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컨테이너선사 제재가 합법하다고 판결하면서 관련 소송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해운업계는 컨테이너선사들의 공동행위에 공정거래위원회가 개입하지 못하도록 해운법을 개정하는 입법 절차에 돌입했다.
대법원 제3부(주심 엄상필)는 지난 4월24일 대만 컨테이너선사 에버그린이 우리나라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등의 취소 소송’에서 “공정거래위원회는 해운사 공동행위를 조사하고 처벌할 법적 권한이 없다”고 판단한 원심 판결을 재판관 만장일치로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서울고법은 지난해 2월1일 “해운법 제29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외항 정기화물운송사업자들의 운임에 관한 공동행위는 해양수산부 장관만이 배타적 규제 권한을 갖고 있고 공정위는 이를 규제할 권한이 없다”며 피고 패소 판결했다.
해운사 규제 권한을 공정위에 부여하려면 해운법 또는 공정거래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못 박으면서 “원고(에버그린)의 공동행위 가담 여부, 공동행위의 경쟁 제한성 내지 부당성 여부 등을 살필 필요 없이” 공정위가 해운사에 내린 과징금 또는 시정명령 처분은 위법하다고 결론지었다.
특히 해운법에서 공정위에 선사들의 위반 내용을 통보하도록 한 규정도 해수부 장관의 조치 내용을 사후 통보하는 절차일뿐 공정위에 규제 권한을 준 게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해운사 공동행위를 두고 “공정거래법이 적용되지 않고 공정위가 규제할 권한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며 2심 판결을 뒤집었다. 해수부 장관에 ‘신고되지 않은 공동행위’는 해수부 장관과 공정위가 모두 규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개별 법률에 ‘공정거래법 적용을 제외한다’는 명시적 규정이 들어 있지 않는 한 모든 산업 분야에 공정거래법이 적용돼야 한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다만 해운법에서 외항 정기 화물운송사업자들의 운임 공동행위를 허용하고 해수부 장관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규제의 방법과 절차를 정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대표 재판으로 지정된 에버그린 행정소송에서 대법원이 공정위의 제재를 적법하다고 인정하면서 파기환송심을 비롯해 국적선사와 외국선사가 제기한 다른 행정소송에서 지난 운임 공동행위가 공정위 제재를 받을 만큼 위법했는지 여부를 놓고 치열한 법리 다툼을 벌이고 있다.
지난 2022년 공정위는 국내외 선사 23곳이 2003년 12월부터 15년간 최저운임(AMR 또는 MGL)이나 긴급유가할증료(EBS) 등의 부속 합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해수부 장관에게 신고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아 총 176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 조치로 국적선사 13곳은 1461억원의 금전 제재를 받았다.
선사들은 해운법에 따라 기본 운임 인상(GRI)으로 불리는 운임 공동행위 내용을 매년 한두 차례 해수부에 신고했고 이를 달성하려고 부속 합의를 실시한 것이어서 부속 합의의 미신고가 위법한 행위가 아니라고 맞서는 상황이다. 해운시장 감독기관인 해수부도 공정위가 담합 행위로 지목한 부속 협약이 적법한 절차 내에서 이뤄졌다는 유권해석을 내려 해운업계에 힘을 실어줬다.
해운업계는 이와 별도로 정치권과 손잡고 컨테이너선사들의 공동행위에 공정거래위원회가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해운법 개정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는 12월1일 전체회의를 열어 더불어민주당 이원택 의원과 윤준병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해운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의결했다.
상임위를 통과한 해운법 개정안은 공동행위를 규율한 29조에 ‘신고된 협약(공동행위)은 공정거래법 적용을 배제한다’는 원칙을 적시했다. 또 부당 공동행위를 공정위에 통보토록 한 해운법 29조 5항의 단서 조항을 삭제해 해운사 공동행위의 감독 권한을 해수부로 일원화했다.
아울러 이원택 의원의 개정안은 해운사들이 부당한 공동행위를 했을 때 부과하는 과징금 규모를 현행 최대 1억원에서 10억원으로 대폭 상향해 공정위 배제에 따른 규제 공백 우려를 해소했다.
농해수위는 자본 집약적인 해운업 특성상 중소 선사들은 공동행위를 통해 대형 선사에 대항하고 서비스 품질을 높일 수 있다는 검토 의견을 제시하면서 “특히 연근해 항로 중심의 중소 선사가 다수인 우리 해운산업의 구조상 공동행위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외항해운 단체인 한국해운협회 양창호 부회장은 “해운법 개정안 통과는 소모적인 법적 논쟁을 끝내고 한국해운이 해외 선진국들과 동등한 경쟁 기반 위에서 글로벌 공급망 안정화에 전념할 수 있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거”라고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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