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14 09:14

추역의 명화/ 철도원 (IL FERROVIERE)

서대남 영화 칼럼니스트

필자는 청소년 학창시절 제법 영화광으로 알려져 남들이 가장 감명 깊은 작품이 뭐냐고 물으면 서슴치 않고 ‘철도원(IL FERROVIERE/THE RAILROAD MAN/1959)’이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고교시절에 본지라 머릿속에 스토리를 담고 지내며 58년이란 세월이 흐르자 영화 제목과 그때의 감명과 출연 배우들의 이름만 달랑 기억에 남고 내용과 주인공들의 얼굴은 아득하게 사라져 마치 고대사 역사의 한 사건을 교과서로 배워 시대적 배경과 스토리만 유추하며 기억하듯 희미했다. 사실 재밌거나 감동적이었고 제목만 기억이 나고 그 내용이 떠오르지 않는 좋은 영화는 이 밖에도 여러 편이 있지만 며칠 전 작심을 하고 DMC(Digital Media City) 소재, 한국영상자료원(KOFA/Korean Film Archive)을 찾아 열람 신청을 해서 용케 만났다.

그동안 수년간 영화 원고를 써 오며 필요할 때마다 무료 혜택을 받았지만 60년 가까이 된 옛 영상을 고스란히 접하고 보니 우선 오프닝 크레디트에서 주인공과의 만남이 감개무량했고 역시 영화박물관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는 자료원 별실에 앉아 해드폰을 쓰고 주요 장면을 접하는 순간마다 옛 기억이 생생히 되살아나 감격스러웠다.

스토리가 전개될 때마다 무릇 이태리 영화가 그렇듯 소재나 시튜에이션, 환경이 우리나라와 비슷하기에 더욱 고전이 시야와 가슴에 다가오는 감명이 5,60년대 한국영화를 보는듯한 동질성의 시대감이 친근히 느껴졌다.

철도에서 모범적으로 일하는 기관사, ‘앙드레 마르코치(Andrea Marcocci/피에트로 제르미 분:Pietro Germi)’는 막내 아들 ‘산드로(에드알드 네볼라)’가 아빠를 이 세상서 가장 훌륭한 영웅적인 아버지로 존경하며 따르는데 만족하고 애정을 쏟으며 생활한다. 

영화 첫 장면은 예쁘장하고 명랑하여 가족들은 물론 모든 이웃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똘똘이, 산드로 귀염둥이 아들이 철길을 마구 달려가 기관실에서 내리는 아버지의 품에 반가이 안기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천생이 기관사 앙드레는 부인 ‘사라(루이자 델라 노체/Luisa Della Noce)와 산드로 막둥이 위로 장녀 ‘줄리아(실바 코시나/Sylva Koscina)’와 장남 ‘마르첼로(래너드 스페치 알리/ Lenard Speci Ali)’와 함께 넉넉찮은 집안을 꾸려 가지만 이웃들이나 동료들에겐 신망받는 현모양처형 가정주부로 올곧게 집안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딸 줄리아와 장남 마르첼로는 부모를 그저 한 사람의 엄격한 아버지와 알뜰한 어머니로밖에 보지 않는다. 줄리아는 가게에서 일하는 청년과 불의의 임신으로 집에서 쫓겨나며, 나이가 들어서도 빈둥대던 장남은 아버지에게 불만을 품고 가출을 해버린다. 

우여곡절 끝에 줄리아는 결혼식을 올리고 살림을 차리지만 여의치가 않아 늘 불만 투성이에 애기마저 사산하게 되고 이를 참다 못해 자기를 유혹하는 어느 돈많은 남자를 남몰래 만나다가 막내 산드로에게 발각된다. 누나가 외간 남자와 탄 승용차 뒷 유리를 새총을 쏘아 박살내고 경찰에 잡혀가 아버지가 찾아오는 바람에 입막음을 약속했던 누나의 비밀이 탄로나고 아버지로 부터 반죽음이 되게 얻어 맞고 집을 나간 줄리아는 남몰래 고된 일을 하며 숨어 살게 된다. 한편 마르첼로도는 거리의 불량배들과 어울려 지내며 제 몫을 못하면서도 아버지의 희생양이 되어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어머니를 불쌍히 여겨 반항심으로 집을 나간 것 이었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고통스러워 하던 어느날 설성가상으로 앙드레는 철도 사고를 내고 만다.

엉뚱한 생각을 하다 정신이 팔린 앙드레는 철길에 투신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급정거에도 불구, 열차와의 충돌로 끔찍하게 사망사고를 낸 기관사로 따돌림 받게 된다. 선로 이탈이 없어 대형사고는 면했지만 30년 철도 인생에 단 한번의 실수로 강등과 더불어 열차 기관실에는 얼씬도 못하고 낡은 커피 보일러 작업장으로 좌천되고 만다. 매일 술로 살며 방황하던 앙드레는 철도노조가 파업을 하자 이에 아랑곳 없이 이때다 하고 적개심으로 기차를 몰다가 직장 동료들한테도 파업불복자로 배신자란 악명을 듣게 된다.

갖은 소명과 항의에도 불구, 급기야 노조원으로서의 자격과 급여마저도 격감하자 앙드레는 아예 집을 나와 술집을 전전한다. 마침내 주점 여인과 함께 몰래 지내며 가족들에겐 행방을 감춘다. 왜 아빠가 따돌림을 받아야 하는가, 막내 아들 산드로의 마음은 그지없이 아팠고  아빠 동료들로부터 거처를 알아낸 산드로는 퇴근 시간마다 술마시는 아빠 근처를 맴돌다가 잽싸게 갖은 재롱으로 집으로 모셔오는 기지를 발휘한다. 자신을 영웅으로 우러러 보는 막내 산드로. 부쩍 올라간 성적표를 들고 술집을 찾아온 아들과 오랜만에 눈물어린 포옹을 한 후 드디어 함께 집으로 오는 길에 친구들을 만나 술판도 벌이며 회포도 푼 뒤에 유쾌한 기분으로 모처럼 집안으로 들어선다.

그간 산드로의 역할로 헤어졌던 소식도 모르게 별거하던 누나와 매형도 다시 옛자리로 돌아와 재회의 순간을 맞는다. 특별히 아껴 뒀던 크리스탈 술잔도 꺼내 한 해가 저무는 크리스머스 이브를 성대하게 맞을 준비를 한다. 집을 나갔던 가족이 모여들고, 직장 동료들도 오해를 풀게 되어 성탄을 즐기기 위해 몰려오자 한동안 황량했던 집안엔 모처럼 다시 평화가 깃든다. 버린 자식 마츠첼로도 곱상한 아가씨를 데리고 나타나 어울려 마시고 춤추며 분위기를 돋운다. 

파티장에선 늘 앙드레의 기타 솜씨가 빛났다. 한동안 절망의 나날로 극도로 쇠약해졌지만 다시 찾아온 가정의 행복, 평생을 반려로 지내온 충직한 아내가 남편의 연주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짓는 미소는 저런 게 바로 부부라고 일컫듯 관객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는다.

미처 못 와 전화로 딸 줄리아의 음성을 듣고 “줄리아, 내 애기야 고맙다. 마르첼로도 와 있다”며 좋아하는 앙드레. 파티가 끝나고 돌아가는 아들에게 추운데 두르라며 자신의 목도리를 던져주는 부성애도 가슴 찡한 모습으로 남는다. 모였던 손님들이 돌아가자 “당신 백발이 되어가는 거 알고 있어?”라고 묻는 아내에게 “사라 내 기타 갖다 줘” 하며 침대에 누우며 평소에 애용하던 기타줄을 잡는다. “당신이 나으면 할아버지 뵈러 가요. 그동안 무료 승차권이 있어도 한번도 못 썼잖아요” 그러는 사이 앙드레 손에 들려있던 기타가 소리를 멈추며 스르르 손아귀를 흘러 내린다. 잠자듯 그대로 영영 눈을 감아 버린 것이다.  한평생 철도원의 생애가 평온하게 마감되는 순간이다.

마지막, “엄마는 아빠 없는 집이 더 커 보인다고 한다”는 산드로의 마지막 나레이션이 “모든 여자는 결혼할 때는 운단다”고 딸 결혼식 때 한 앙드레의 술회와 함께 줄곧 1인칭 모노로그로 전편에 이은 에필로그로 더욱 숙연히 관중들을 가슴 아프게 한다. 필자가 자주 인용하는 “아버지는 죽고 나서야 그리운 사람이다”와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눈물이 반이다” 라는 구절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비애의 장면이기도 했다.

권위적이고 비타협적인 아버지와 인자하고 희생적인 어머니, 그리고 걱정 투성이 자녀들 캐릭터가 5, 60년대 우리나라를 연상케 하고 답답하고 복잡한 어른들의 세계를 잘 정리하며 영화 전편에 걸쳐 유머와 귀여움 넘치는 산드리의 아역 연기가 최고로 흥미로운 볼거리요 압권이다. 어려운 환경속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한 가장의 진솔한 모습을 담담하게 그리되 주관적인 판단을 개입시키지 않고 누구의 잘잘못을 판단하지도 않으며 오로지 보여줄 뿐이고 생각과 판단은 관객의 몫으로 돌려 네오리얼리즘의 가치 중립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의 ‘무방비 도시(Roma, Citta Aperta/1945)’를 시작으로 특이한 배우 없이 비직업적 무명 연기자에, 이야기도 연출도 없이 거리 촬영을 통해 영화가 더이상 미학적 환상 속에서 머물지 않게 시도된 ‘비토리오 데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Lardi di Biciclette/1948)’을 비롯하여 ‘페데리코 펠레니’의 ‘길(La Strada/1954)’이나 ‘루키노 비스콘티’ 같은 명장과 함께 ‘철도원’은 전후 이태리서 발생한 새로운 영화사조, ‘이탤리언 네오 리얼리즘’이 표방한 영화적 기교를 최대한 배제하고 실생활에 가까운 영상과 스토리를 전개시켜 세계 영화사적으로 지대한 관심과 주목을 받은 작품으로도 기록된다.

특히 철도원이 사실적인 홈 드라마이면서도 한걸음 높은 평가를 받고 예술성과 흥행에 성공한 까닭은 제작과 감독, 그리고 주연을 맡은 너무나 유명한 ‘피에트로 제르미’가 ‘희망의 오솔길(Path of Hope/1950)’, ‘형사(The Facts of Murder/1959)’, ‘이탈리아식 이혼(Divorce Italian Style/1961)’, ‘유혹당하고 버림받다(Seduced and Abandoned/1964)’와 ‘세라피노(Serafino/1968)’, ‘바람둥이 알프레드(Alfred/1972)’ 등에서 보여준 그간의 연출 및 연기의 경력이 이를 입증하고도 남는다 하겠다. 재개봉 기회가 와서 독자들과 함께 다시 볼 날을 기대하는 욕심으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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