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선사들의 공동행위에 공정거래위원회가 개입하지 못하도록 한 해운법 개정안이 국회의 첫 문턱을 넘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는 12월1일 전체회의를 열어 더불어민주당 이원택 의원과 윤준병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해운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의결했다.
농해수위를 통과한 해운법 개정안은 공동행위를 규율한 29조에 ‘신고된 협약(공동행위)은 공정거래법 적용을 배제한다’는 원칙을 적시했다. 또 부당 공동행위를 공정위에 통보토록 한 해운법 29조 5항의 단서 조항을 삭제해 해운사 공동행위의 감독 권한을 해수부로 일원화했다.
대신 이원택 의원의 개정안은 해운사들이 부당한 공동행위를 했을 때 부과하는 과징금 규모를 현행 최대 1억원에서 10억원으로 대폭 상향해 공정위 배제에 따른 규제 공백 우려를 해소했다.
해운법 개정안은 수년간 해운산업의 발목을 잡아온 공정위의 중복 규제 논란을 해소하고 관련 제도를 글로벌 표준에 맞게 재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미국과 일본 중국 싱가포르 등은 해운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해 운임협정을 포함한 선사의 공동행위를 인정하고 있다.
미국은 해운법(Shipping Act)에서 연방해사위원회(FMC)가 해운사의 공동행위 신고 접수와 시장 모니터링을 전담하도록 하고 독점금지법 적용도 면제하고 있다. 일본도 해상운송법에서 국토교통성의 승인을 받은 공동행위는 독점금지법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문화하고 있다.
반면 세계 3대 선사를 보유한 유럽(EU)은 지난 2008년 운임 공동행위를 할 수 있는 해운동맹(콘퍼런스)을 폐지하고 운항동맹(얼라이언스)만 허용해 유럽계 초대형 선사들이 세계 해운시장을 독과점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우리나라는 해운법에서 정기선사들의 공동행위를 허용하면서도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명확히 규정하지 않아 법 해석에 혼선을 빚고 있다.
공정위는 이 같은 제도적 불완전성을 토대로 부당한 공동행위는 공정거래법을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해 국내외 선사 23곳에 총 176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특히 국적선사 13곳은 공정위에게 1461억원에 이르는 과징금 폭탄을 맞았다.
선사들은 공정위 제재가 위법하다고 행정소송을 내 서울고등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끌어냈지만 대법원에선 법 규정의 허점에 발목이 잡혀 아쉽게 패하고 말았다. 대법원은 해운법에 ‘공정거래법 적용을 제외한다’는 명시적 규정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고법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농해수위는 해운법 개정안을 심의하면서 “선박 등 시설 투자와 확보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해운산업 특성상 수요 변화에 따른 신속하고 탄력적인 공급 대응이 곤란한 데다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대형선사가 출혈 경쟁을 통해 중소선사를 퇴출하고 과점화를 강화할 수 있어 중소선사들은 공동행위를 통해 선박 운항 효율 제고와 운임 안정 등 경쟁력을 확보해 대형선사에 대항하고 수요자에 대한 서비스 제고가 가능하다 며 “특히 연근해 항로 중심의 중소선사가 다수인 우리 해운산업의 구조상 공동행위가 필수”라고 검토 의견을 냈다.
한국해운협회 양창호 상근부회장은 법안을 신속히 처리한 농해수위에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이번 개정안 통과는 소모적인 법적 논쟁을 끝내고 우리 해운업계가 해외 선진국들과 동등한 경쟁 기반 위에서 글로벌 공급망 안정화에 전념할 수 있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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