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06 16:04

더 세월(19)

저자 성용경 / 그림 하현
17. 입국


 

서정민은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머리맡에 두었던 휴대폰을 잡았다. 손에서 만져지는 휴대폰의 질감은 익숙하고도 뚜렷했지만 벨소리는 무엇을 재촉하는지 유난히 요란스러웠다.

“서 사장, 지금 장례식장으로 와 줄 수 있어?”

이팔봉 회장이었다. 6시밖에 안 된 이른 아침. 그가 전화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차녀 이순정이 10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하기로 돼 있다.

“늦지 않도록 공항으로 바로 가겠습니다.”

서정민은 눈을 비비며 몽롱한 상태에서 조금 짜증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고 후 불면증 때문에 두서너 시간밖에 자지 못하고 자주 깨곤 한다. 늦잠을 자기 일쑤요, 늘 잠이 부족하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 귀에 남은 음성을 더듬어보니 인천공항이 아니고 장례식장으로 오란다. S병원은 인천공항과는 반대편이다. 시간이 걸릴 것이 뻔하다. 잠을 더 자게 놔두면 안 되나. 

이 회장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여기 와서 소라를 데려가도록 하게. 이모를 보면 애 기분이 나아질 거야.”

‘여기’는 장례식장을 말한다. 영감은 줄곧 거기에서 딸의 혼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이 없는 그는 서정민을 아들처럼 부려먹는다. 어쩌면 “내 딸을 죽여 놓았으니 너는 벌을 받아야 해!” 하는 것처럼 미안한 구석 없이 온갖 잔심부름을 다 시킨다. 서정민은 지은 죄 때문에 적어도 지금은 불평할 입장이 아니라고 굳게 다짐한다.

“걔 아버지는 다녀갔습니까?”

서정민이 홍소라의 아버지에 대해서 물었다.

“어제 저녁에 다녀갔지. 소라를 데려가서 키우겠다고 하길래, 그런 소리 하려면 얼씬도 하지 말라고 호통을 쳤지. 교수란 놈이… 쯧쯧.”

이팔봉의 사위 홍철호는 수도권 전문대학의 부교수다. 비서학을 전공한 그는 자신의 과목으로 학교를 취업률 높은 대학으로 만들었다. 그 공로 때문에 학장도 그를 호락호락 대하지 못했다. 호남형인 그에게 비서학이 알맞은 전공일지 모르겠으나 조교와의 부적절한 관계가 아내 이순애에게 들통 나고 말았다. “그럼 걔하고 살어!” 이순애의 조용한 한마디에 순순히 이혼장에 도장을 찍었다. 

“소라도 지금 장례식장에 같이 있나요?”

“응, 엄마 곁에 있고 싶다고 해서. 영정사진을 자주 보는구먼. 어린 것이…. 그래도 지금 많이 의젓해졌어.” 

이 회장의 음성이 탁해지더니 힘겹게 말을 맺었다. 흐느낌의 숨소리를 듣기 전에 서정민은 대화를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가겠습니다.”

세면장 거울에 수염을 터부룩하게 기른 남자가 서 있다. 잠을 못 잔 탓인지 얼굴이 푸석하다. 며칠 더 면도를 거르면 이주영 해수부장관에 버금갈지 모른다. 전형적인 홀아비의 모습이다. 수염이 잔디처럼 깔린 얼굴은 씻으나 마나다. 

의자에 걸쳐 놓았던 검정양복과 넥타이를 급히 집어 들고 현관문을 나서려다, 그래도 뭔가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냉장고 문을 열고 우유 한 컵을 들이마셨다. 이렇게라도 속을 채우고 운전대를 잡아야 차선만큼은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장례식장은 이른 아침인데도 들고 나는 주검이 이어졌다. 살고 싶을 때 살고 죽고 싶을 때 죽을 수 없는 게 인생이다. 잠자는 중에도 이끌려가는 게 인생의 마지막 모습이다.

할아버지 옆에서 자고 있던 소라를 깨우는 서정민은 엄마가 없는 아이가 어떻게 자랄 것인가 생각해보기도 했다. 사흘 전에 영정을 서울로 옮긴 이후 아이는 엄마가 누워있는 장례식장에서 머물렀다. 영안실에서 엄마의 얼굴을 확인하고 크게 우는 아이를 지켜보며 생과 사의 경계가 울음으로 표현해야 비로소 나뉘는 규정이라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인천공항까지 가는 동안 차 안에서 45세의 아저씨와 11세의 소녀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는 아저씨가 왜 자기를 공항에 데리고 가는지 잘 몰랐다. 이모를 만나기 위해서는 이 아저씨가 운전을 해야 하는 것 정도로만 알았다.

공항은 넓고 웅장하고,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전광판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은 목이 아프지도 않은 듯 보였다.

“아저씨, 전광판에 나왔어요. 이모 비행기 맞죠. 출발지 파리, 도착 10시 5분. 저기요!” 

아이는 엄마의 죽음을 잊은 듯 크게 소리쳤다. 스마트폰 시대에 사는 아이들은 저런 것도 잘 알아보는구나. 파리발 서울행 대한항공은 예정대로 도착했다.

“소라야 넌 이쪽 출구를 지켜봐. 난 저쪽 출구를 볼 테니.”

서정민은 이순정을 만난 적이 없다. 이 회장이 준 사진만으로 그녀를 알아볼 작정이다. 알아보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부모가 다르지 않는 한 언니의 얼굴과 몸매를 닮았을 것이다.

인천공항 입국장으로 나오는 이순정은 흰 블라우스에 검은 자켓, 검정 바지 차림이다. 사고 후 열흘 만이요, 언니의 비보를 접한 후 사흘 만의 귀국이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사고 일주일 만에 알리는 법이 어딨냐?”고 아버지를 원망하곤 했으나 결국 아버지의 분부대로 모든 걸 차분하게 정리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
조카가 서 있는 출구로 나온 것은 다행이다. 이순정은 먼저 조카 홍소라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고, 만나서는 뺨을 비비며 울었다. 둘의 만남이 얼마나 애틋한지 서정민은 이순애가 딸을 만나는 장면으로 착각할 뻔했다. 이순정은 너무 언니를 닮았다.

이순정이 옆에 말없이 서 있는 서정민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순간이다.

“아니, 당신이 그 사람인가요? 울 언니를 그냥 두고 당신만 살았어요?”

다 같은 피해자라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그의 말은 딴 방향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미안합니다. 서정민입니다.”

“이상한 대면이로군요. 혼자 탈출하셔도 되는 건가요?”

이때 소라가 이모의 손을 잡아끌었다.

“이모, 아저씨는 좋은 분이야. 지금까지 할아버지를 도우셨단 말야. 너무 그러지 마!”

조카의 말에 이순정은 흥분을 가라앉혔다. 

“하긴~ 서 사장님이 무슨 죄가 있겠어요. 못난 대한민국이 원망스러울 뿐….”

이 순간을 포착해 서정민은 그녀의 짐 가방을 받아 끌기 시작했다. 

그녀의 나머지 짐은 파리의 친구에게 항공운송을 부탁했다고 한다. 친구에게 필요한 것을 빼고 나머지만 부쳐도 좋다고 해놓았다. 그러니 이삿짐이라고 할 것조차 없는 간편한 짐이다.

공항에서 서울로 가는 고속도로는 한창 봄 냄새로 자욱하다. 4월 26일 여의도 근처 벚꽃은 화려함을 잃은 모습이었다. 봄비와 찬바람에 우수수 떨어지고 몇 잎 남지 않은 게 꼭 세월호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한 허약한 목숨같이 외로이 느껴졌다. 

뒷자리에 앉아서 이모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소라는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을 잠시 잊은 듯 보였다. 

“비행기가 구름 위에 떠 있을 때의 하늘은 정말 파랗고 평온하단다. 천국이 바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이모 나도 비행기 타고 싶어. 엄마가 천사의 날개를 달고 날아갈 그런 천국 하늘 말야.”

어느덧 소라가 입가에 작은 미소를 머금어 보인다. 

이순정은 차창 밖 한강을 내려다보면서 세월호의 실종자를 생각한다.

“아직도 실종자가 남아 있다고 하던데 가족들의 마음이 어떨까요. 언니는 다행히 돌아오기라도 했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전 살아남은 것이 죄스럽고요.”

“전문가이기 때문에 사는 방법을 아신 게 아녀요? 그럼 언니를 끌고 나오시지 않으시고?”

“…부끄럽습니다.”

서정민은 대화를 자꾸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이런 때는 소라가 잠이라도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행동이 어린 아이의 가슴에 좋지 않은 모습으로 새겨질까 걱정스러웠다. 서정민은 대화를 바꾸고 싶었다.

“순정 씨는 완전히 귀국하신 건가요? 앞으로의 계획이라도…?” 

“디자인 일을 하고 싶은데, 아버지께서 일단 귀국하라고 하시니 그냥 돌아온 거예요. 아버지는 언니한테 모든 걸 맡기셨는데… 어떡하실지 저도 잘 모르겠고요.”
장례식장에는 이팔봉 회장이 분향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딸이 분향하기 전에는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아버지. 그런 아버지는 분향이 끝나자 딸을 왈칵 끌어안았다. 

“언니 없는 삶은 상상도 해보지 않았는데, 이제부터 네가 가장이다. 각오하거라.”

아버지는 비장했다. 젖은 눈시울이 그의 비장함을 말해주었다.

이순정이 도착한 후 사흘 만에 발인이 진행됐다. 발인 후는 일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서 사장은 제주도 물류창고 건립에 집중해주게. 그동안 너무 시간을 보낸 것 같아. 순정이는 소라 잘 돌봐주고 때때로 내 사업도 도와주도록 해.”

이팔봉 회장의 가족은 두 주 만에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세월호 문제는 바다뿐만 아니라 육지에서도 복잡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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