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북극 개척 활동은 9년째 멈춰 있다. 선사들의 운항 실적은 2013~2016년 단 4년에 그친다. 지난 2016년 SLK국보, 팬오션의 화물 운송 이후 우리나라의 북극 이용은 전무한 실정이다.
반면, 러시아와 중국은 협력을 강화하며 북극항로에서 운항 경험을 쌓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선사들이 북극항로에 진출하려면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 화물 유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양진흥공사는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북극항로 개척방안 및 선결과제 점검 토론회’를 열고 북극항로 개척의 필요성과 실행 방안을 놓고 학계와 업계의 의견을 청취하는 시간을 가졌다.
| ▲왼쪽부터 홍성원 영산대학교 북극물류연구소 소장, 이명호 폴라리스쉬핑 팀장, 이명욱 팬오션 팀장, 이상철 HMM 팀장 |
佛 CMA CGM, 대만 에버그린등 북극항로 무항해
이날 해운업계에선 북극항로 진출 최대 이슈로 경제성 확보와 환경 보호를 꼽았다. 북극항로를 선호하는 화주가 적으면 선사들의 북극항로 운송 참여율은 저조할 수밖에 없다. 운송 화물이 많아야 선사 입장에서도 경제성을 근거로 북극항로에 뛰어들 수 있다.
이명욱 팬오션 팀장은 “선사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경제성이다. 북극항로의 경제성을 극대화하려면 화물 최적화나 장기계약 체결 등의 방안이 수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불확실한 통항 정책과 기상 환경, 영업의 한계성, 초기 투자비용 부담, 극지 항해 인력 양성 등도 해운업계의 과제로 꼽힌다. 무엇보다 북극항로의 잠재 화물이 천연자원에만 국한돼 있어 선사들이 경제성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이명호 폴라리스쉬핑 팀장은 “대부분의 선사는 북극항로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지만 액화천연가스(LNG)와 석유, 일부 광물을 제외하고는 경제성을 가진 물량 확보에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항로 특성상 내빙등급의 선박 투자와 극지 항해를 위한 승조원 교육 등에도 큰 비용이 든다는 점도 선사의 고민사항”이라고 덧붙였다.
생태계 보호를 이유로 북극항로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선사와 화주들의 행보도 행사에서 관심을 모았다. 극지방의 해빙 속도가 빨라지면서 북극항로의 통항 시기가 확대될 거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다수의 글로벌 기업은 북극항로 이용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국제 해양환경보호단체인 오션컨서번시(Ocean Conservancy)와 글로벌 스포츠기업 나이키가 2019년 공동출범한 ‘북극 보호 서약’엔 다수의 해운물류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덴마크 머스크, 프랑스 CMA CGM, 독일 하파크로이트·DHL, 대만 에버그린, 스위스 퀴네앤드나겔 등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환경 이슈로 북극항로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북극항로 이용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면 선사들의 선박 운항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상철 HMM 컨테이너선기획팀 팀장은 “선사들은 화주와의 공감대가 있지 않다면 시범 운항이나 정기 운항이 되더라도 화물을 선적 못 할 수 있다. 더불어 일본 ONE, 대만 양밍해운 등 같은 프리미어얼라이언스에 속한 선사들과 같은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운항이 어려워 사전에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홍성원 소장 “한러 협력관계 복원이 급선무”
우리나라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이후를 대비해 러시아와의 협력 관계를 복원하는 게 급선무라는 주장도 나왔다.
홍성원 영산대학교 북극물류연구소 소장은 “중국과 러시아와의 밀착 관계가 지속되면서 우리나라는 컨테이너선 운송, 쇄빙 컨테이너선 건조, 부산항 환적서비스 등에서 사업 기회를 놓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정부는 중국 인도 아랍에미리트(UAE) 튀르키예 등 우호 국가들과 협력을 지속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비우호국가그룹에 속하지만, 러시아가 한국과의 협력을 재개하길 희망할 수 있어 지정학적·국익 추구 관점에서 러시아 정부 유관 부처와 협력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게 홍 소장의 견해다.
특히 홍 소장은 최근 북극항로를 둘러싼 러시아와 중국의 협력 관계에 주목했다. 지난해 러시아 국영 원자력기업 로사톰과 중국 뉴뉴쉬핑(Newnew Shipping)은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하고, 북극항로협력 소위원회를 설립했다. 이어 공동조선소를 설립하는 협약을 체결, 4400TEU급 쇄빙 컨테이너선 5척을 건조해 2027년 북극항로 운항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뉴뉴쉬핑은 쇄빙선 3척과 2400~4800TEU급 컨테이너선 9척 등 총 12척을 북극항로에 투입해 해빙기인 7~10월 운영 중이다. 북극항로(Artic Express No.1)의 기항지는 난사-상하이-르자오-톈진-아르한겔스크-상트페테르부르크 순이다.
홍 소장은 “러시아를 향한 서방의 제재가 지속되면서 당분간 외국적 선사들은 북극항로 운항을 피할 것으로 보인다”며 “러시아와 중국이 협력을 강화하면서 당분간 북극항로에서 뉴뉴쉬핑 등 중국 선사들의 독점적 지위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에 대비해 외교적 문제와 변수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북극항로 구축을 지원하는 기금을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선사들의 북극항로 시범 운항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지려면 기금과 인센티브 등의 금융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김정균 해양진흥공사 팀장은 이날 ‘북극항로 금융 및 정보지원 방안’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공사 차원에서 북극항로 개척 기금을 신설해 ▲북극항로 시범운항 비용 지원 ▲북극항로 거점 인프라 투자 ▲북극항로 연계 선박 도입 등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이 밖에 김 팀장은 기관별 업무 전문성과 특징, 인적 자원 등을 고려한 북극해운정보센터를 이원화해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북극해운연구센터(가칭)를 설립해 연구개발 동향 수집·조사와 기술개발·육성 지원 등을 수행하고, 한국해양진흥공사는 북극항로 운항지원센터(가칭)를 구축해 시범운항 데이터 수집·구축, 항로 해빙 운항정보 관리·제공, 선박 정보 분석·제공 등을 별도로 수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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