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8.자에 이어>
1. 시작하며
이번 호에서 소개할 판례는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하는 해상적하보험계약에 따라 원고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한 후 보험자 대위권을 행사했는데 이와 같은 행사가 소멸시효가 완성된 후의 행사인지 여부 등에 관해 판단한 사례이다.
2. 사실관계의 요약
가. 피고 운송회사는 대한민국 방위사업청과 사이에 방위사업청이 미국 C로부터 수입하는 항공기 부품인 고정여과기 조립체(Fixed Filter Assembly, 이하 ‘이 사건 화물’이라 한다)를 미국 뉴욕항에서 선박에 선적한 후 부산항까지 운송한 다음 김해공군종합보급창 창고까지 입고하기로 하는 국제상업운송 용역계약(이하 ‘이 사건 운송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했다.
나. 원고 보험사는 2017년 7월1일 방위사업청과 사이에 이 사건 화물에 관해 피보험자 방위사업청, 보험기간 2017년 7월1일부터 2018년 6월30일까지로 하는 해상적하보험계약(이하 ‘이 사건 보험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했다.
다. 피고는 2017년 11월30일 이 사건 화물을 선박에 선적하고, 같은 해 12월 4일 미국 뉴욕항을 출발해 2018년 1월7일 부산항에 도착한 다음 2018년 1월10일 김해공군종합보급창 창고까지 운송했다. 그런데 이 사건 화물 반출 작업을 하던 중 이 사건 화물의 종이박스 외부에 약 5㎝ 정도의 파공(구멍)이 발견됐고, 내품 확인 결과 외관상 은박재질의 진공 포장재가 찢어지고, 이 사건 화물의 망 안쪽과 하단부에 손상이 있는 것이 확인됐다(이하 ‘이 사건 사고’라 한다).
라. 원고는 2019년 1월3일 방위사업청에게 보험금을 지급하기 전 사전구상권을 행사하는 장래이행의 소로써 이 사건 소를 제기했다가, 이 사건 제1심 계속 중이던 2019년 4월22일 방위사업청에게 이 사건 사고로 인한 보험금 35,814,160원을 지급한 다음, 2019년 11월6일 단순이행으로 구상금을 청구하는 청구취지 및 청구원인 변경신청서를 이 법원에 제출했다.
3. 법원의 판단
1) 소의 적법 여부에 관한 판단
보험자대위에 관해 영국법 적용 여부와 관련해, 이 사건 보험이 보험은 영국의 법과 관습에 의한다(This insurance is subject to English law and practice)”고 규정하고 있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바,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이 사건 적하보험계약에서는 영국법(English law and practice)을 준거법으로 정하고 있고, 보험자대위에 관해 영국법이 아닌 다른 국가의 법률을 적용하겠다는 별도의 의사가 원고와 방위사업청 사이에 있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보험자대위에 관한 문제도 영국법에 따라야 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국제사법 제35조에 의해도 같다.
그러나 이 사건 보험계약에서 준거법으로 삼은 영국법이 이 사건에 적용되는 경우에도 보험자대위에 기한 소권의 행사와 관련된 절차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법정지법의 적용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제1심 계속 중 원고가 보험금을 지급한 이상 영국법상 소권의 양도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영국법을 적용해 이 사건 소를 각하할 수는 없고, 보험자인 원고가 보험자대위권을 행사하기 위해 제기한 이 사건 소에 대해는 보험자대위권 권리 행사방법과 관련한 절차적인 문제에 적용되는 법정지법인 우리나라 법에 따라 그 적법 여부를 살펴보아야 한다.
2) 상법 제814조 제1항의 제척기간 준수 여부
해상운송에 관해, 운송인의 송하인 또는 수하인에 대한 채권 및 채무는 그 청구원인의 여하에 불구하고 운송인이 수하인에게 운송물을 인도한 날 또는 인도할 날부터 1년 이내에 재판상 청구가 없으면 소멸한다(상법 제814조 제1항).
이 사건에 관해 보건대, 이 사건 화물이 최종적으로 인도된 날은 2018년 1월10일인 사실, 원고가 2019년 1월3일 향후 보험금을 지급할 것을 조건으로 이 사건 소를 제기했다가, 위 인도일로부터 1년을 경과한 이후인 2019년 4월22일 보험금을 지급하고, 2019년 11월6일 청구취지변경신청서를 제출한 사실은 앞서 인정한 바와 같은바, 원고가 보험금을 지급하기 이전에 제기한 이 사건 소는 부적법하다고 할 것이다.
3) 장래 이행의 소로 제척기간을 준수했다는 원고의 항변에 관해
원고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할 당시 원고의 구상금 채권의 발생의 기초가 되는 법률상, 사실상 관계가 존재했고, 그러한 상태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됐으며, 피고가 미리부터 그 채무의 존부와 범위를 다투고 있어 원고가 보험금을 지급하더라도 임의의 이행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원고가 피고에 대한 구상권을 미리 청구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원고는 장래이행의 소로서 적법하게 이 사건 소를 제기해(2019년 1월3일) 제척기간을 준수했다고 주장한다.
이행보증보험계약에 있어서 구상금채권의 발생의 기초가 되는 법률상·사실상 관계가 변론종결 당시까지 존재하고 있고, 그러한 상태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며, 구상금채권의 존부에 대해 다툼이 있어 보험자가 피보험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더라도 보험계약자와 구상금채무의 연대보증인들의 채무이행을 기대할 수 없음이 명백한 경우 장래 이행보증보험금 지급을 조건으로 미리 구상금 지급을 구하는 장래이행의 소는 적법하다(대법원 2004년 1월15일 선고 2002다3891 판결 참조).
그러나 이행보증보험이 아닌 이 사건 보험계약과 같이 보증의 성격을 가지지 않는 보험의 경우 위와 같은 법리를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즉, 원고가 방위사업청에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상법 제682조의 보험자대위의 요건을 아직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보험자인 원고는 제3자인 피고와 사이에 아무런 법률관계가 없어 피고에 대해 아무런 권리주장을 할 수 없다(대법원 1992년 8월18일 선고 90다9452, 9469 판결 취지 참조).
따라서 원고가 피보험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후구상권을 미리 이행하라는 청구는 장래이행의 소로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해 부적법하고, 보험금을 지급하기 전에 원고가 한 소 제기는 아무 권리가 없는 자가 한 것이어서 그에 의해 제소기간 준수의 효력도 생길 수 없다(대법원 2015년 5월28일 선고 2012다78184 판결, 대법원 2020년 6월11일 선고 2020다213968// 판결).
4. 검토 및 시사점
이 사건 적하보험계약의 준거법은 영국법이고, 원고는 영국 재산법 제136조의 규정에 따른 피보험자의 소권을 양도받았다고 인정할 자료도 제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법원은 보험자인 원고가 보험자대위권을 행사하기 위해 제기한 이 사건 소에 대해는 보험자대위권 권리 행사방법과 관련한 절차적인 문제에 적용되는 법정지법인 우리나라 법에 따라 그 적법 여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판단해, 상법 제814조 제1항의 제척기간 준수 여부(운송물을 인도한 날 또는 인도할 날부터 1년 이내에 재판상 청구가 없으면 소멸)를 검토했다.
흥미로운 점은, 원고가 2019년 1월3일 보험금을 지급하기 전 사전구상권을 행사하는 장래이행의 소로써 이 사건 소를 제기했다는 점이다. 화물이 최종적으로 인도된 2018년 1월10일 으로부터 1년이 지나지 않아 일응 제척기간을 준수한, 적법한 소로 보였다.
그러나 법원은 이행보증보험이 아닌 이 사건 보험계약과 같이 보증의 성격을 가지지 않는 보험의 경우 보험금 지급을 조건으로 미리 구상금을 지급을 구하는 장래이행의 소는 부적법하다고 보았다. 이는, 이행보증보험계약에 있어 구상금채권의 존부에 대해 다툼이 있어 연대보증인들의 채무이행을 기대할 수 없음이 명백한 경우 미리 구상금지급을 구하는 장래이행의 소를 구할 수 있다는 대법원 2004년 1월15일 선고 2002다3891 판결 등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이행보증보험과 이 사건 보험계약과 같은 적하보험의 차이를 구별해 판단한 적절한 판단이라 하겠다.
결국 이 사건 화물이 최종적으로 인도된 날은 2018년 1월10일 이었고, 원고는 2019년 11월6일 구상금을 청구하는 취지의 청구취지 및 청구원인 변경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했으므로 제척기간을 준수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됐다. 즉, 적하보험자는 1년 내에 적하보험금을 마치지 못하면 구상에 낭패를 볼 수 있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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