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리 여행은 배를 탈 때부터 여행지”라는 말이 있다. 선상에서 보내는 시간이 긴 만큼 이곳에서도 즐거워야 한다는 뜻이다. 예전에 선사 직원을 인터뷰하며 들었던 말이 오래 기억에 남은 건 10살 무렵 배를 타고 여행한 경험이 그렇게 좋지 않았기 때문일 거다. 당시 멀미로 고생하며 몇 시간을 누워서 간 기억만이 남아있다.
그러던 차에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카페리선에 승선할 기회가 생겼다. 모두가 ‘빠름’을 추구하는 요즘에 비행기가 아닌 배를 타는 건 기분이 남달랐다. 날씨가 제법 서늘해진 11월 첫날, 한중훼리의 카페리선 <신향설란>호를 타고 중국 옌타이 여행길에 올랐다.
<신향설란>호는 길이 189.5m, 폭 26.5m 규모의 카페리선으로, 여객 700명과 컨테이너 312TEU를 실을 수 있다. 선사는 최신 시설을 갖춘 세미크루즈라고 소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배는 현재 운항하는 한중 국제여객선 가운데 가장 최신 선박이다. 한중훼리의 중국 측 대주주인 코스코가 중국 톈진신강조선에 발주해 2021년 1월에 인도받았다. <신향설란>호는 인천항에서 화·목·토요일, 옌타이항에서 월·수·금요일 일정으로 매주 3항차 운항한다.
승선 직후 눈길을 끈 건 승무원들이었다. 이들은 10월 마지막 날인 핼러윈 콘셉트에 맞춰 복장을 갖추고 승객을 맞이했다. 전원 중국인이지만 제법 한국어에 능숙했다. 한중훼리는 회사 차원에서 별도로 시간을 내 승무원에게 한국어 교육을 시킨다고 했다. 한중 합작 회사인 만큼 중국인 직원이라도 한국어 구사와 한국인 고객 응대 능력을 요구한다고.
이 배의 객실은 단순히 잠만 자는 곳이 아니었다. 죽 늘어선 방문 사이사이에 캐릭터 상품으로 꾸며진 객실들이 보였다. 최근 유행하는 산리오 캐릭터들과 라부부, 작은별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 테마로 다양하게 꾸며진 침실들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가족 단위 여행객을 겨냥한 이 테마 방들은 배 여행의 즐거움을 한층 배가시켰다. 방에서 캐릭터 상품들과 사진만 찍어도 추억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페리 여행 특성상 객실 안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흥미로운 볼거리, 놀 거리로 가득하면 특히 어린 승객들은 배에 친근감을 가지게 되고 또 타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을까. 최신 트렌드에 충실한 테마 방들은 분기마다 직원들이 직접 콘셉트를 선정해 꾸민다고 했다.
실내를 한 바퀴 둘러보고 갑판으로 나갔다. 이곳도 온갖 포토존이 가득했다. <신향설란>호는 하나의 움직이는 포토스폿이었다. 8층 갑판은 거울, 벤치, 조형물 등 사진 찍기 좋도록 꾸며진 장소가 있었다. 위치에 따라 바다와 항구가 배경이 됐다. 갑판에서 보는 일출, 일몰은 절경이었다.
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승객들은 한층 활기를 띠었다. 밖을 보니 어느새 옌타이항에 도착해 있었다. 출항하던 날과 다음날 중국과 인천 사이에 바람이 심하게 불어 평소보다 배가 많이 흔들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하선 준비를 했다. 하선을 기다리는 시간도 설렘으로 다가왔다.
단체여행객, 선상이 주 무대
한국에서 출발할 때는 중국인 관광객이 대부분이었지만 중국에서 돌아올 땐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다수를 차지해 눈길을 끌었다. 최근 한중 간 국제여객선은 중국인 이용객이 90%인데 이번엔 이례적이라고 선사 측은 설명했다.
인천을 출발했을 땐 고국으로 돌아가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과 보따리상(다이궁)들로 가득했다. 이들 사이에 중국 산둥성 지방으로 가을산행을 가는 20여명의 한국인 여행객들이 섞여 있었다. 중국 여행객들은 객실 밖 통로에서 카드 게임을 즐겼고, 다이궁 전용 객실인 7층은 한층 왁자지껄했다.
| ▲선내에는 인형뽑기, 네컷사진 등 다양한 즐길거리가 마련돼 있다. |
반대로 돌아오는 뱃길엔 ‘김○○ 노래교실’ 이름표를 목에 건 장년층이 선박을 가득 채웠다. 이들은 중국 관광을 모두 즐긴 후에도 지친 모습 없이 마지막까지 여행길을 즐겼다. 각지에서 모인 각양각색의 어르신들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노래판’, ‘춤판’을 벌였다. 각 팀별로 나와 노래자랑이 시작됐다. 액션캠과 휴대폰으로 유튜브용 영상을 촬영하기도 했다.
여행길의 마지막 날을 밝히는 해가 뿌옇게 떠오르자 벌써부터 갑판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한국인 중국인 할 것 없이 각자 좋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모여들었다. 모두들 일행에게 “여기가 잘 나온다”며, 여기 서보라고 성화였다. 일렁이는 파도 위에서 머리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보고 있자니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일출을 보려고 바닷가를 여러 곳 가봤지만 바다 한가운데서 해가 뜨는 걸 보는 건 색달랐다.
페리는 서해를 가르며 천천히 우리나라와 가까워졌다. 작은 섬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인천에 도착했다. 선내 로비에는 부지런하고도 급한 한국인들이 벌써 짐을 다 싸들고 모여 있었다.
‘잘 먹고 잘 놀다 간’ 이 여행길에 유일한 불편한 점은 인천항국제여객터미널의 접근성이었다. 인천항국제여객터미널은 지하철과 연결되지 않는다. 유일한 대중교통인 시내버스는 배차 간격이 길었다.
그렇다고 택시를 잡기도 쉽지 않다. 터미널을 오가는 택시가 거의 전무해 콜택시를 부르지 않으면 어려웠다. 실제로 같이 카페리를 탔던 중년의 여성들이 택시를 잡으려고 한참을 헤매는 모습을 봤다. 인천항국제여객터미널의 접근성이 개선되면 한중카페리항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집으로 향하는 길, 인천항국제터미널에서 기자들을 태운 택시 기사가 “배로 중국 가는 거 할 만해요?”라고 물었다. 50대인 그는 지인들과 종종 놀러 다니지만 비행기의 좁은 좌석에 앉아 몇 시간을 가야하는 게 괴롭다고 했다. ‘단체’ 여행이 목적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여럿이서 놀러 간다면 배만한 이동수단이 없어요.”
미니인터뷰/ 한중훼리 뤄젠(Luo Jian, 羅健) 총경리
“고객 중심, 안전은 기본 원칙”
Q. 카페리 운영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뭔가?
안전이다. 카페리 승객과 화주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무엇보다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악천후를 감지할 수 있는 스마트 설비를 선제적으로 도입했는데, 한국과 중국 사무실에서도 날씨를 확인할 수 있다. 화물 컨테이너를 실을 때도 효율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안전을 우선시해 선적한다.
한중훼리는 2024년 한국의 인천해수청에서 안전최우수선박, 2025년 중국의 해사부에서 안전성실선박회사 상을 받았다. 올해 중국 북방지역 해운회사 중에서 이 상을 수상한 건 우리가 유일하다.
Q. 한중훼리가 30주년을 맞았다. 계획한 사업 방향이 있다면?
한중훼리의 중국 본사인 연태중한윤도가 1995년 설립해 올해로 30년이 됐다. 늘 새로운 사업을 모색하고 있다.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최근엔 한중 간 여객사업이 치열해져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다. 화물사업을 중심으로 확장하고 있다. 철도와 연계한 내륙 복합운송 수요를 바탕으로 옌타이항과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를 잇는 복합운송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중국 소비재의 중심지인 이우·광저우 지역 화물을 집중적으로 실어 나르고 있으며, 최근엔 한국 기업 애터미가 옌타이에 자리를 잡았는데 이곳도 주요 고객이 됐다.
Q. 최근 디지털 전환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맞춰 시행하는 사업이 있나?
중국의 로봇 전문기업 루모스로보틱스와 협조해 인공지능(AI)을 탑재한 로봇을 배에 적용해보려 한다. 사람만한 ‘로봇승무원’이 승객들을 안내하고 질문에 응답하는 형태다. 기술 발달로 로봇이 많이 저렴해졌다. 시범 투입 후 정식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또 최근엔 글로벌 소셜미디어인 틱톡과 샤오훙수를 이용해 한중훼리 여객상품을 판매하거나 배를 소개하는 방송도 한다. 직원들이 선상에서 라이브를 진행하기 때문에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 박한솔 기자 hsolpark@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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