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5-28 17:26

중재계약하에서 운송물에 대한 유치권행사가 가능한가?

- 우리대법원은 불가하다는 입장이나 이는 부당 -

1. 중재계약-중재조항(arbitration clause)

계약관계로 인한 분쟁의 경우에는 우선 계약상 중재계약이 존재하는지, 재판장소나 재판에 적용할 법에 관한 합의사항이 있는지를 검토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국제계약도 원칙적으로 계약자유의 원칙이 적용되므로 계약서상에 당사자 사이에 중재에 의하여 분쟁을 해결키로 하는 명시적인 합의, 즉 중재계약이 존재하는 경우 중재절차에 의하여 분쟁을 해결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바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금지되며 이를 직소금지의 원칙이라 한다(중재법 제3조).

2. 중재계약과 운송물유치권의 행사

용선계약 등에 중재조항이 있는 경우에도 채권자가 중재절차를 거치지 아니하고 운송물에 관한 유치권에 기하여 운송물의 경매를 신청할 수 있는가? 만일 경매를 허용한다면 이는 결과적으로 계약상의 모든 분쟁을 중재판정에 의하여 해결하기로 한 당사자간의 중재계약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나라 대법원은 1983. 8. 1. 82마카77결정에서 계약서상 중재계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체선료등이 미납되었다는 이유로 선박소유자가 상법상의 운송물유치권에 기하여 운송물에 대한 경매를 신청한 사안에서 선박소유자가 운송물소유자를 상대로 다툼이 있는 체선료등 채권에 기하여 중재절차를 거침이 없이 운송물에 대한 경매를 진행하는 것은 당사자간의 중재약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경매를 불허한 바 있으며, 1993. 10. 5. 93마621결정에서도 동일한 입장에서 선박우선특권에 기한 선박경매신청도 불허되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3. 대법원 1983. 8. 1. 82마카77 결정의 요지

이 사건에 있어서 상법 제804조에 근거한 신청인의 운송물경매를 법원이 허가하게 되면 신청인은 그 경매를 경매법에 의하여 집달관에게 위임함으로써 바로 채권실행에 착수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한편 법원이 그 경매의 허부를 결정하기 위하여는 신청인주장과 같은 체선정박료채권의 존부와 범위를 판단하여 확정하여야 할 것인 바, 원심인정과 같이 신청인과 재항고인 사이의 용선계약상 용선계약으로 인하여 발생할 당사자간의 모든 분쟁을 중재판정에 따라 해결하기로 한 중재계약이 있었다면 위 용선계약과 관련하여 재항고인이 신청인에게 배상하여야만 될 신청인주장과 같은 체선정박료채무가 발생하였는가의 여부에 관하여 다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그와 같이 다툼있는 체선정박료채권의 존부와 범위를 확정하여 그 지급을 받기 위한 경매의 허부를 결정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용선계약상의 모든 분쟁을 중재판정에 의하여 해결하기로 한 당사자간의 중재약정에 위배된다 하겠으므로 그 존부에 대하여 분쟁이 있음이 기록상 명백한 체선정박료채권에 관하여 중재판정을 거침이 없이 막바로 그 지급을 받기 위해 운송물의 경매허가를 구하는 신청인의 이 사건 신청은 허용될 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4. 문제점 및 의견

오늘날 용선계약에 중재조항을 두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는 바, 만일 중재조항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법상 인정되는 운송물유치권의 행사가 불가능하다고 해석한다면 이는 지나치게 채권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으로 부당할 뿐 아니라 중재조항을 둔 당사자의 의사에도 어긋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영국법원판결도 소송절차의 중지를 강제하는 중재조항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대물절차를 위한 선박집행은 중지되지 아니한다고 하여 같은 취지로 판결한 바 있다. 따라서 위 대법원의 결론에는 찬동하기 어렵다.
소송이나 중재가 그 집행을 위하여는 판결이나 중재판정을 요하는 데 반하여 운송물유치권이나 선박우선특권에 기한 선박 또는 운송물 경매는 이러한 절차를 거침이 없이 집행이 가능하고 채무명의를 요하지도 아니하므로 소송이나 중재에 관한 합의나 계약이 존재한다 하여 해상법상 특수하게 인정되는 운송물유치권이나 선박우선특권의 행사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중재계약은 당사자간에 분쟁해결방법을 합의하고자 한 것이지 위 권리를 제한하고자 한 것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용선계약 등에 중재조항을 삽입한다고 해서 당사자가 그로 인하여 상법상 인정되는 자신의 고유한 권리를 박탈당할 것으로 예상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며, 중재조항을 이유로 그러한 권리를 배제하거나 포기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해운관행은 물론 당사자의 의사에도 반할 것이다. 실제로 용선계약에는 중재조항을 삽입하면서도 운송물유치권이나 선박우선특권의 행사 등을 예정한 조항들이 산재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중재계약이 그 문구해석상 명백히 유치권에 기한 운송물경매권의 포기 또는 배제로 해석되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중재계약의 존재여부에 관계없이 운송물유치권에 기한 경매를 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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