷰하는데, 기자의 질문이 처음부터 거칠다.


“사고원인 규명을 위해 실험운항을 하려는데 왜 오하마나호를 서둘러 해외매각했을까요?”


“단순히 채권회수 차원이 아닐까요.”


교수의 대답이 너무 단순하고 미지근해서 질문을 오히려 길게 하는 기자.


“세월호를 타려고 했던 서울자사고 면목고와 수원 사립여고가 빠지고 하필 단원고가 탔을까요? 권력자 아이와 서민 아이의 바꿔치기 아닌가요?”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세상이 험악한가요?”


“물론 네티즌 사이에서 떠도는 얘기이긴 합니다만….”


“그런 황당한 주장의 뒷감당은 누가 합니까?”


“특조위에서 규명해야죠.”


특조위가 유언비어까지 확인해야 한다? 오하마나호는 원래 단원고가 계약을 했던 배다. 사고 전날 갑자기 세월호로 교체됐고 사고가 발생했다. 기자는 음모론 편에 선 질문을 이어갔다.


“유 회장이 해외를 수십 번 들락거렸는데도 왜 출입국기록이 없을까요? 국정원의 비호가 있었던 거 아닐까요?”


“출입국관리 문제겠지요. 근데 이런 억측으로 얻는 이익이 뭐죠?”


“혹시 계획한 종교적 인신제사라든지….”


교수는 구원파가 아님에도 이런 질문에 심한 불쾌감을 느꼈다.


“인당수 제물로 바쳐진 심청이처럼 학생들도 그렇게 희생됐단 말씀이신가요?”


“말하자면….”


“심청전을 한 번 더 읽어봐야겠네요.”


교수는 갑자기 시니컬해졌다. 특조위는 당초 오하마나호를 세월호 사고 항로에 투입하려고 했다. 시험운항으로 얻은 데이터를 사고원인 규명에 활용한다는 구상이었으나 새로운 소유주인 서동마리타임은 수리 후 곧바로 인도로 배를 옮겨 해외 매각하거나 분해해서 고철로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특조위는 하는 수 없이 해외 반출 전에 150분 동안 선체 안을 살펴보는 것으로 조사를 마무리 해야만 했다.


배는 1년 넘게 인천에 묶여 있었으나 특조위 활동 개시가 늦어진 탓에 선박 조사는 버스 떠난 뒤에 손 흔드는 격이 되고 말았다. 정작 오하마나호는 인천항에서 2015년 8월 베트남으로 출항했고, 그 이후 행방이 묘연했다. 인도로 출항한다는 뉴스는 행선지의 혼선을 주기 위한 구매자의 작전이었다.


그러다가 그해 가을. 서정민은 영국 런던에 있는 선박 브로커로부터 오하마나호 동정을 들을 수 있었다. 일전에 세월호 모형도를 보내준 적이 있었던 터라 브로커가 이 쌍둥이배를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브로커 다니엘은 사흘간의 수소문 끝에 배의 정체를 밝혀냈다.


“배 이름이 ‘호찌민다낭’으로 바뀌었습니다.”


그해 늦은 여름 다낭항에 도착하여 선명을 바꾸고 몇 가지 수리를 한 후 베트남 연안 여객선으로 운항 허가를 받았다. 호찌민과 다낭 간을 운항한다는 의미로 선명이 지어진 것이다. 선주는 서동마리타임에서 다낭크루즈로 변경됐다. 배의 행방을 알았을 때 서정민은 기발한 계획이 떠올랐다.


베트남으로 가자. 관광으로 이 배를 타자. 거기에는 들여다 볼 것이 많다.


머리에 떠오른 것을 앞뒤 생각하지도 않고 이순정에게 말했다. 사무실에서 베트남 커피 지세븐을 앞에 두고 초콜릿을 포크질하며 햇살 좋은 가을 오후를 즐기던 그녀는 갑작스러운 제안에 적잖이 당황했다.


“우리가 함께 베트남 크루즈 여행을 한다구요?”


지금까지 두 사람은 함께 밤을 새우는 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


“일단 내 이야기를 들어봐요.”


서정민은 두 가지 여행목적을 말했다. 세월호 쌍둥이배를 직접 타봄으로써 사고 당시의 정황을 그녀와 가족에게 이해시키고 특조위에 선박 내부 구조를 찍은 사진과 영상을 제공해 사실 규명을 돕겠다는 것이다. 그의 굳은 결심을 듣고 이순정은 깜짝 놀랐다.


“그게 서 사장님 트라우마를 더 건드리는 거 아녜요?”


“이 경우는 달라요. 순정 씨가 당시 상황을 이해해주면 내 상태가 좋아질 거 같아요. 오히려 언니를 못 구했다는 죄책감에서 해방될 수 있을 거야.”


그녀는 갑자기 모든 언어가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그녀는 한참 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그 위험한 배를 또 타려고요?”


서정민은 세월호 사고는 일어났다는 게 오히려 기적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지구가 거꾸로 돈 것처럼.


“호찌민과 다낭까지 하루 반쯤 걸리는데 베트남 연안은 우리나라보다 위도가 낮아 바다가 잔잔해요.”


이순정을 더 난처하게 하는 게 있었다.


“아빠가 허락할까요? 아무 사이도 아닌 우리를….”


“이참에 회장님한테 결혼을 허락받으면 어때?”


처녀인 딸과 이혼남의 결혼을 순순히 승낙할 아버지가 있을까.


“그게 될 법이나 해요? 아빠는 우릴 그냥 동업 관계인 줄만 아신다니까요.”


“그럼, 이렇게 말씀드리면….”


그는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2척의 선박을 매매하는 건으로 베트남 출장을 가는데 한 척은 호찌민시티, 다른 한 척은 다낭에 있어서 두 사람이 나눠서 방선(訪船)해야 한다고 말씀드리자는 것이다. 세상에는 선의의 거짓말이 있는가 하면 불가피한 거짓말도 있다고 하면서 그녀를 설득했고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것조차 못마땅해 하는 이팔봉 회장을 안심시키는 방법은 이 길밖에 없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이팔봉 회장에게 두 사람의 출장 계획을 보고하는 데는 이틀이 걸리지 않았다.


“한꺼번에 둘이 사무실을 비운다고?”


함께 회장 방으로 들어온 서 사장과 딸을 보고 이 회장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공교롭게도 배들이 같은 시기에 각각 다른 항에 입항합니다. 출항하기 전에 두 척을 다 둘러봐야 합니다.”


그럴싸한 설명이었다. 이 회장은 딸의 동의 여부를 확인하려는 듯 시선을 이순정 쪽으로 돌린다. 아버지의 의도를 간파하고 그녀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일 처리 잘하고 돌아올게요. 아빠 딸 믿으시죠?”


이 회장은 ‘너희들 설마 다른 의도는 없겠지’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고, “그럼 볼 일만 보고 바로 귀국하라”고 당부했다.


2015년 10월 초순 오전 서정민과 이순정은 베트남 다낭에 도착했다. 다섯 시간의 비행시간은 그다지 지루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오랫동안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본 것은 처음이다. 비행기의 착륙등이 켜졌을 때 이순정이 불편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서정민은 애매하게 대답했다. “약간, 뭐.” 거짓말이었다. 당신의 향수냄새가 좋았고 허벅지 감촉도 좋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혼남이 밝힌다고 생각할지 모르니까.


선주 다낭크루즈는 다낭에 본사, 호찌민시티에 지사를 두고 있다. 다낭 본사에 세월호 특조위의 서신을 전하고 선박 내 사진 촬영을 허락받았다.


오후 5시 무렵 호찌민다낭호에 승선했다. 그들이 짐을 푼 객실은 서정민이 5층, 이순정이 4층이었다. 이는 세월호 승선 당시 서정민과 이순애의 객실 위치와 비슷하다. 짐을 풀고 곧바로 그들은 옥상 갑판으로 올라갔다. 단원고 학생들이 불꽃놀이를 했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열대지방의 가을 밤바람은 가슴을 뜨겁게 했다.


갑판 위를 산보하며 서정민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찰깍 찰깍! 연돌을 올려다보고 찍었고, 상갑판으로 가서 뱃머리 앵커와 뱃전의 사다리를 내려다보며 찍기도 했다.


이순정은 내용도 모르고 따라다녔다. 선장은 선주의 사진 촬영 허가서를 제시하자 친절하게도 여성 항해사로 하여금 서정민을 안내하게 했다. 내일 낮엔 화물창과 기관실 복도 등 구석구석을 찍고 호찌민항에 도착해서는 화물용 출입구인 램프의 생김새를 사진에 담을 요량이다.


다낭을 출항하는 시각은 세월호가 인천항을 출발했을 때와 거의 같은 늦은 저녁이었다. 안개가 짙게 내렸던 인천 앞바다와 달리 이곳 다낭항은 바다는 맑고 하늘에는 별이 총총했다. 두 사람은 옥상 벤치에 앉아 남십자성과 여러 별을 헤아렸다. 서정민은 별의 특성을 설명해주었다. 항해사 출신의 진면목이 나오는 순간이다.


“저기 십자 모양의 밝은 별들이 보이지. 저게 남십자성이라는 건데 저위도 지방에서는 남쪽을 알아내는 데 편리한 별이라고. 고위도 지방에서 북극성이 북쪽을 가리키는 것처럼. 항해사들에겐 방향 안내자라고 할까….”


‘요즘은 휴대폰으로도 위치를 알 수 있는데….’ 그녀는 문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서정민은 바다에서 맨몸으로 표류한다고 가정하면 이게 굉장히 유용하다고 말하면서 옛날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로 착각한 건 날씨가 나빠 별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일 거라는 추정을 내놨다.


“이제 객실에 가서 쉴까요.”


열심히 듣던 이순정이 피로한 기색을 보였다. 아라비안나이트 같은 별 이야기는 내일 계속하도록 하고, 이제 방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두 사람의 어깨에 작은 이슬이 맺혔다.


매점에 들러 와인 한 병을 샀다. 선상 바에 가서 마시자고 그녀가 제안했으나 서정민은 자기 방으로 이순정을 데리고 갔다. 일 년 반 전 세월호 분위기를 재연하고 싶었다.


“왜 그때의 분위기에 집착하세요? 언니를 잊지 못하시는 거예요?”


두 개의 와인 잔을 채운 후 이순정이 말하자 그의 반응은 단호했다.


“정반대야.”


“그럼 왜 그날로 돌아가고 싶은 거처럼 하세요?”


“나는 이제 언니를 잊을 수 있어. 순정씨가 도와만 준다면.”


첫 잔은 쉽게 비웠다. 둘째, 셋째 잔도 비웠다. 뺨에는 붉은 홍조가 띠기 시작했다. 고조된 분위기에 몸부림도 있었다. 두 남녀가 한 방에서 이성을 잃어가는 것을 이팔봉 회장이 알 리 없다. 서정민은 자신을 시험하고 있다. 인간으로 살아갈 능력이 있는가를.


“순정씨 술 깰 때까지 침대에 누워 있어요.”


그녀는 순순히 서정민의 침대로 올라갔다. 올라간 것이 아니라 그가 안아서 올려놓은 것이다. 두 남녀는 죽은 사람 살리라는 식으로 격렬하게 껴안았다. 그러나 알코올 기운 때문에 그들의 팔은 쉽게 풀어졌다. 두 남녀의 견고한 성(城)은 허물어지지 않았다.


새벽에 술이 깨었을 때 그는 이순정을 그녀의 방으로 데려다 주었다. 아침을 잊은 채 두 사람은 각자의 방에서 깊은 잠에 취해 있었다. 출항을 저녁에 한 탓에 바다에서 이틀 밤을 보내야 했다.


세월호에서 일어난 일은 밤새 일어나지 않았다. 배가 흔들려 가슴이 철렁거리는 일도 없었다. 세월호 같은 선박의 복원성과 조종성에도 문제가 없었다. 항로 변침 중 잠시의 흔들림은 있었으나 배가 기우뚱하진 않았다. 세월호의 미스터리는 파고 또 파고들어야 할 부분이라고 서정민은 생각했다. 모든 가능성을 조사하기 위해 배 구석구석을 열심히 촬영하기로 다짐했다. 세월호의 진실은 깊고도 멀다. 진실을 열심히 당겨 올려야 한다.


새벽에 사이공강을 거슬러 올라간 배가 호찌민항에 도착한 건 아침이었다. 승선 중 두 남녀 사이에 아무 일이 없었던 게 오히려 이상했다. 속박의 끈에서 풀려난 것처럼 서정민은 자유를 느꼈다. 그의 사고(思考) 체계에는 이순애가 이순정으로 취환되고 있는 중이다. 정신과 의사가 어떻게 진단할지 궁금하다.


그들은 호찌민시티에 있는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서울로 왔다. 시내를 관광하고 쇼핑하다 서정민의 밝아진 얼굴을 본 이순정은 기분이 좋았다. 육체관계를 요구하지 않았던 그의 인내에 경외감마저 들었다.


“이 남자를 치유할 수 있을 거 같아.”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둘은 자주 눈을 마주쳤다. 숨결을 받아주는 아량이 늘었고, 다정하게 포옹하는 횟수도 잦아졌다.



<이 작품은 세월호 사고의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한 창작물이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기업 지명 등은 실제와 관련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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